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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선오 May 31. 2022

배고픈 아이들

- 보따리 선생님 이야기

 달빛 초등학교에서 일하면서 가장 신경 쓰였던 문제가 하나 있다. 계약서를 쓸 때도 뭔가 이상하다 싶기는 했지만 기초학력 교실 예산에 간식비가 없다고 한다. 


 보통 기초학력 향상 교실의 운영예산은 강사비와 교재비, 그리고 간식비까지 포함된다. 더 좋은 환경에서는 운영비까지 포함돼서 아이들의 공책이나 연필과 같은 비품도 준비되는 경우가 있다. 


 햇빛 초등학교는 운영비와 간식비가 포함되어 담당이신 체리 선생님이 매일 맛있는 과자며 음료수와 젤리 등을 준비해 주셨다. 덕분에 매일 아이들에게 간식을 나눠주면 내 마음까지 배불렀다. 또 가끔은 선생님께서 아이들의 학습을 위한 용품 등을 말하지 않아도 미리 챙겨주셔서 수업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그런데 달빛 초등학교는 간식비는커녕 교재비조차 부족해 내가 따로 학습지까지 만드는 실정이다. 아이들을 위해 자료를 만들고 인쇄와 복사까지 하는 일이 조금 힘들기는 하지만 아이들의 교육을 위한 것이니 힘들어도 참을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간식이다. 


 1학년 아이들은 정말 항상 배고프다. 아이들은 방금 급식을 먹고 오고도 나만 보면 배가 고프다고 아우성이다. 더구나 우리가 공부하는 연구실은 개수대와 전자레인지까지 있는 작은 연구실로 가끔 학교 직원분들이 이곳을 탕비실처럼 사용해 간식을 드시기도 한다. 누군가 라면이라도 먹고 간 날은 아이들뿐만 아니라 나까지 배가 고프다. 


 얼마 되지 않는 강사 급여에 특별한 날마다 간식과 선물, 아이들의 도화지부터 색종이까지 사주고 있는 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니다. 이 병아리 같은 녀석들에게 배불리까지는 아니어도 분명히 보상이 필요하다. 


 오늘도 먹을 걸 달라고 조르는 녀석들에게 지난번에 샀던 젤리가 기억나 호언장담을 하고 가방을 뒤지는데 아뿔싸! 가방을 바꿔 들고 온 탓에 젤리가 없다.


 어쩌나 싶어 난감해하고 있는데 지난번에 약국에 다녀오면서 캐릭터가 귀여워 샀던 복숭아 맛 비타민C가 생각났다. 약국에 갔을 때 이 가방을 들고 갔으니 혹시 주머니에 있는 것은 아닐까 싶어 뒤져보니 다행히 딱 네 개가 남았다. 


 알레르기가 있는 아이가 있을 수도 있으니 먼저 다들 복숭아 먹어봤냐고 질문부터 했다. 아이들은 그게 퀴즈 문제였는 줄 알았나 보다. 다들 손을 들고 몰라도 되는 정보를 남발한다.


 “선생님! 저 복숭아 예전에 먹어봤어요!”


 “엄청 달아요!”


 “우리 엄마가 사주셨어요!”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내가 가방에서 비타민C를 꺼내자마자 아이들이 소리를 지른다. 별것도 아닌 것에 이렇게 환호하는 아이들에게 정말 고마울 뿐이다. 


 각자 취향대로 상어가 그려진 것과 여우가 그려진 비타민을 고르더니 바로 마스크 속 입안으로 집어넣는다. 배고픈 아이들에게 코로나 때문에 위험하니 수업이 끝나고 먹으라는 말이 통할 리가 없다. 그래도 입안에 복숭아 비타민을 물고 기뻐하는 아이들을 보니 내 맘이 다 달콤해진다. 


 안 되겠다. 수업이 끝나고 아이들이 집에 가자마자 담당 선생님을 찾아갔다. 


 “선생님! 우리 아이들이 너무 배고파요!”


 아무리 생각해도 이번 수업 예산에 간식비가 포함되지 않은 것은 너무 이상하다. 다른 학교에는 모두 있는 간식비가 대체 왜 달빛 초등학교에만 없을까? 


 선생님께 물으니 애초에 예산에 강사비와 교재비밖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내 생각에는 담당 선생님께서 잘 모르시는 게 아닌가 싶지만 그렇다고 선생님을 추궁할 수는 없다. 


 담당 선생님께 지난번에는 1학년 2반 담임 선생님께 예스 빵 한 상자를 후원받았다고 토로하며 아이들을 위한 간식을 구걸했다. 나의 이런 간절한 부탁에 선생님도 두 손을 들었다.


 선생님은 자리에서 일어나 꼭꼭 숨겨두었던 비밀창고를 열었다. 본인도 학생들에게 아껴서 나눠주고 있다는 비타민C 한 통과 달콤한 과일 캐러멜을 반 봉지 챙겨주었다. 


 햇빛 초등학교에 비하면 정말 적은 양이지만 그래도 비타민C를 좋아하는 아이들은 분명 행복해할 간식이다. 나는 전쟁에 승리한 장군처럼 그 작은 성과물을 들고 우리가 수업하는 연구실로 다시 향했다.

 

 혹시나 누가 몰래 먹을까 걱정이 되어 기초학력 향상 교실 물건이니 손대지 말라고 경고의 표시도 남겼다. 교재가 들어있는 수납장에 간식을 꼭꼭 숨겨두고 다시 불을 끄고 연구실을 나왔다. 나오는 길에 괜히 배가 불렀다. 마치 겨울을 나기 위해 도토리를 가득 숨겨둔 다람쥐의 심정이었다. 


 다음 주 아이들에게 간식을 줄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내가 신난다. 내 아이가 먹는 모습만 봐도 배부르다는 부모님의 마음까지는 아니지만 달콤한 사탕을 입에 넣고 행복할 아이들 덕분에 내 마음도 함께 달콤해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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