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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정 Mar 24. 2021

1주. 여자, 정혜(2005)

2019. 07. 06. by 감자

나는 영화를 썩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하고 다닌다. 실제로 영화를 많이 보지 않는다. 딱 한번 어쩌다 보니 영화 아카데미 수료를 위해 학생들이 찍는 단편영화 촬영장에서 1박 2일로 스크립터를 한 적이 있었고, 신기한 경험이라서 여기저기 말하고 다녔고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내가 영화를 되게 좋아하는가 보다 오해하기도 했지만, 그 일 말고는 영화와는 먼 생활을 했다. 지금도 상영 중인 영화에 관심도 없고, 같이 영화를 보러 가자고 하는 사람도 없다. 다시 한번 말한다, 같이 영화를 보러 가자고 하는 사람도 없다.


내가 영화를 썩 좋아하지 않게 된 데에는 바로 저 이유가 가장 크다. 같이 영화를 보러 가자고 하는 사람이 없다. 아마도, 잘은 모르지만, 대한민국의 영화 관람객을 분석해 보면 과반수의 관객들이 데이트 목적으로 영화관을 찾았다고 말하지 않을까? 영화가 친교의 목적을 가진 만남의 도구가 되는 것은 너무나 흔한 일이고, 반대로 말하자면 친교의 목적을 가진 만남의 도구가 필요 없는 사람(나 같은!)에게 영화는 딱히 챙겨 봐야 할 필요가 없는 컨텐츠이다. 그래서, 나는 영화를 좋아해야 할 필요성이 없었던 것이다!


그러니 내게 영화를 보러 가자고 하는 사람이 있으면 나 역시 기껍게 영화를 즐긴다. 당신은 내게 영화를 보러 가자고 가장 자주 말하는 사람이었고 나는 늘 거기에 응했다. 그런데 당신 역시 영화를 그렇게 자주 보는 사람은 아니었던 것 같고 우리가 같이 본 영화가 그렇게 많지는 않다(고 기억하고 있는데 아닐 수도 있으니 서운해하지 마시라…. 나의 기억력은 너무나 나쁘기 때문에). 당신과 관련된 영화에는 ‘브로크백 마운틴’이 있는데 이건 우리가 두 번인가 세 번인가를 보러 가기로 해 놓고 결국 보지 못했던, 심지어 마지막 한 번은 표까지 끊어 놓고도 내가 기분이 나빠져서 못 보겠다는 사춘기 소녀 같은 소리를 하는 바람에 못 보았던, 우리와 인연이 없었던 영화로 기억에 남아 있는 작품이다. 보지도 않았는데 기억에 남다니 그 자체만으로도 놀라운 인연인가 싶기도 하지만.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당신과 함께 본 영화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영화는 ‘여자, 정혜’다. 코엑스에 가서 영화를 보았던 것 같은데, 영화를 보고 나오며 북적북적하고 정신없는 영화관 로비에서 우리 둘 다 고요했었던 것도 기억이 난다. 삼성역에서 2호선을 타고 하숙방으로 돌아가며 느끼던 피로감과 막막함도 같이 떠오른다.


‘여자, 정혜’에는 우체국 직원으로 일하는 조용한 여자 주인공 정혜가 등장한다. 정혜를 맡은 김지수는 너무 미인이라서 평범하고 소심하기 비할 데 없을 정혜에 어울리지 않는다 싶은 감상이 들기도 했으나 영화가 진행될수록 김지수의 우아한 아름다움이 정혜의 예민함을 잘 부각하였다고 설득되고 말았다. 일요일도 빼놓지 않고 매일 이른 아침 맞춰 둔 알람을 들으며 하루를 시작하는 정혜. 혼자 사는 집 안에 놓인 화초처럼 조용하고 시들시들해 보인다. 신혼여행지에서 첫날밤에 짐을 싸 집으로 돌아오는 바람에 파혼을 당하고, 신발 가게 남자 점원이 ‘언니’라고 부르는 것을 견디지 못하고, 마감을 앞둔 소설가에게 무리한 데이트 요구를 하고 그를 기다리는 자신에게 지독한 모욕감을 느끼는 여자, 정혜. 김지수의 아름다움과는 1도 관계가 없는 나지만 정혜가 가진 히스테릭한 성마름은 공감이 되었다.


영화는 정혜가 가지고 있는 히스테릭함을 유년기에 경험한 성폭력에 기인하는 것으로 표현하였다. 상업영화가 되기 위해서는 인물의 행동에는 누구나 납득할만한 이유가 있어야 하지만, 나는 그 지점이 이 영화가 ‘여자’ 정혜임에도 불구하고 ‘남자’ 감독이 가지는 한계점이라고 여긴다. 여성이 가지는 신경질적인 부분이 성적인(혹은 남성과 관련된) 고통에서 비롯한다는 생각은 영화에 만연해 있는 스테레오 타입이다. 여성을 성적인 타자로 환원해서 취급하는 얄팍한 해결 방식인 셈이다. 만약 여성 감독이 이 영화를 찍었다면 똑같은 정혜의 모습이라 할지라도 그 인물의 내면을 보다 다층적으로 그렸을 것이다. 매번 똑같은 일상에 대한 짜증, 변화가 없을 자신의 미래에 대한 답답함, 결혼 외에는 다른 변화에의 가능성이 가로막힌 삶에 대한 무기력함, 그럼에도 일상에서 발견하는 사소한 즐거움….


그럼에도 ‘여자, 정혜’에는 여성이라면 탐복할 지점들이 존재했다. 정혜가 가진 결벽증적인 성미는 내 마음에 스몄다. 정혜의 결벽성은 사회에 생존을 위한 아주 최소한의 영역에만 발을 디디고 있기 때문에 만들어진다. 정혜는 타의와 자의로 스스로를 외부와 고립시킨다. 영화를 보면서 나는 대부분 혼자였고, 지금도 혼자이며, 앞으로도 내 영혼이 혼자 있으리라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영화는 그런 기분은 나 혼자서 느끼는 것이 아니고 ‘여자’라는 성별을 가지고 있는 존재에게는 보편적일 수도 있다는 것을 알려 주었다.


정혜는 나이가 많아 봤자 삼십 대 초반이고, 건강하고 아름답지만, 살아갈 날이 얼마 남지 않은 할머니의 영혼을 갖고 있었다. 영화를 볼 때 우리는 22살이었다. 그런데 왜 나는, 그리고 내 추측이 맞다면 당신 역시, 정혜의 막막함에 깊이 공감하였을까. 정말이지 그때 나는 정혜의 삶이 나의 미래를 그려 낸 것 같다고 생각하였고, 어느 정도는 지금의 나와 크게 다른 점이 없다는 점에서는 자기 예언이 맞아떨어졌다고 볼 수 있겠다. 그리고 나는 그 허약한 영혼이 그다지 싫지 않다. 내가 바라는 것이 있다면 쓸쓸한 영혼이 가질 수 있을 강퍅한 모습에 우아함이 깃드는 것이다. 나 자신에게 엄격하고 누구도 알아차리지 못할 나만의 시련을 제공하며 그를 스스로 극복하여 나를 인정할 수 있는 강인함이 함께 하면 좋겠다. 그리고 그런 생각을 하면서, 사실 정말로 나는 혼자는 아닐 거라는 기대를 하고, 이러한 바람을 이해하고 공감하고 어쩌면 함께 할지도 모른다는 사람과 같이 이 영화를 보았다는 사실에 기쁨을 느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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