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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데이수 Sep 02. 2018

환승역 또는 그 이상, 고부치자와 (1편)

고원열차를 타고 돌아보는 산 속 절경

고부치자와(小淵沢).


솔직히 이 곳은 일본 사람들에게도 생소한 여행지다. "고부치자와로 여름휴가를 다녀왔어요"라고 했을 때 "거기가 어디라고요?"라고 다시 되묻지 않는 경우가 드물었다. 굳이 말하자면, 가루이자와로 가는 길에 지나쳐 가는 환승역 정도의 이미지일까.


그러나, 우연한 기회로 2018년 여름휴가를 이 곳에서 보낸 이후로 나에게만은 아주 특별한 추억을 남겨 준 여행지가 되었다. 따가운 여름햇살, 거짓말처럼 청명한 하늘, 로컬 열차가 간이역에 멈춰서자 느릿느릿 기차에 올라타는 산골마을 사람들, 민박에서 할아버지 할머니가 산 속에서 나고 자란 재료들로 직접 만들어 주신 따뜻한 밥상...


고원열차를 타고가다 만난 시골 간이역 풍경. 고도가 높아질수록 하늘이 가까워진다.



실은, 모든 게 다 우연이었다.


일본에는 오봉야스미(お盆休み)라는 기간이 있다. 매월 8월15일을 전후로 주말을 포함해 4~5일 정도 쉬는 날이다. 공휴일로 지정되어 있는 건 아니지만 웬만한 제조기업들이 다 이 때 맞춰서 여름휴가를 준다. 당연히 이 기간에 여행을 가려면 미리미리 예약을 해야 한다. 나라도 그랬을 것이다. 내가 외국인이 아니었다면 말이다.


오봉야스미를 몰랐던 건 아니다. 주변에서 "여름휴가 미리 예약해야 해"라는 말도 많이 들었다. 그래도 방심했다. 설마 내 자리 하나는 있겠지 라는 생각으로 차일피일 미루다가 봉변(?)을 당했다. 휴가를 한 달 남짓 남겨놓고 숙소를 예약하려 하니 웬만한 숙소는 전부 만실이다. 검색하면 할 수록 하코네나 가루이자와 같은 도쿄 인근의 유명 관광지는 엄두도 못 낼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래. 나도 몰랐다. 고부치자와 같은 곳.


어디든 가야 한다는 마음에 눈을 크게 뜨고 기차 노선도를 들여다보다가 고부치자와 라는 이름을 발견했다. 나름 2개 노선이 지나는 환승역이니 숙소가 있지 않겠어? 라는 마음으로 인터넷 서핑에 나섰다. 이 곳도 유명숙소는 이미 예약이 차 있었지만, 작은 민숙(民宿)에 자리가 하나 남아있었다. 괜찮겠지? 그래. 괜찮을거야.


그렇게, 여름휴가지를 정했다. 일본인들에게도 생소한 마을로.


고부치자와의 역사 풍경


숙소부터 얼른 예약을 하고 고부치자와에 대해 찾아보기 시작했다. 산 속에 키스해링 작품을 모아놓은 미술관이 있다고 하니 가 보면 좋겠다. 해발고도 1,000m 가 넘는 고원지대라고 하니 산길을 따라 가는 고원열차를 타 보는 것도 재미있겠다. 게다가 신카이 마코토의 영화 <너의 이름은>에 등장했던 바로 그 스와 호수가 이 근처에 있다고 한다. 좋아.




조금은 시시한, 그래도 사랑스러운 고원열차


몇년 전 노르웨이에 놀러갔었다. 그때도 지금처럼 기차를 좋아해서, 산악열차를 일정에 넣었다. 그 산악열차의 이름은 플롬 레일웨이(Flåm Railway)라고 했다. 3월 중순쯤이었는데, 산악열차를 타고 설산을 가로지를 때 그 스케일이 너무나 웅장해 차창에서 눈을 못 뗐었다. 나중에는 경사가 가팔라져서 이거 괜찮은걸까, 라고 혼자 고민했던 기억도 난다.


고부치자와에 고원열차가 있다는 말을 듣고, 노르웨이의 산악열차 같은 다이나믹한 경험을 하는건가! 라는 기대를 좀 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전혀 아니었지만 말이다.


고원열차의 엉덩이에 해당하는 꼬리칸. 동글동글한 모양새가 귀여우면서도, 어째 눈이나 비가 오면 못 달릴 것처럼 엉성해보이기도 한다.
전체적으로는 이런 모양. 꽤 길어보이지만 5량짜리 기차다.


고부치자와에서 출발하는 고원열차의 이름은 고우미선이다. 이름도 귀엽다. 작은 바다 철길. 노베야마역(野辺山駅)이라는, 나름 일본에서는 가장 높은 해발 1,345m에 위치한 기차역을 지나간다고 해서 유명하다. 끝에서 끝까지 가는 데 걸리는 시간은 2시간 10분 정도.


음, 나 같은 기차덕후에게는 훌륭한 관광지였다만. 기차에 별 감흥이 없는 사람이라면 2시간 10분이 너무너무 지겹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 고도가 가장 높은 역이라는 노베야마를 지날때도 '이게 과연 1,345m란 말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풍경 역시, 노르웨이의 산악열차처럼 영화 <반지의 제왕>의 한복판에 있는 것 같은 어마어마한 자연의 경이를 가져다주지는 않았다.


여행객들을 위한 기차라기보다는, 산악지대 골짜기골짜기에 사는 주민들을 다른 지역으로 이어주는 조금 느리지만 성실한 발 같다고 할까. 차창 밖을 바라보는 것보다 기차역을 지나갈 때마다 타고 내리는 사람들을 구경하는 게 더 재미있었다. 


고우미선의 노선도. 출처는 구글 이미지 검색.
하지만 시원한 기차에 앉아서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산속 절경을 감상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열차가 잠시 정차한 틈을 타 급히 찍어 본 안내판. 나가노현에 오니 기차역 안내판마다 별이 촘촘히 박혀있다. 
자칫 삭막할뻔한 역사인데, 철로에 푸릇푸릇 풀이 자라나 생기를 더하고 있다.




선데이수를 소개합니다.
필자 선데이수는 2018년 초부터 일본 도쿄에 거주하고 있습니다. 일본 도쿄를 기점으로 주말이나 연휴를 이용해 주변 소도시를 여행했습니다. 스스로를 '기차 덕후'로 소개합니다. 기차 구경도, 기차 타는 것도 좋아합니다. 신칸센처럼 빠른 기차보다는 느릿느릿 달리는 로컬 기차를 더 좋아합니다. 기차 타고 갈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떠났습니다. 때로는 단 한 장의 사진을 보고, 때로는 단 한 마디의 키워드를 보고 여행지를 결정하는 '즉흥 여행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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