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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정 Jun 17. 2022

회사원이라는 모험 : 회사와 퇴사에 관한 50개의 단어

단어 4: 회식

날이 좋든, 날이 좋지 않든, 적당한 날은 없었고, 모든 회식이 끔찍했다.


6시 반에 시작하든 7시에 시작하든 빨라야 9시. 끝나고 집에 오면 10시. 업무 외 개인시간을 희생한다는 물리적인 개념 자체가 내게는 생살을 도려내는 고통이었다.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과 입에 맞지도 않는 음식을 먹는 둥 마는 둥 하며 나는 입을 닫고 이 시간을 견뎠다. 하하하. 네. 와! 이런 반사적 반응 말고 내가 또 무슨 말을 하긴 했을까? 흥미로운 건 말을 하면 하는대로, 안하면 안하는대로 구설수에 올랐다는 것이다. 이 대리는 참 말이 없어. 나참. 당최 무슨 말을 해야 한다 말입니까.


그래서 안 갔다. 신입사원 시절부터 나는 이미 가급적 회식에 불참했다. 금요일 오후 8시 비행기를 타고 김포공항으로 같이 퇴근한 제주 프로젝트 선배들은 그 시간에도 회식을 하러 서울역으로 향했다. 동료라는 게 생긴 지금은 그 마음이 조금은 이해가 된다(그래도 회식은 안 간다).


그러나 나는 기를 쓰고 안 갔다. 제주에서 돌아온 후에도 가급적이면 안 갔다. 참석한다고 했다가 회식에 가야 한다는 사실에 종일 시달린 끝에 5시나 6시에 불참을 통보하기 일쑤였다. 나중에 알고 보니 팀의 조직활성화 담당자였던 선임님도 다 알고 있었다. 회식 때마다 우리 부모님이 오시거나, 보일러가 고장나거나, 베란다 하수구가 막혀 물이 역류하는 사고 같은 것이 일어났을 리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래도 늘 성의있고 납득 가능한 이유를 제시하려 노력했는데, 티가 났다니. 실망이다.


혹여나 참석하는 날에는 자리를 옮기지 않고 한 자리에 앉아 있었다. 내 옆자리의 동료들은 (우연찮게도) 빠르게 자리를 옮겨갔고 내 테이블은 (유난히) 조용했다.


술을 마시고 추태를 서슴지 않는 자들의 얼굴을 다음날 회사에서 보는 것도 유쾌한 일은 아니었다. 누구나  아는 뻔한 얘기다. 손을 덥썩 잡는 ,  가슴 크기 운운하는 ,  ,  화장을 품평하는 . 얼굴은 물론 머리숱 운운하는 자도 있었다. 뻔하긴 하지만  새롭다. 새롭게 질린다. 나이가 들면서 좋아진 점 중 하나는 이런 수작이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여하의 사정으로 회식에 참석하지 않아 팀장에게 반복적으로 지적당하기도 했다. 그래도 굴하지 않고 회식을 멀리했지만. 그렇게 나는 조직 내에서 소극적인 부적응자의 이미지를 굳혀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석한 회식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진급 축하연이었다. 그날 오랜만에 용기와 기운을 발가락 끝에서부터 끌어올려 강 건너 본사까지 갔는데, 아뿔사. 나는 내가 그해 진급 누락자였다는 걸 깜빡했었던걸까? 게다가 팀 입사 동기는 특진을 하는 경사가 있는 자리였는데, 골라도 이런 날을 골라 참석한다. 아무도 내 진급 (누락) 따위 관심이 없었겠지만 나는 바늘 방석에 앉은 기분이었다. 다른 사람(특히 팀장님)이 불편해할까봐 전전긍긍했다. 없는 사람처럼 존재하려고 그날 만큼은 내 테이블에 앉은 동료들과 최선을 다해 떠들었다.


회식과 관련해 사탕처럼 마음에 품고 다니는 에피소드는 내가 중국집에서 고량주 마시길 즐거워한다는 것을 알아봐주고 언급해주던 상냥한 선배 아저씨 이야기이다. 이것만은 이상하게도 괴롭지도, 오지랖으로 느껴지지도 않는다. 그가 보여준 조심스러운 관심은 어쩐지 소중한 기억으로 간직하고 있다.


이런 고로, 코로나가 왔을 때 나는 더 적극적으로 회사에 다닐 수 있었다. 어려운 시기였지만 역설적으로, 회식도 워크샵도 술도 없는 깨끗하고 평화롭고 자유로운 시기였다. 회사에서 내가 만난 단 한명의 동지, ‘대리님’과 나는 비밀스럽게 이 기쁨을 나누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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