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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데이수 Jul 19. 2020

아름다운 도시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것.

사진과 영상에 헌정된 공간 ‘도쿄도 사진 미술관’에 다녀와서.

도쿄는 거의 한달째 매일 비가 온다. 내내 비가 쏟아지는 건 아니지만 하루종일 흐린 하늘이 계속되다가 비가 오다 말다 한다. 올해 7월 평균습도를 찾아보니 95%란다. 이게 실화입니까.


그런 의미에서 오늘은 날이면 날마다 찾아오지 않는, 드물게 맑은 주말이었다. 이 기회를 놓칠 수 없어 오랜만에 KF95 마스크를 찾아쓰고 미술관 나들이를 나섰다. 오늘 <일본 미술관 산책> 매거진에서는 에비스 가든 플레이스에 위치한 도쿄도 사진 미술관(Tokyo Photographic Art Museum)을 소개합니다.





도쿄도 사진 미술관에는 아주 명확한 테마가 있다. 다름 아닌 사진과 영상. 사진과 영상을 테마로 해외 또는 일본 작가들의 작품을 소개하는 전시회를 동시에 2~3개 정도 개최한다. 연간으로 보면 평균 15개 정도. 대부분 전시를 미술관에서 주도적으로 기획하고 주최하니까, 상당히 다작하는 미술관인 셈이다.


오늘 보고 온 전시는 1990년대의 패션과 사진을 테마로 당시 활동했던 사진작가들의 패션사진 등의 자료를 모아놓은 거였다.


1년에 워낙 많은 건수의 전시를 기획해서일까? 사진이라는 테마 자체가 내게 충분히 흥미를 주지 못해서일까? 여기 전시는 보러 올 때마다 스토리라인이 좀 약하다고 느낀다. 전시회 제목과 설명을 보고 기대한 건 1990년대 패션계에서 어떤 움직임이 있었고, 어떤 사진작가가 어떤 작품으로 어떤 변화를 일으켰는지 등등에 대한 이야기였는데, 정작 전시는 (아마도 도쿄도 사진 미술관에서 수집할 수 있었을) 작품들을 나열해두는 데서 멈춘다. 전체 동선을 다 따라가는 데 30분 정도 걸렸으려나.


뭐, 괜찮다. 매번 전시 자체에는 애매한 감상을 가지고 나오지만, 그래도 잊어버릴 만 하면 또 간다. 사진이라는 생소한 장르를 접할 수 있고, 무엇보다 이 곳에서 보내는 시간이 좋기 때문이다.


1995년에 지어진 건물답게 그 당시 유행을 따라 전면을 통유리로 만들어 두었다. 햇빛이 잘 들어와서 좋고, 에어컨을 잘 틀어줘서 덥지도 않다.


도쿄도 사진 미술관은 에비스 가든 플레이스에 위치해 있다. 가든 플레이스가 어떤 곳이냐면, 놀이기구 없는 놀이동산 같은 곳이다. 16만 제곱미터에 달하는 넓은 광장 전체에 멀끔한 블록을 깔아놓고, 국적이 불분명한 유럽풍의 건물을 아름답게 진열해놓았다. 이 곳에 들어선 시설들도 전통과 역사의 소매점 미츠코시 백화점이라든지, 미슐랭 3스타 쉐프로 이름 높은 조엘 로부숑 레스토랑이라든지, 이 곳 도쿄도 사진 미술관이라든지, 뭔가 멋진 느낌이 드는 곳들이다.


가든 플레이스를 대표하는 풍경인 천장의 유리돔과 함께, 노을녘 풍경.
계절이 바뀔때마다 관리인이 나타나 화단의 꽃을 갈아준다. 그래서 1년 내내 색색깔의 꽃이 피어있다.


그 안에서도 사진 미술관 입구는 구석에 치우쳐 있고, 매번 갈 때마다 관람객도 많지 않다.


어딜 가나 인구밀도가 높아 북적이는 도쿄의 다른 장소와 달리 천장도 높고, 내부 공간도 널찍널찍하다. 4층짜리 건물에 지하1층과 2층, 3층을 각각 전시실로 쓰고 4층은 공공도서관으로 열어뒀다. 뭐랄까, 수익구조에 별로 신경쓰지 않는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미술관 입구 근처에 카페가 하나 있긴 하지만, 내부에는 카페가 없어서, 음료 안 시키고 공짜로 앉아있을 수 있는 테이블과 의자가 곳곳에 널려있다. 그 여유로움이 좋아서 또 가고싶은 마음이 드는 곳이다.


사진 미술관 안에 위치한 도서관. 4층을 통째로 쓰고 있다.


게다가 4층에는 공공도서관도 있다. 사진과 영상을 테마로 하는 미술관답게 그 테마로 연구하던 중에 수집하게 된 책들을 공개해놓았는데, 이런 분야 책들이 대개 풀칼라 하드커버로 소량만 제작되다보니 가격이 어마어마하지 않은가. 내가 이 도시에서 사진이나 영상을 공부하는 사람이었다면 이 곳의 풍부한 문화적 자원을 빨아들여 더 훌륭한 예술가로 거듭나지 않았을까, 이런 쓸데없는 생각을 하며 전시 다 보고 집에가기 싫은 날은 도서관에 앉아서 비싼 책 넘겨보며 그림공부를 한다.


미술관으로 가는 길. 입구가 가든 플레이스 구석에 꽁꽁 숨어있다.




여기까지 적고 나니 자연스럽게 “여기, 괜찮은거야?”라는 생각이 든다. 결론부터 말하면 괜찮다. 도쿄도에서 운영하는 공립미술관이기 때문이다. 좀 예전 자료이긴 하지만, 2016년 기준으로 한 해 예산이 45억엔 정도였는데, 그 중 관람료 등의 수익으로 자체 조달한 부분은 얼마 안 되고, 대부분이 도쿄도 예산으로 운영되고 있다고 한다.


물론 아래 그래프를 보면 2016년에 어인 연유인지 유독 지출이 많았던 것 같으니, 2015년 이전을 봐도, 대략 15억엔에서 20억엔 사이로 도쿄도에서 꾸준히 지원하고 있는 걸 확인할 수 있다.


도쿄도 사진 미술관의 운영현황. 주황색으로 표시한 부분이 자체조달분인데, 딱 보면 대부분이 도쿄도 예산에서 나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쯤에서 한국과 비교하면 어떨까 라는 생각이 들어서 서울시에서 시립미술관에 연간 지원하는 예산이 어느정도인지를 찾아보았다. 적절한 비교가 아닐 수 있다. 도쿄도 사진 미술관은 도쿄도에서 운영하는 여러 미술관 중 하나로, 사진이나 영상이라는 특수한 분야를 중점적으로 다루는 곳이라, 서울시립미술관과는 달리 서울시를 대표하는 바로 그 미술관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이 점을 고려하더라도, 서울시립미술관에 서울시가 교부하는 돈이 도쿄도 사진 미술관에 도쿄도가 교부하는 돈과 비슷하거나 오히려 적다는 걸 확인하고 좀 놀랐다. 서울시립미술관의 경우, 2018년 기준 서울시로부터 123억원을 교부받았다고 한다.


비교연도가 달라서 단편적으로 수치만 놓고 비교하기는 어렵지만, 어쨌든,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됐다. 이 곳 사진미술관이 뭘 믿고 돈 안 되는 공공도서관을 운영하는지, 뭘 믿고 때로는 누가 봐도 관람객 별로 안 들 것 같은 전시회를 열어서 일본의 젊은 사진과 영상 작가들을 소개하는지 말이다.





다른 듯 비슷한 맥락의 이야기로 마무리해본다.


나는 자라섬 재즈 페스티벌의 페이스북 페이지를 팔로우 하고 있다. 입국제한 조치가 지속되는 한 페스티벌에 직접 가지는 못하겠지만, 누가 나오고 어떻게 운영되는지 관심 가지고 지켜보고 응원도 하고 있다.


페이스북에 올라온 공지를 보니 올해 자라섬 재즈 페스티벌은 해외 아티스트 내한이 어려운 대신 국내 아티스트로만 라인업을 구성할 거라고 한다. 해외 아티스트 내한공연을 기대했던 사람들에게는 아쉬운 소식이겠지만, 나는 어쩌면 한국 공연예술계가 이번 사태를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감이 생긴다.


도쿄에 와서 미술관 다니는 데 취미를 붙이고, 여러 전시를 보러 다니며 느끼는 부분이 있다.


일본 예술가들은 좋겠다


왜 좋겠냐면, 자기 작품을 전시할 기회가 많이 있어서. 그리고 국공립 미술관에서 운영하는 각종 워크샵과 연구회 등의 프로그램을 통해 전 세계 예술계에 자기 작품을 자연스럽게 홍보할 기회가 있어서 말이다.


비슷한 맥락에서, 국내 재즈 뮤지션들이 자라섬 재즈 페스티벌을 비롯해 여러 페스티벌에서 공연할 기회를 갖고, 그걸 계기로 실력도 키우고 이름도 알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





하나 더, 우리 예술가들에게 더 많은 기회가 돌아가도록 인프라도 만들고 이벤트도 열어주는 일련의 노력들을 기왕이면 민간에 맡기지 말고 국가든 지자체든 정부에서 좀 더 해 줬으면 좋겠다.


올해 자라섬 페스티벌이야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그런 선택을 내린 거지만, 앞으로도 계속 국내 뮤지션으로 이벤트를 채울거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 솔직히 나도 페스티벌 티켓 사기 전에 내가 알 만한 뮤지션이 오는지, 특히 해외 아티스트가 참가하는지를 꼭 체크했었기 때문이다.


당장 수익이 나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우리 도시 안에서 여러 경로로 꾸준히 아름다움에 대해 이야기하다 보면 알게 모르게 우리 도시에서 공유하는 평균적인 미의식의 수준이 높아질 거고, 그러면 우리 모두가 더 아름다운 도시에서 살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당장 수치로 나타나는 성과 말고, 아주 천천히 나타나는 우리 공동체에의 변화. 그게 공익이고, 정부나 지자체가 조금 더 관심 가져줘야 할 분야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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