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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daymorning Dec 08. 2015

지워지지 않는 이름, 너에게.

 매일 아침 일어나면 기억이  리셋되어버리는 사람이 있어. 그 사람은 소중한 기억들을 잊지 않기 위해서

매일 밤 자신의 팔의 안쪽에 펜으로 메모를 해. 자신의 이름과, 기억이 리셋되어 버린다는 사실과 그리고 잊으면 곤란해지는 소소한 것들을.

  그때의 나였다면, 네 이름 석자는 절대 쓰지 않았을 거야. 그랬다면 나는 너를 영영 기억해내지 못했을까?

 아니, 난 기어이 기억해냈을 거야. 점심쯤엔, 아니 늦어도 오후 두시쯤엔 네 이름 석자가 떠오르고 왠지 모르게 마음이 아팠을 거야. 내 팔목의 팔찌를 보곤 또 이상하게 심장이 쿵 내려앉았을 거야. 내리막길을 혼자 뛰듯이 걷다가 이상한 기분에 뒤를 돌아다 보고 한참을 서 있었을 거야. 머리를 고쳐 묶으며 뭔가 익숙한 손길이 떠올라 멈칫했을 거야. 담벼락 바깥으로 고개를 내민 해바라기를 보다가 설핏 눈물이 났을 거야. 파란빛이 돌도록 머리를 빡빡 깎은 청년의 뒷모습을 보면 나도 모르게 따라가 봤을 거야. 그 청년이 나를 보고  말없이 웃기만 하면 나는 영문도 모르고 따라 웃었을 거야. 물어볼 필요도 없이 너란 걸 알았을 거야. 또 어쩔 수 없이 반했을 거야. 우리가 처음 만났던 그때처럼.  

 순간에 완성되는 사랑이 있냐고 물으면, 나는 이제 그렇다고 대답해. 너를 만나고 난 이후로는 쭉. 잃어버린 쌍둥이 형제를 만난 듯 나는 다시는 너와 헤어지고 싶지 않았어. 어째서 우린 태어난 순간부터 함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뿐이었어. 내가 없었던 네 인생이 궁금해서 미칠 지경이었고 네가 없었던 내 인생이 다 무의미하게 느껴졌어. 나는 너를 찾아서, 내 주위 공기가 달라지고 비로소 숨이 잘 쉬어졌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네 옆엔 이미 오래 전부터 다른 사람이 있었다는 걸 알았어.

  매일 아침 일어나도 너에 대한 기억은 하나도 리셋되지 않고 그대로였어. 너를 잊으려는 노력으로 시작해서 하나도 잊지 못했다는 자괴감으로 잠이 들었어.  소중한 기억들을 매일 잊어버리고 다시 시작해야 하는 사람과 잊어야 하는 것들을 하나도 잊지 못한 채 살아가야 하는 사람. 누가 더 불행하다고 생각해?

 나는 그때 너무 힘들었어. 혼자 견뎌야 했으니까. 사랑부터 이별까지 고스란히 다 내 몫이었으니까. 그래도, 다시 택하라면 나는 또 너를 만나고 또 너를 속절없이 사랑해버리고 또 혼자 아파할 거야.

 

왜냐하면 내  마음속에 적혀 지워지지 않는 너의 이름이 이제는 아프지도, 지워버리고 싶지도 않아서,

 나는 조금 더 아름다워졌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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