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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데이수 Apr 20. 2018

쌀 전문 편집샵을 만나다.

정미소의 변신, 아코메야(Akomeya)

긴자 골목 한켠 쌀 전문 편집샵 아코메야(Akomeya)에 가 보았다. <모노클(Monocle)> 가이드북 시리즈 도쿄편에 소개되어 알게 된 곳.


도쿄는 도로도 잘 정비되어 있고 구글 지도도 비교적 잘 맞는 편인데도, 긴자 인근은 오래된 거리라 그런지 앞뒤로 가게가 빼곡해 핸드폰 켜 놓고 길을 헤매기 일쑤다.


화려한 긴자 거리 뒷편, 조금은 인적이 드문 골목에 혼자 환하게 불 켜진 아코메야를 찾을 수 있었다.



글쎄, 여기를 식재료샵이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라이프스타일샵? 그 중간 어디쯤에 끼워넣을 수 있을 것 같다.



사실 아코메야의 출발은 정미소다.


일본 전역에서 좋은 쌀을 공수해, 주문 즉시 가게에서 직접 도정해서 판다. 20kg씩 포대로 파는법이 없다. 배스킨라빈스처럼 매대에 종류별로 쌀을 진열해놓고, 1kg에 우리나라 돈으로 8천원 정도 가격을 받고 아코메야 로고가 새겨진 봉투에 담아서 판다.



사진만 보면 마치 원두 가게 같다.


이 과정을 쭉 경험하고 보면, 원두 살 때처럼 쌀도 조금씩만 사야 신선하게 먹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밥이 다 같은 밥이 아니라 쌀의 품종, 지역, 심지어 그 해 작황에 따라서도 맛의 차이를 느낄 수 있지 않을까?


내가 이런 결론에 이르기까지 아코메야는 특이한 방법으로 쌀을 팔아서 '은근히' 고객을 설득하기도 하고, 쌀 맛 차이를 보기좋게 차트로 만들어 '대놓고' 고객에게 나름의 시각을 제공하기도 한다.

※ 차트 출처 : 아코메야 공식 사이트(링크)



그런데 쌀에 대해 이만큼이나 '코마카이(아주 세세하고 까다롭게 따진다는 뜻의 일본어)'한 사람이라면 쌀 이외의 식재료에 대해서도 분명한 취향을 가지고 있지 않을까?


그래서 아코메야에서는 쌀만 파는 게 아니라, 쌀과 함께 먹을 수 있는 각종 식재료들을 다양하게 취급한다.


질 좋은 양념이나 향신료도 있고, 훈제생선이나 낫또처럼 반찬으로 먹을 수 있는 신선식품도 있고, 일본 각 지역마다의 특산물도 주의깊게 셀렉해서 진열해놓았고, 냉장코너에는 니혼슈나 사케 종류도 있다.



쌀과 식재료에 대한 아코메야의 코다와리를 집약하는 장소가 아코메야 주방, 레스토랑이다. 좋은 쌀과 식재료를 써서 만든 정식 한 상을 맛볼 수도 있다.


한 끼 식사 치고는 가격대가 좀 있지만(런치메뉴가 3만원 가까이 한다), 이 가게에서의 경험을 완성한다는 의미로 큰 맘 먹고 가 보았다.


역시 반찬 어느 하나 입에 맞지 않는 것이 없이 정갈하고 알차다.


사진상에는 잘 안 보이지만 밥에서 어찌나 윤기가 나던지, 보는 것만으로 식욕이 생겨 오카와리(리필)까지 한 공기 해서 다 해치웠다. 음식도 물론 맛있었지만 스토리가 담긴 밥상이라는 점이 더 입맛을 돋궈줬던 것 같기도 하다.



여기까지가 1층 식재료샵.


2층은 라이프스타일샵에 더 가까운데, 앞치마나 나무로 된 벤또 용기처럼 '식(食)'에 관련된 제품도 물론 있고, 딱히 먹는 것과는 관계가 없지만 그래도 아코메야의 '느낌'을 공유하고 있는 갖가지 생활잡화들도 취급한다.


나무로 된 벤또 용기가 참 예뻐서 만지작해 보았는데 가격이 우리 돈으로 15만원쯤 한다. 하하. 정신 차려보니 밥도 잘 안 해 먹는데 벤또 용기가 필요할 일도 없을 것 같아 내려놓았지만, 어쨌든 이 가게의 철학을 공유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2층에서도 뭐든 사고싶어질 것 같다.






이 곳을 둘러보며 생각했다.

취향을 가진다는 건 얼마나 멋진 일인가.


생각해보니 나는 진 밥 된 밥 정도나 구분했지, 이천쌀과 나주쌀의 맛 차이에 대해서는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다.


혹시 얘네들이 좀 쌀을 더 팔아보려고 유난을 떠는 건 아닌가 의심이 들어 주변 일본인 친구들에게 물어보았다.



얘들아 너희는 밥을 먹으면 어떤 쌀을 썼는지 구분이 돼?
조리방법 말고 쌀의 차이 말이야.



놀랍게도, 아코메야를 들어본 적도 없는 아이들마저도 그 정도 맛 구분은 다들 하고 있다고 한다.


평생토록 쌀을 먹더라도, 쌀 맛에 눈을 뜨기 전에는 쌀에 대해 이렇다할 취향을 가질수도 없다.

그냥 있으니까 먹는 것이다.


그보다는, 맛있는 쌀을 만나면 기뻐하기도 하고, 그 품종을 잘 기억해뒀다가 다음에 사러 가 보기도 하고, 때로는 이 쌀이 맛있네 저 쌀이 맛있게 토론도 해 가면서, 쌀 한 알에서도 삶의 즐거움을 찾을 수 있게 해 주는 게 취향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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