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따리 선생님 이야기
달빛 초등학교 수업도 이제 좀 적응이 되었다. 처음에는 낯설어 하던 아이들도 이제는 나와 친해졌다고 장난도 친다. 월, 화, 수 수업만 하고 목요일과 금요일은 햇빛 초등학교로 가기 때문에 수업을 못 한다고 하니 아이들이 매일 수업을 하고 싶다며 생떼를 부린다. 그래도 나와 같이 공부하는 게 싫지는 않은 모양이구나 싶어 안심이 되었다.
이제 완연히 가을로 들어선 계절을 체감하며 달빛 초등학교로 향한다. 달빛 초등학교 후문으로 들어서면 교정 내 예쁘게 물든 단풍나무가 나를 제일 먼저 반긴다. 그 단아하고 고운 모습에 반해 휴대폰을 꺼내 카메라에 담아본다. 어쩐지 오늘도 기분이 좋다.
수업 시작 전에 도착해 수업을 준비하고 아이들을 기다리는 시간은 항상 즐겁다. 참새 같은 아이들은 도착하자마자 가방을 벗어던지고 오늘은 이 책을 읽어 달라며 가지고 온 책을 꺼내 든다. 동화책을 챙겨가 수업이 끝난 후 한 권씩 읽어주었더니 이제는 자기가 읽고 싶은 책을 한 권씩 가져오기 시작한다. 아이들의 이런 변화가 너무도 기쁘다.
열심히 수업을 하다 갑자기 학부모 한 분께 급하게 연락할 일이 생겼다. 급한 일이라 아이들에게 잠시 양해를 구하고 최대한 용건만 간단히 하고 끊었다. 그때 가만히 통화를 듣던 단오가 손을 들고 질문을 한다.
“선생님, 우리는 무슨 반이에요?”
아마도 단오는 내가 전화를 걸어 소개하는 말이 신경 쓰였나 보다.
“안녕하세요? 저는 방과 후 수업 교실 교사입니다.”
그 말에 그제야 아이들이 우리 수업을 왜 하는지도 잘 모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수업의 정식 명칭은 기초학력 향상교실이다. 사실 이 말은 ‘기초 학력 수준이 부진한 아이들의 수업 능력 향상을 위한 교실’을 줄인 말이라고 할 수 있는데 보통 다른 학교에서는 두드림 교실이나 쑥쑥 교실이라는 말을 사용하기도 한다. 두드림 교실은 아이들의 꿈을 두드리는 수업이라는 의미인데 사실 1학년 학생들에게는 꿈을 두드린다는 표현 자체가 어려우니 두드림 학교라는 표현을 쓰기도 어렵다. 급한 대로 알기 쉽게 방과 후 수업 교실이라고 했더니 이것조차 아이들에게는 낯선 표현이었나 보다.
하기야 아이들에게 우리의 수업은 어느 날 갑자기 엄마와 담임선생님이 가라고 해서 오게 된 억지 수업이었을 테니 분명 처음에는 오기가 싫었을 것이다. 학원에도 가야 하고 다른 친구들처럼 집으로 가고 싶은데 남아서 공부까지 해야 한다니 누가 오고 싶었을까?
하지만 이제는 매일 오고 싶어 하다 못해 이 작은 교실에서 살고 싶다는 아이들이니 아이들에게 수업의 이름을 정해보게 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참에 아이들에게 투표의 개념을 알려 주는 것도 분명 좋을 것이다.
아이들에게 우리 반의 이름을 정하자고 했다. 그 소리가 끝나자마자 소리를 지르며 즐거워한다.
본격적으로 회의를 시작하며 첫 번째로 의견을 제시해 보라고 했다. 아이들은 이제 제법 발표에도 능숙하다. 소리를 지르거나 답부터 말하는 대신 얌전하게 손을 들고 기다린다. 제일 먼저 손을 든 학생부터 답을 말하거나 동시에 들었다면 가위, 바위, 보로 순서를 정한다. 한 명씩 2, 3개씩 의견을 제시하니 제법 많은 의견이 모였다. 짱구 반부터 토끼 반, 귀신 반, 해적 반까지 귀엽고 재미난 대답들이 많았다.
최종 선택에 오른 몇 개의 이름을 추려 보니 모두 4개의 이름에 표가 가장 많았다. 하나를 정해야 하니 각자 진심으로 원하는 이름에만 손을 들자고 했다. 아이들은 생각보다 망설이지 않고 선택한다.
드디어 우리 반의 이름이 정해졌다. 평소 악어를 좋아하는 우람이가 제시한 악어반이다.
“우리 반의 이름은 이제부터 악어반입니다! 땅!땅!땅!”
아이들이 소리를 지르며 신나게 웃는다. 우리는 모두 악어들이고 선생님은 학생 악어를 가르치는 선생님 악어라고 하니 배꼽이 빠져라 웃는다. 사소한 것 하나에도 이렇게 즐거워하는 아이들을 보니 내가 더 신이 난다.
하는 김에 구호도 만들어 본다.
“자! 선생님이 악어들! 하고 외치면 여러분은 크악악! 하는 겁니다! 어때요?”
다들 대답도 하기 전부터 악어가 아니라 공룡이라도 된 것처럼 아우성이다.
“자! 악어들!”
“크악! 크아악! 어흥!”
다들 무서운 악어가 된 것처럼 두 팔을 접어 흉내를 낸다. 그 모습이 귀여워 나도 같이 진짜 악어 선생님이 되어 본다.
“자, 그럼 수업 계속하겠습니다. 악어들!”
“크악!”
오늘도 잠자다 깨어난 악어처럼 신나게 공부하는 아이들 덕분에 시간 가는 줄도 모르겠다.
우리 반 이름을 정하고 다음 날 아이들을 앉히면서 소리쳤다.
“악어들! 자리에 앉으세요!”
그랬더니 갑자기 아이들이 악어반 하기 싫단다. 어제 자기들끼리 이름을 정해놓고 이제야 딴소리라니, 당황스러워 아이들 보고 왜 그러냐 물었다. 그랬더니 자리에 앉아 있던 단오가 갑자기 일어나 내 허리를 껴안는다.
“나는 선생님 때문에 매일 행복하니까 우리 그냥 행복반 해요.”
아이고, 이렇게 또 아이들의 한마디에 나는 찜통 속 떡처럼 말랑말랑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