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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정 Jul 04. 2022

회사원이라는 모험 : 회사와 퇴사에 관한 50개의 단어

단어 6: 아빠

뭐랄까, 우리는 가깝고도 먼 사이였다. 흔한 얘기다. 그는 평범한 가정의 가장이었다. 아빠는 회사에 열심히 다니고 엄마는 가정주부로 아이들을 돌보는, 80년대 중반 꾸려진 평범한 가정 말이다. 아빠는 자상하거나 다정하지 않지만 자녀를 사랑하는 그 세대 보통의 아버지였다. 그 자신이 아버지를 일찍 여의었기 때문에 아빠 역할을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른다는 것, 그도 아버지 역할은 처음이어서 후회하는 일(가령 너무 엄하게 대했다는, 그러나 이 역시 당시로서는 매우 평균적인 아버지의 특성일 뿐인)이 있다는 것은 내가 이십대 중반이 넘어서야 알게 된 그의 사정이었다.


정치적 의견 대립과 정서적 갈등을 겪었지만 우리는 대체로 서로를 존중했다고 생각한다. 아빠는 남아선호사상에 절은 사람이었지만 자라면서 내가 크게 차별받은 기억은 없다. 있더라도 난 그다지 개의치 않을 수 있었다. 엄마가 내게 준 사랑과 자신감이란 그런 것이었다. 나 역시 아빠를 살갑게 대하는 애교 많은 딸 역할은 다섯 살 이후로 하지 않았다. 십대에는 대개 아빠를 어렵고 불편하게 생각하며 지내온 것도 부인하지는 않겠다. 그러나 나는 어린 시절부터 거의 전적으로 내 인생에 대한 결정권을 행사했고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서로 존중했지만 또한 다른 사람이었고 서먹한 시기도 있었다.


그와 나의 관계가 다른 국면으로 접어든 계기는 확실히 내가 회사원이  것이었다. 아빠는 육사에 가서 군인이 고 싶었다. 유복한 가정에 태어나 사랑받고 자란 어린이었지만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면서 국민학교만 졸업한  시골에서 소를 먹이고  베러 다니며 집에 보탬이되어야만 하는 장손이었다. 지금도  일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아직 아이였을 뿐인데, 너무 어려운 일을 겪으며 자랐다. 장작을 하러 갔는데 전부 습기를 머금어 땔감으로  나무가 없어 곤란에 처한 꿈을 사십대까지도 꿨다는 얘기는 아름답지만 슬프다.


아빠는 운이 좋게 담배회사에 취직해 정년퇴직까지 38년을 다니며 가족을 부양했다. 동시에, 타이밍을 먹어가며 중고등학교 검정고시를 마쳤고 지역의 대학교를 졸업해 삽십대에는 학사 학위를 취득한 사람이다. 나는 그런 그가 대단하다고 생각하지 않은 적이 없다. 정말 대단한 청년이었다(완벽하다는 뜻은 아니다. 그는 그저 인간일 뿐이니까). 조금 특별한 점이 있다면, 자기 세대 답지 않게 워라밸을 추구하는 방식으로 삶을 경영해왔다는 것이다. 38년 중 적어도 20년 정도는 그렇게 지내왔다고 동거인으로서 나는 기억한다.


운이 좋다고는 했지만, 그가 회사원으로 그다지 행복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몇 가지 일화를 들은 바로는, 회사가 준 몇 번의 실망과 좌절을 경험하면서 그는 회사와의 관계를 일찌감치 정리했다(이제는 나도 그 마음을 조금 이해하게 되었다). 가정과 개인의 삶에 무게를 두는 쪽으로 말이다. 그래서였을 것이다. 나와 동생이 연이어 회사원이 되었을 때, 자랑스러워하는 한편으로는 우리가 불쌍하다고 엄마에게 입버릇처럼 말했던 것은.


아빠는 자녀로서보다 일하는 사람, 회사원으로서의 나를 한결 가깝게 느끼는 것 같다. 일종의 동료/동류의식이랄까. 애들과 노는 법은 잘 몰랐지만 경제활동을 하는 성인으로서는 해줄 조언이 풍부한 어른이었다.


나 역시, 또렷하게 기억난다. 2012-3년 쯤인가. 서울스퀘어에서 집에 가는 초록 버스를 타면 아빠 생각이 났다. 엄마를 괴롭게 했던 아빠의 극단적인 말들(이를테면, 때려치고 고향에 내려가 농사나 짓겠다느니, 택시 운전사가 되겠다느니 하는 것 뿐 아니라 엄마에게 정서적으로 지나치게 의존하면서 필터 없이 흘렸던 불평불만의 말들)은 꼼짝 없이 이 회사원의 삶을 30년은 살아내야 한다는 갑갑함에서 나왔겠구나, 하고 그의 입장을 절로 이해하게 되었다. 엄마에겐 그 감정적 쓰레기를 받아주는 게 고통스러운 일이었다는 걸 잘 알면서도 아빠가 불쌍했다. 끝이 정해진 인생이라는 느낌에 나는 질식할 것 같은데, 그가 어떻게 그걸 다 견뎌냈는지 모르겠다. 그는 정말 성실한 회사원이자 아버지였다. 그의 작업복에서 나던 찐 담뱃잎의 향기로운 냄새를 아직도 내가 좋게 추억한다는 것을 그에게 감사인사처럼 말하고 싶어질 때가 있다.


그래서 아빠가 정년 퇴임식 저녁 연회에서 회사 아저씨들에게 이제 자기가 어디 속한 사람인지 아연하다고 말했을 때 나는 적잖이 놀랐다. 아니, 아빠마저. 그렇다면 나도 오래 머물면 여기에 익숙해지는 걸까? 그럴 수 있는 걸까? 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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