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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manf Mar 22. 2023

63. 아무 일 없는 하루가 주님의 축복임을...

지난 일요일, 우리 한글학교에서는 공원에서 체육대회가 있었고 날씨도, 학부모님도, 학생들도, 선생님들도 적극 참여한 행사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다. Mob Dance를 처음 도입해 점심 식사 후와, 폐회식 때 모두 한 마음으로 춤도 추었는데 너무 감동을 받아 눈물도 흘렸다. 각종 한국 운동회 종목들을 통해 모두의 가슴속에 한국인의 뿌리를 생각하고 자긍을 느껴볼 수 있는 정말 뜻깊은 행사였다.

그 뜨거운 가슴으로 사람들과 감사의 인사를 하고 뒷정리를 하며 담소를 나누고 있는 동안, 아이들은 큰 호수 앞 모래사장에서 놀고 있었다. 근처에 놀이터도 있어서 아이들에 대해 전혀 걱정하지 않았다. 아이들을 확인해 봐야겠다고 생각한 건 그 후, 30-40분 지난 뒤였다.


그런데 딸과 친구의 아들은 물 앞 모래에서 놀고 있는데 내 아들이 보이지 않았다.


나는 주위를 둘러보고 아들의 이름을 불러보았지만 아무 데도 없었다. 순간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물이 깊었기에 아이가 빠진 걸 상상했고, 공원이 넓으니 많은 사람들이 오고 가는 중에 나쁜 사람이 아이를 데려간 끔찍한 상상도 했었다. 5-10분 동안 나는 터질듯한 심장을 부여잡고 아이를 찾아 헤맸고 하나님께 제발 도와달라고 기도를 했다. 다행히 곧 친구가 나를 불러 가보니 공원 관리인이 아이를 데리고 왔다. 그녀에게서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아이가 우리가 있던 곳과 꽤 거리가 있었던 공원 입구까지 걸어가 나를 찾았고 길을 잃고 헤매던 아들을 관리자가 발견해 여기로 데려온 것이었다.

얼마나 놀랬던지. 그 공원 입구 앞이 바로 도로인데 혼자 걷다 차에라도 치였으면. 아들을 찾아 헤매던 그 짧은 시간에 떠오르던 모든 끔찍한 사건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나는 아이의 손을 잡고 아무도 없는 곳에 데려갔다. 아이는 이미 너무 놀래서 많이 울었던 듯 볼이 붉게 눈물 자국이 있었다. 야단을 치려고 하다가 아이를 꼭 안고 너를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제임스가 없어진 걸 알고 엄마가 심장이 터지는 줄 알았다고 말했다. “놀랬지? ”하니까 아이가 고개를 끄덕이며 울음을 터트렸다.

한참을 안아주고 나서 앞으로 이런 일을 대비해 주의할 것을 알려주고 아이는 친구들에게 가서 놀기 시작했다.

하지만 덜컹 내려앉은 심장은 한동안 멈출 줄 모르고 두근거렸다.

Apple Airtag를 알아보고 이런 일을 대비하기 위해 불안에 떨며 찾는 동안, 갑자기 맥이 풀렸다.


좀 전까지 나는 성공적인 체육대회에 깊이 감동해 눈물까지 흘리며 행복해하고 기쁨에 넘쳐있었다. 이 감정은 얼마 후, 단 15분 만에 아들을 잃고 심장이 덜컥 내려앉으며 사라져 버렸다.


그 찰나 같은 기쁨과 행복을 위해 우리는 평생 앞만 보고 달려오지 않았던가? 금방 사라질 연기 같은 그 순간이 무슨 변치 않는 만져지는 사물처럼 가지려고 했던 지난날의 내 모습이 떠올랐다.

돈이 있으면 걱정 없겠지, 돈을 더 많이 벌면 이런 기분이 지속되겠지? 운동하고 식습관 관리 해 몸매를 다듬으면 나는 늘 행복하겠지? 수많았던 행복의 조건들을 가지기 위해 매일 바쁘게 달리고 나를 희생하고 다른 사람에게 신경 쓰지 못했던 그 시간들이 떠올랐다. 그것들을 잡기 위해 경쟁하고 질투했던 내 모습들이 기억났다.


만약 아들을 그 길로 잃어버렸다면 그 체육대회는 감동과 기쁨이 더 이상 될 수 없었을 것이다. 오히려 그날은 내게 저주의 날이 되었을 것이다. 잊어버리고 싶었을 것이다.

그날이 감동과 기쁨이 될 수 있었던 건 내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전제가 되어있어야 하는 것이었고 그저 평범하게만 보이는 그 일상이 “반석”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저 평범해 보여 무료해하고 불만 갖던 그 일상이 깨지면 우리에겐 더 이상 행복은 없다.

그 일상 중 누군가는 사고를 당하고 죽음을 맞이하며 우리 모두는 이별할 운명에 처해있다. 그 영원할 것만 같던 일상은 한 번쯤, 아니 인생에 몇 번이나 균열을 맞이하고 서로 이별을 하고 아픔을 겪는다.


죽음과 생은 모두 주님의 손에 달려있다.


내가 아무리 발버둥 치며 airtag을 달고 아이들을 지키려 해도 죽을병이 들 수도 있고, 내가 사고로 갑자기 죽을 수도 있다. 또 반대로 남편이 사고나 병을 얻을 수도, 아이들이 사고로 갑자기 우리 곁을 떠날 수도 있다. 우리 손으로 아무리 위험을 막으려고 몸부림쳐도 죽음과 생을 허락하고 주시고 가져가시는 분은 모두 주님의 권세이다.


그렇다면 이 평범하게만 보이는 이 일상이 얼마나 깊은 사랑으로 인한 그의 허락하심이고 공급이고 보호하고 지켜주심이었는지 깨닫게 되었다.

일상 자체가 큰 축복이고 감사였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언제 어느 때, 어디에서 이별할지 모르기에 주어진 이 현재에 최선을 다해 사랑하며 살아야 했다.

이것을 해 두고, 이것만 하면 잡을 수 있는 행복 따위는 없다. 그 찰나는 금방 사라지는 신기루일 뿐이다.


그래서 기쁨과 즐거운 감정에 머무르려 애쓸 필요가 없고 그것은 곧 사라지기에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즐기는 것 밖에는 답이 없다. 사람의 마음도 늘 변화무쌍한 계절과 같아서 순간순간 내 앞에 있는 사람들에게 최선을 다하고 함께 있을 때, 그저 사랑하면 된다. 마음이 변하고 관계가 변하는 것은 당연하기에 그것을 그리 슬퍼할 필요도 없고 이별을 한다고 해서 그리 세상 무너질 일도 아니다. 언젠가 우리 모두가 이 세상에서 이별을 맞이하는 것이 운명이기 때문이다.


행복과 기쁨이 찰나인 것처럼 고통과 근심이 찰나이고 다 잃은 것 같은 느낌에 외롭다가도 돌아보면 너무나도 많이 가지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그저 주님이 주신 숨으로 매일 일어나 이 세상에서 맞는 하루가 선물이다.


그래서 오늘 하루를 마지막 날처럼 집중하고 천천히 음미하며 살아가야 한다. 멍하니 주위도 둘러보고 아이처럼 시간을 잊어버리고 내 앞에 사람들의 눈을 마주하고 즐겁게 뛰어놀 수 있어야 한다.


체육대회의 성공과 아이를 잃어버릴 뻔한 대조적인 사건의 대비는 성경책에서 관련 없어 보이는 앞뒤의 일화 속에 의미가 숨겨져 있듯 내게 삶의 비밀을 깨닫게 해 주었다.


앞으로 불안에 떨며 일어나지도 않은 미래를 계획하고 준비하는 대신 지금 당장 내 앞에 해야 할 일을 적당히 하고 자연과 사람, 상황을 즐기기로 했다. 가슴이 뛰는 일, 즐거운 일을 노는 듯이 집중하고 내 앞의 사람들을 사랑하고 즐거운 시간을 갖고 더 많이 사랑한다 표현하며 살겠다.


특히 내가 사랑하는 내 가족, 내 아이의 눈과 남편의 눈을 더 많이 바라보고 사랑하고 감사하다는 표현을 매일매일 아주 성실히 하겠다. 다른 것을 다 포기하고라도 이 시간만큼은 아주 열심히 지켜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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