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따리 선생님 이야기
달빛 초등학교 1학년 친구들은 이제 처음 한글을 배우는 것은 아니지만 아직 읽거나 쓰는 것이 서툴다. 더듬더듬 받침 없는 단어를 읽을 수는 있어도 막상 쓰려고 하면 모른다는 소리가 먼저 나온다. 분명 아는 것이니 다시 한번 잘 생각해 보라고 하면 그제야 아! 하는 소리와 함께 답을 적는다.
모르는 것이나 아는 것이나 언제나 씩씩하고 당당하게 말하는 것은 아이들의 장점이다. 가끔은 그 대답이 정답이 아닐 수는 있어도 아이들의 말에는 나름의 합당한 이유가 있다. 그렇기에 그저 흘려들을 수 없는 말이 참 많다.
매일 아이들과 한글 쓰기와 읽기를 하며 하루에 몇 개씩 새로운 단어를 배운다. 청산유수처럼 말하지만 아직 글자를 쓰는 것은 어려운 아이들은 다행히도 공부하는 것이 재미있는 모양이다. 아직 받침 있는 단어와 이중 모음에 익숙하지 않은 아이들에게 다양한 단어를 가르쳐 주고 읽고 쓸 수 있게 하는 것이 수업의 주 내용이다.
별일 아닌 일에도 까르륵 웃는 아이들 덕분에 단어 공부는 언제나 재미있다.
특히 동물을 좋아하는 아이들은 단어 하나를 쓸 때마다 그 동물로 변신한다. 호랑이를 공부하면 여기저기서 어흥 거리는 아기 호랑이들을 볼 수 있다. 고양이를 쓸 때면 자기 어제 고양이 두 마리를 만져 보았다며 자랑하느라 바쁘다. 돼지를 배울 때는 돼지고기 좋아한다며 먹고 싶단다. 그러다 오늘은 말을 배웠다.
“이히힝! 힝!”
이번에는 자기들이 말이라도 된 것처럼 뛰어다닌다.
“아이고, 너네들이 말이냐? 왜 말처럼 뛰어다녀?”
그랬더니 아이들 대답이 당황스럽다.
“저 말 맞는데요?”
이게 무슨 소리인가? 자기들이 말이라니? 내가 의아한 얼굴로 쳐다보니 이번에는 자기들끼리 떠든다.
“야! 너도 말이야? 나도 말인데?”
알고 보니 이 녀석들 전부 말띠다. 2014년생 말띠라니 와! 정말 격세지감이다.
자기들끼리 우리 반에도 말띠 많다며 쓰기 공책 쓰다 말고 수다를 떤다. 아이들은 자기랑 같은 학년 친구들이 모두 같은 띠라는 것이 신기한 모양이다. 그 모습을 재미나게 보는데 갑자기 준우가 묻는다.
“선생님은 무슨 띠예요?”
아이들에게 내 띠를 알려준다고 내 나이를 알리는 없지만 어쩐지 아이들에게 띠를 알려주기가 부끄럽다.
“선생님은 무슨 띠일까요? 한번 맞춰 볼래요?”
말이 끝나자마자 준우가 자기가 확실히 안다며 소리친다.
“선생님은 호랑이띠예요!”
“땡! 근데 선생님이 왜 호랑이띠예요?”
“선생님은 어흥을 잘 하잖아요!”
지난번 호랑이가 나오는 동화를 읽어줄 때 실감 나게 어흥! 하고 외쳤더니 그게 기억에 많이 남았나 보다. 아이들 덕분에 내 동화 구연 능력과 연기도 나날이 늘고 있다. 생각난 김에 손동작까지 더해 어흥! 하고 외쳐주니 다들 까르륵하며 웃느라 정신이 없다.
그 와중에 내가 틀렸다는 말을 하자마자 서로 자기들이 알고 있는 띠들은 다 불러 본다. 내가 전부 땡! 하고 소리치자 갑자기 옆에 있던 단오가 “알았다!”를 외친다. 드디어 답이 나오는가 싶어 내가 웃으며 물었다.
“뭘 알았는데요?”
“선생님 무슨 띠인 줄 알았아요!”
드디어 답이 나오는가 했더니 장난기 어린 단오의 눈빛이 아무래도 이번에도 꽝인 것 같다.
“무슨 띤데요?”
“선생님은 유니콘 띠예요!”
마스크 속으로 앞니 빠진 귀여운 입을 벌리고 큭큭 거릴 단오를 생각하니 나도 웃음이 터진다.
“맞아요! 선생님은 유니콘 띠예요. 원래는 뿔이 하나 있는데 평소에는 귀찮아서 떼고 다녀요. 우리 단오가 어떻게 알았지?”
내가 장난스럽게 웃으며 고개를 숙여 묻자 단오가 기분 좋게 휘어진 반달눈으로 나를 쳐다보며 대답한다.
“전 다 알아요.”
나를 제일 좋아해 주는 단오는 나도 자기들처럼 말띠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나 보다. 말이랑 똑같이 생겼어도 뿔 하나 더 있는 상상 속의 동물인 유니콘이라니! 아이들의 상상력은 언제나 나를 행복하게 만든다. 오늘 같은 날은 나도 어린아이로 돌아가고 싶다. 그래서 저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무한한 상상의 세계에서 아무 걱정 없이 웃을 수 있으면 좋겠다. 비록 꿈에서도 이루기 힘든 바람이지만 오늘은 나도 나이 걱정하지 않고 재미난 꿈을 꾸며 잠들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