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제 다른 색이 되었는데...
나는 자기 색이 뚜렷한 편에 속하지만, 만나는 상대에 따라 그의 색이 나에게 옮아 오는 것도 좋아하고, 나의 색이 상대에게 옮아가는 것을 보는 것도 꽤나 즐기는 편이다.
사람을 만날 때면 그 사람의 매력적인 색들에 주목한다. 그런 고유의 색은 하루 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인생 전반에 걸쳐 다듬어져 오면서 결국에 살아남은 가장 값지며 진정한 것들이기 때문에 단번에 따라 할 수 없을뿐더러 따라한다고 딱 그 맛이 나지도 않는다.
가령 사람을 만나 첫 마디를 뗄 때 하는 시선을 끌만한 표정이라든가 제스처, 눈빛. 중간중간 사이를 두고 차를 한 모금 마실 때의 차분한 손놀림이라든가 상대의 말을 경청하는 태도. 반론을 제기할 때의 머뭇거리는 듯하다가도 제 속도를 빠르게 찾아가는 정연한 말본새. 상대가 무례하게 굴었을 때 함께 무례해지지 않음으로써 오히려 상대의 무례를 두드러지게 하는 태도. 당신의 말에는 전혀 동의할 수 없지만 당신이 그렇게 밖에는 말할 수 없는 인간인 것도 이해합니다,를 응축한 '우린 노선이 달라요' 계열의 미소.
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그렇지만 정작 자신은 언제 어떤 식으로 자신이 쓰고 있는지도 모르는, 체화된 저마다의 방식들.
한 사람을 만나 알아가고, 사귄다는 것은 이러한 저마다의 색을 서로 옮기고 물들어간다는 것인데,
상대에게 물들어 가는 나의 모습이 전혀 매력적이지 않고
반대로 내게 물들어 가는 상대의 모습이 못내 꺼려진다면
거기서 그만 두는 것이 맞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