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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데이수 Jul 05. 2018

단돈 100엔! 마을버스를 타고 골목길을 달리다.

하치코버스와 함께하는 시부야구 투어

일본의 6월은 쯔유(梅雨)의 계절이라, 거의 한 달 내내 햇빛 보기가 어렵다고 한다. 하지만 올해는 이상하리만큼 장마가 짧고 비도 거의 내리지 않아 눈 깜짝할 사이에 여름이 시작된 기분이다. 과연 오전 9시에만 나가봐도 햇볕이 강해 썬글라스 없이는 눈을 뜨기가 어려울 정도다. 요즘 같아서는 거의 오후 5~6시는 되어야 햇볕이 한 풀 꺾여 그나마 돌아다닐 수 있는 정도가 된다.


한 여름 도쿄도 나름대로의 매력이 있겠지만, 그래도 하루종일 햇볕 속을 돌아다니기는 어려우니 대안을 찾게 된다. 당장 생각나는 건 쇼핑몰이나 미술관. 하루이틀 정도는 괜찮지만, 그래도 기왕 도쿄에 왔으니 손님을 위해 꾸며놓은 곳 말고 보통 사람들이 살아가는 삶의 공간도 엿보고 싶은 마음이 든다.


그래서 제안해보는 도쿄 마을버스 투어.

<하치 이야기>의 주인공이자 도쿄 시부야구의 상징, 하치코와 함께할 수 있다.


시부야구의 간략한 지도(출처 : 구글 이미지)


사실 도쿄도는 아주 크지만 그 중에서도 도심부를 도쿄23구라고 부른다. 치요다구, 추오구, 미나토구, 신주쿠구 등등. 시부야구는 23구 중 하나로, 흔히 생각하는 시부야역(渋谷駅) 앞 외에도 여러 지역을 포함하고 있다. 다이칸야마, 오모테산도, 하라주쿠, 요요기, 히로오, 에비스, 아오야마 일부 등. 거리 자체가 유명하기도 하고, 트렌디한 맛집이나 편집샵 등이 많아 하나하나 관광으로도 많이 찾는 곳들이다.


요요기 공원. 날씨 좋은 요즘이면 공원 안 야외공연장에서 거의 매 주말 이런저런 이벤트가 열려 구경하는 재미가 있다.


이 시부야구에서 운영하는 마을버스가 하치코 버스다.


하치코는 도쿄의 한 대학교수가 키우던 강아지였는데, 매번 교수가 출근할 때마다 시부야역까지 배웅을 나갔다고 한다. 어느 날 대학교수가 갑작스러운 뇌출혈로 세상을 떠났다. 주인을 잃은 하치코는 교수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매일 시부야역에서 기다렸다고. 이 이야기가 언론에 미담으로 보도되고, <하치 이야기>라는 책으로도 만들어져 시부야역의 상징처럼 되었다. 실제로 시부야역에 가면 하치코 출구가 있고, 이 출구로 나가면 수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이야기를 품고 서서 약속상대를 기다리고 있다.


하치코 버스가 지나가는 순간을 포착해보았다. 하치코랑 별로 닮아보이지는 않지만, 어쨌든 귀여운 강아지를 그려놓았다.


하치코 버스는 시부야구의 주요스팟들을 골목골목 짚어주면서도, 시부야구에서 운영하기 때문에 교통비 비싸기로 유명한 일본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저렴한 금액 단돈 100엔에 이용할 수 있어 굉장한 메리트가 있다.


게다가 번역이 아주 정확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한국어 사이트가 있어 관광객들이 참고하기에도 좋다. (http://www.city.shibuya.tokyo.jp.k.mu.hp.transer.com/kurashi/kotsu/hachiko_bus/index.html?=20170605yokumi)


해질녘의 에비스 가든 플레이스. 20~30대 여성들을 위한 놀이터 같은 곳이다. 세련된 건물에서 쇼핑, 영화감상, 식사까지 한번에 해결할 수 있다.


공식 사이트에 잘 소개가 되어 있지만, 하치 코 버스는 노선이 총 4개가 있고 빨간색, 주황색, 노란색, 파란색의 차체 색깔로 구분된다. 가보고 싶은 곳을 먼저 고르고, 그 곳을 지나가는 노선을 선택하면 된다. 홈페이지에서 버스가 몇 시 몇 분에 각 정류소에 도착하는지를 빼곡이 적어놓은 타임테이블을 내려받을 수 있고, 버스가 놀라울 정도로 시간을 딱 맞춰서 도착하니 시간 맞춰 정류소에 잘 서있기만 하면 된다.


하치코 버스의 내부. 미니미니하다. 정원이 열 명도 안 될 것 같다. 그래도 이용객이 그렇게 많지 않은지 대체로 한산하다.


참고로 하치코 버스는 느리다. 정말 이래도 되나 싶을만큼 느리다. 조금 번거롭더라도 지하철을 타고 이동했더라면 20분이면 도착했을 거리를 한 시간씩 걸려서 느릿느릿 달린다. 개인적인 추측으로는 시부야구의 행정구역 내로만 경로를 설정하려고 하다보니, 다른 구로 삐져나가지 않기 위해 골목이나 언덕길을 애용하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안 그래도 도쿄 도심은 차선이 좁은데, 그 중에서도 특별히 골목길만 찾아 다니려다 보니 속도를 내는 것 자체가 요원할 수밖에 없다.


버스를 타고가다 만난 골목길 풍경. 일부러 찾아가서 볼 건 아니지만, 시원한 버스에 앉아 느긋하게 차창을 바라보다 만난다면 또 의미가 다르다.


그러니 꼭 몇시까지 어디로 가야만 하는 일정이 있다면 별로 추천하지 않고, 대신 점(스팟) 이 아닌 선(가는 길)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여행자에게라면 추천한다. 여기와 저기 사이. 지하철을 타고 순식간에 지나갈 때에는 잘 보이지 않았던 디테일들을 차창 밖으로 관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요즘 나는 어디 여행갈 일이 있으면 에버노트부터 켠다.


비행기가 몇시에 어디에 도착하면 몇시에는 뭘 하고 몇시에는 뭘 하고, 빼곡하게 일정을 채우다보면 낯선 곳에서 헤맬 걱정이 없어 마음은 편하지만 왠지 숨이 좀 막히는 기분도 든다.


지금만큼 블로그며 인터넷이 잘 되어있지 않고, 스마트폰도 없던 시절에는 마음에 드는 가이드북 한 권에 부록으로 딸려 온 지도 한 장 달랑 들고 그 도시의 중앙역부터 물어물어 찾아갔던 것 같은데 말이다. 지나가다 줄 서 있는 사람들을 보면 여기 뭐가 있는거냐고 묻기도 하고, 맛있어 보이는 레스토랑이 있으면 타베로그 평점이 얼마나 되는지 확인해볼 생각도 않고 바로 들어가 더듬더듬 주문하고 하고, 뭐 그랬다.


이미 몸도 마음도 편한 방법을알아버린 판에 옛날 얘기를 더 해 봤자 소용은 없겠지만 그래도, 반나절 정도는 아무 생각 없이 하치코가 이끌어주는대로 골목길을 달려 빡빡한 일정 속 예기치 못한 만남을 기대해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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