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2일, 오늘 하루만이라도 나보다 지구를 먼저 생각했으면
지구의 날(Earth day)은 1970년 4월 22일 미국에서 환경운동의 일환으로 처음 탄생했다. 적어도 이 날 하루만큼은 지구와 환경의 소중함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자는 취지라고 한다. 올해로 벌써 48번째를 맞았는데, 이제는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 각지에서 나름의 방법으로 기념하는 글로벌 이벤트가 되었다.
매년 메인 테마를 정해놓고 진행한다. 올해는 '플라스틱 오염 없는 세상'이 테마라고 한다.
이 곳 도쿄에서도 지구의 날 이벤트가 있어 다녀와 보았다. 요요기공원(代々木公園)의 야외 스테이지쪽 공간을 활용했는데, 부스가 100개나 되는 나름 대형 행사다. 대부분이 NGO/NPO고 중간중간 파타고니아(Patagonia), 닥터 브로너(Dr. Bronner's) 등 일부 브랜드들이 끼어있다. 환경 관련 테마가 과반수 이상이지만, 소외계층을 위한 복지나 분쟁지역의 평화를 지향하는 단체들도 참가했다.
지구의 날인데 복지와 평화라니, 조금 빗나간 것 같지만 SDGs(Sustainable Development Goals, 지속가능발전목표)라는 더 큰 개념을 도입하고 보면 나름 일관성이 있다.
SDGs는 종전 밀레니엄개발목표(MDGs, Millenium Development Goals)를 대체하여 2015년 9월 UN 총회에서 가결된 17가지 목표를 말한다. MDGs가 주로 개발도상국이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주목했다면, SDGs는 조금 더 포괄적으로 선진국이든 개발도상국이든 함께 풀어나가야 할 문제들을 다룬다. 환경도 복지도 평화도, 모두 SDGs가 지향하는 목표들이다.
http://ncsd.go.kr/app/sub02/20.do
사실 지구의 날 이벤트라고 해서 너무 심각한 분위기가 아닐까 걱정도 했다. 하지만 내 삶의 편리함을 생각하기에 앞서 지구의 지속가능성을 생각하는 건 무척 따뜻한 마음이고, 그런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만든 공간인데 불편할 리 없지. 괜한 편견을 가진 데 반성했다.
오키나와 미군기지 증축으로 듀공(인어의 원형이라고도 불리는, 바다의 귀염둥이다.)이 죽어가고 있다고 슬퍼하는 사람들, 환경오염으로 일본의 숲이 줄어들고 있다고 걱정하는 사람들, 동물에게 불필요한 고통을 주는 푸아그라 같은 음식을 먹지 말자고 주장하는 사람들, 복잡한 유통구조 때문에 우리가 소비하는 식품의 '탄소 발자국'이 과하다고 더듬더듬 주장하는 중학생쯤 되어 보이는 어린 환경운동가 친구까지. 이 세상에는 참 여러 가치를 지키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많구나.
저녁에는 야외 스테이지에서 이런저런 공연도 있다고 하는데 나는 오후에 일이 있어서 오전에 잠깐 구경하고 나왔다.
지구의 날 페스티벌이라고는 하지만, 꼭 지구에 관심이 있는 사람만 온 건 아닌 것 같았다. 요요기공원 자체가 주말에 소풍나오기 딱 좋은 장소이기도 하고, 이런저런 체험형 부스에서 목화솜으로 실도 짜고 톱으로 나무도 잘라보다가 유기농 식품점에서 간단히 과일과 야채를 사고, 푸드트럭도 종류별로 준비되어 있으니 끼니까지 해결하고 가기에 좋은 구성이라서다.
그치만 지구에 대한 관심이 뭐 별 거 있나.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나면 조금쯤은 나를 둘러싼 환경의 소중함에 대해 의식하게 될 것이다. 당장 나부터도 집에 오는 길 슈퍼에서 '봉지에 담아드릴까요?'라는 말에 화들짝 놀라 '아뇨, 에코백 있어요'라고 더듬더듬 대답하게 됐다.
그게 설령 오늘 하루로 끝날지라도, 오늘 하루라도 생각해 볼 계기를 주었다는 점에서 충분히 의미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