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누구도 귀한 아이들을 자기도 모르게 학대하고 있는 줄을 모른다.
아이들을 잘 먹이고 잘 입히고 최선을 다해 키운다고는 하지만 우리는 은연중에 아이들을 학대한다.
때리고 상처 주고 할퀴고 꼬집어서 아이를 아프게 한다.
나는 절대로 그런 적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나 또한 그렇다.
하지만 행동으로는 하지 않았을 뿐, 우리 모두는 말로 이미 너무 많이 아이들을 괴롭히고 때리고 학대해 왔다.
거기다 가장 비열한 것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의 학대다
'사랑'한다는 이유로 가스라이팅 해서 자기 마음대로 아이를 조정하고
위협하고 협박해 왔다.
'훈계'라는 이름으로 소리를 지르고 부모가 만든 규칙에 집어넣어 지키지 않으면 경찰, 고문관이 되어 아이들을 아프게 했다.
물론 아이들을 가르치지 말고 그냥 맘껏 하게 두라는 소리가 절대로 아니다.
우리에게 가장 큰 문제는 참을성, 인내심이 부족하다는 데 있다.
왜? 내가 수월하게 살고 싶기 때문이다. 적은 노력을 들이고 아이들이 나를 맞춰주길 원하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알려주어 습관을 만들어 주려는 대신 아이들이 한 번에 듣기를 원하고 아이들과 눈높이로 함께 해주기보다는 자기 혼자 자유롭게 보내고 싶어 시간에 관한 규율들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아이들을 통해 내가 부모로서 인정을 받고 싶고 내 노력을 보상받고 싶어 하며 다른 사람과 비교해 내 아이를 부족한 것처럼 생각해 야단치고 비교하고 혀를 찰 때도 많다.
아이 이름을 소리 지르며 부르고 한숨을 쉬기도 하고 강압적으로 시킬 때도 많다.
이 모든 것들이 아이들에게는 폭력이다.
아이는 이 땅에 태어나 여러 가지가 궁금하고 호기심을 가진다. 또 미성숙하고 모르기에 하나씩 배워야 하는데 우리는 우리가 말하고 가르쳤던 모든 내용을 아이가 천재처럼 다 기억하고 소화해 내기를 기대한다. 우리도 할 수 없는 일이면서도. 궁금하고 호기심은 내 선에서 위험하다, 쓸모없다, 낭비다 식으로 내 선에서 차단시키고 아이가 아예 경험해보지도 못하게 한다.
언어도 폭력이 된다. 어쩌면 더 심각한 폭력이 되고 언어에는 말과 눈빛, 표정, 제스처 모든 것이 해당된다. 언어폭력은 물리적 폭력보다 더 심각하고 오래 지속될 수 있고 회복되기 어려울 수도 있다.
아이들을 사랑한다면 먼저 사랑하는 표현을 해야 하고 그 사랑하는 마음 그대로 전달되고 설명되어야 한다. 여기서 우리는 인내하고 반복해서 가르쳐야만 한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아이에게는 내가 전 우주이기 때문에 아이를 낳아 성숙해지기까지는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하고 나 자신을 강조하기보다는 이 세상에 내가 아닌 다른 소중한 인격체를 위해 희생할 수 있어야 한다.
쉽게 생각하면, 우리가 예수님께 받은 사랑 그대로 아이에게 전달하면 된다.
주님은 오래 참으시고 인내해 주시며 잘못할 때마다 벌을 내리시지 않는다.
기다려 주시고 경험을 통해 스스로 수정하고 고쳐나갈 시간을 주시며 수도 없이 용서하고 그럼에도 끝까지 보호하시고 공급하시고 사랑하신다.
뭘 빼앗아간다 위협하시지 않는다.
자기 아이가 진정 귀하다면 말로 안고 입을 맞춰주고 사랑해줘야 한다.
가르치는 것은 그 위에서 이루어질 수 있다. 깊은 사랑의 신뢰가 있을 때, 아이들은 부모가 가르치는 것, 좋아하는 것, 삶의 방향으로 삼는 부분을 자연스럽게 바라보게 된다. 그리고 부모를 따라 산다.
그것이 부모가 자식의 거울이라는 의미다.
아이들은 내가 윽박지르는 말이나 잔소리가 아닌 내가 바라보는 삶의 목적과 방향, 그 속에서 사는 삶의 모습, 일상의 루틴을 보고 습관을 보고 배운다. 그것이 진정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이다.
아이들은 그것들을 배우고 스스로 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바르게 살아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