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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manf Mar 15. 2023

62.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히브리서 11장 1절과 3절 말씀.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3: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하나님을 믿지 못하겠다고 말하는 사람과 대화를 해보면 그가 못 믿는 부분이 너무 이해가 되었다. 그 사람의 말은 논리적으로 맞았고 타당했다. 나도 예전에 같은 이유로 기독교인들이  싫었고 이중인격자라 매도했었다.


나와 그의 차이는 뭔가? 하나님을 믿지 못했던 내가 명백히 바뀐 시점은 뭔가?

2021년 1월 14일. 주님을 강하게 만났다.

그 순간 그전에 알던 말도 안된다고 생각했던 하나님에 관한 말씀이 진실이 되어 그냥 믿어지게 되었다. 그리고 성경 말씀이 이해가 되었고 전에 없던 새로운 눈을 뜬 것처럼 모든 게 선명해졌다.  내가 주님을 모를 때에도 내 곁에 계셨다는 것을 깨달았고 그날 이후 지금까지 시퍼렇게 살아계시는 하나님을 만나고 있기에 나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가 되었다.


하지만,

내가 경험하고 믿게 된 이것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에게 강요하기 어려웠다. ‘진리를 왜 모르냐?’ 고 답답해 할 수 없었다. ‘내 것이 진리고 네가 아는 것은 거짓이나 네가 주인 된 마음이다’ 매도할 수 없었다.

나는 믿지 못하는 그를 너무나도 잘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무엇을 믿느냐에 따라 보지 못하는 것들을 보고 사는 셈이다.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다.

우리의 감정은 눈으로 볼 수 없는 추상적인 것이다.

사랑, 미움, 질투, 서운함 등등...

나는 예전에 세상에 불만을 가지고 콤플렉스가 많았다. 그것을 감추려고 일 중독, 명품 중독에 빠졌다. 사람들에게 잘 보이고 싶었고 잘난 척하고 싶기도 했다. 부자들과 어울리는 것을 즐거워했다.

그때는 돈이 내 우상이었다.

그래서 다른 친구들이 돈 많은 한 친구를 칭찬하면 괜히 내게 한 말도 아닌데 나를 무시하는 것 같이 들렸다. 나를 돈 많은 다른 친구보다 한 수 아래처럼 취급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돈이 우상이 되니 돈 자랑을 해야만 했고 어디에 가든지 대접받는 것을 당연하다 여겼다. 그래서 지금 돌이켜보면 상대가 아무 의미 없이 행동하고 던진 말에도 사사건건 시비를 걸거나 내 마음속에서 질투나 미운 감정이 먼저 올라왔다.

나는 돈이 내 콤플렉스를 없애주고 화려하고 잘 난 사람으로 보이게 해 준다 굳게 믿었었다. 돈에 나의 존중감, 인정, 사랑을 걸었던 것이다. 반대로 사람들이 반응해 주지 않으면 질투, 무시, 모멸감, 심지어 미움등의 부정적인 감정을 느꼈다.

나는 다른 사람들을 내가 돈이 있어야 사랑하고 인정해 준다 여겼기에 깊이 신뢰하지 못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사람들의 인정과 사랑이 내가 믿는 돈의 기준에 의해 해석된 것이었다. 그때는 남들의 인정과 사랑에 굶주렸기에 늘 예민했고 자주 상처를 받아 불행했다.


하지만 지금 나는 주님을 믿는다.

보이지 않아도 살아 계시는 하나님을 믿느니 하나님을 느끼고 경험한다. 그분의 말씀이 진리로 여겨진다.

그래서 주님 안에서 내 존재감은 높아졌다. 다른 무수한 근거들이 많지만 그중에서도 중요한 한 가지 이유는 예수님이 내가 살아 있을 동안 저질렀고 저지를 모든 죄를 갚기 위해 인간이 받을 수 있는 모든 고통을 감당하시고 내 대신 죽으셨기 때문이다.

나는 부족하고 형편없지만 예수님에게서의 나는, 목숨을 걸고 구해주시고 싶을 만큼 귀한 존재인 것이다.


그 믿음을 갖고 본 세상은 달랐다.

예전에 고난으로 여겨지던 것들은 하나님이 나를 가르치는 교훈이 되었다. 근심과 걱정이 들 때에는 선으로 합력하실 하나님을 믿으니 더 이상 걱정거리가 되지 않고 오히려 기회로 여겨졌다.

다른 사람들의 말과 행동을 나를 무시한다기보다 그냥 나를 잘 알지 못하니 그럴 수도 있겠다, 저 사람은 전후 사정을 모르니 그렇게 말할 수도 있겠네~ 하며 그들의 사정이 먼저 보였다.

감히 고난이 축복이다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래서 내 불행한 어린 시절도 이유가 있었고 감사히 여길 수 있게 되었다.


내가 믿는 것에 따라 세상과 내 자신을 보는 관점이 바뀌니 이보다 편하고 기쁠 수 없다. 주님이 약속하셨던 자유와 참 평화, 기쁨이 무엇인지를 잘 알겠다.

단언컨대 상황이나 다른 사람이 바뀐 것이 절대 아니다. 상황은 그대로다.


내가 믿는 것이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고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이며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라 내 믿음대로 보이는 것이다.

그것이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사람과 믿는 나의,

어쩌면 단순한 차이다.


같은 현상을 놓고도 우리는 다른 두 세계에 소속된 사람들이다.

무엇을 믿느냐? 의 의지는 우리에게 주어진 자율의지이다.

당신은 무엇을 보고 싶은가? 그렇다면 그것을 믿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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