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을 통해 주님과의 완전한 '연합'이 내 몸이 죽은 후, 영적으로만 사는 새 땅에서 내가 주님과 완전히 하나가 되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죽음 뒤의 영생이 내게 더 구체적인 소망이 되었다.
지금은 나와 주님 사이에 육체란 틈이 있어 괴리감과 괴로움을 느끼지만 주님과 온전히 연합하면 우리 두 관계 사이는 틈이 없는 완전히 하나가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주님을 알지만 삶이 고통스러운 것은 곧 죄에 갇혀있기 때문이다. 내 속사람은 주님을 따르고 바라지만 내 겉사람은 계속 죄를 짓는다. 내가 주님과 온전히 연합될 수 없는 이유다.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의 말씀 따라 살기 위해 안간힘을 다해 노력하려 해도 내 육신의 나약함과 죄성에 너무도 쉽게 빠져들어 남을 쉽게 판단하고 정죄하며 죄를 짓는다.
주님과 틈 없이 온전히 연합해야 이 괴리감에서 벗어난다는 사실을 잘 알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내 힘으로는 주님의 뜻대로 살아갈 수가 없다. 죄에서 벗어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통스럽다.
왜 우리는 육신에게서, 죄에게서 벗어날 수가 없을까?
창세기 3장, 선악과를 먹고 하나님과의 연합이 끊기며 모든 것이 거꾸로 바뀌었다. 내가 판단하고 정죄하게 되었고 내 생각이 옳고 나를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게 되었다.
나를 사랑하기에 내 좋을 대로, 내 생각대로 하고 하나님을 만들고 다른 사람을 판단하고 정죄한다.
결국 인간이 선악과를 먹은 후, 하나님보다 나를 더 사랑하는 죄를 짓게 되었다.
인간이 하나님 없이 스스로 사랑하는 형태는 아이가 사탕을 너무 좋아하는 경우와 같다.
사탕이 너무 달콤하고 좋아 자기 건강을 해치는 줄을 아무리 얘기해도 듣지 않고 부모의 눈을 몰래 피해 몰래 먹고 정작 몸에 좋은 음식을 먹지 않는다.
그렇게 좋아한 사탕으로 헛살이 찌고 외모가 망가지며 자존감도 떨어지고 건강도 망치게 된다.
인간이 자기를 사랑한다는 의미는 우리 좋을 대로, 우리가 바라는 대로 사는 것이고 이것은 우리에게 백해무익이다. 우리를 해하고 죽음으로 이르게까지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스스로의 생각과 힘만으로 사랑해서는 스스로를 망치는 존재다.
그래서 인간에게는 통제와 절제가 반드시 필요하다. 우리가 사랑하는 일이지만 주님의 법과 말씀을 기준으로 내가 좋아하는 일을 포기하고 절제해야 한다.
사탕을 좋아하니 마음대로 먹고 내가 짜증 나는 사람이 있으면 그에게 마구 소리 지르면서 내 스트레스를 풀면 편하고 즐거울 것 같지만 그것이 결국 나를 무너뜨리는 덫, 죄, 결국 사망에 이르게 한다.
우리는 스스로가 생각하는 사랑 방식이 아닌 그 반대로 해야 한다.
다이어트할 때, 내 입에 맛있고 즐거운 음식이 아닌 건강에 좋지만 칼로리가 적은 내가 좋아하지 않는 음식을 먹어야 할 때처럼, 공부를 잘하고 싶으면 친구들과 즐거운 시간을 갖거나 내가 당장 즐거운 일을 포기하고 책상에 오래 앉아 있어야 하는 것처럼...
내 좋을 대로 살지 않고 내가 평소에 좋아하지 않고 즐기지 않는 것을 하며 나를 불편하게 만들어야 한다.
내 기준에서는 나를 사랑하는 일 보다 반대로 내가 싫어하고 좋아하지 않는 일을 하고
주님의 기준에서는 그것이 곧 주인인 주님 앞에서 나를 통제하고 절제해 나를 지으신 창조주 주님 뜻 따라 나를 건강하고 바른 길로, 목적대로, 나에게 가장 꼭 맞고 내게 가장 좋은 방법대로 사는 것이 되기에 내 기준보다 주님의 기준으로 보면 자신을 통제하고 절제하는 것이 내게 궁극적으로 큰 큰 유익이 된다.
주님이 이것을 가르쳐 주시기 위해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은 있지만 말씀대로 순종하지 못하는 육신에 갇혀 이 괴리감으로 고통을 겪는 일을 허락하신 것 같다.
내 힘으로는 주님과 온전한 연합을 절대로 이루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셨고 이 육신은 주님과의 연합을 원하지만 존재는 끊임없이 죄를 짓고 사랑이 없는 적나라한 나를 보게 하셨다.
하지만 이 육신이 죽고 나서는 주님과 온전한 연합을 이루어 이 고통이 사라진다는 것을 가르쳐주셨고 그것에 확실한 소망을 품게 하셨다.
이 진리를 이해하고 예수님을 믿고 영생을 소망하는 것이 전적으로 주님의 은혜다.
주님은 나를 아가서의 마음으로 영원히 사랑하시지만 나는 육신이 있는 한, 호세아의 고멜로 내 전 인생을 주님을 배신하는 존재로 살아가게 될 것이다. 주님을 사랑하지만 동시에 주님을 배신하는 존재로서의 내면의 고통을 줄이는 일은, 내 마음대로 살지 않는 것이다.
사탕 좋아하는 아이처럼 나를 사랑하며 망가뜨리지 말고 내게 결국 회복과 유익이 되는 주님을 사랑하고 순종하는 길을 따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