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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데이수 Aug 19. 2018

해발 1,000m에서 만나는 팝아트?

고부치자와에 위치한 나카무라 키스해링 미술관

일본 소도시를 여행하다가, 그 지역에서 유명한 미술관이 있다고 하면 꼭 일정에 넣어서 와 보곤 한다. 내가 늘 하는 질문은 이거다. "대체 왜 이런 곳에 이런 미술관이 있는 걸까?"


고부치자와에서 만난 나카무라 키스해링 미술관이 딱 그런 예다.


키스해링은 1980년대 뉴욕을 상징하는 작가이다.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이 곳은 나카무라가 키스해링 작품을 모아서 만든 미술관이다. 풀네임은 나카무라 가즈오. 무려 200점이 넘는 키스해링 작품을 수집해서 2007년에 미술관을 오픈했다. 키스해링이 비교적 동시대 작가인 만큼, 당시로서는 이 곳이 세계 최초의 키스해링 미술관이었다.


사실 "대체 왜 이런 곳에 이런 미술관이 있는 걸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많은 경우에 이렇다. 설립자의 고향에다가 지은 경우다. 나카무라 카즈오도 야마나시현 고후 출생이다. 고부치자와에서 그리 멀지 않다. 물론, 단순히 "고향이라서" 고부치자와에 지은 것만은 아니고 좀 더 심오한 의미가 있다고 한다.



나카무라 상은 나 같은 감상자들이 키스해링의 작품을 특정한 시기 특정한 장소에만 한정해서 이해하지 않기를 바랐단다. 키스해링은 평생 대도시 뉴욕에 살며 작품활동을 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고요한 숲 속에 키스해링 미술관을 지어 작품의 의미를 확장하고자 했다.


듣고보니 고개가 끄덕여지기도 한다. 작가의 의지로 만들어 진 작품세계와, 그 작품세계를 다른 차원으로 확장하고자 하는 컬렉터의 의지, 거기에 그 먼 숲속까지 꾸역꾸역 찾아 와 키스해링 작품을 감상하려는 나 같은 감상자의 의지까지. 하나의 작품이 하나의 의미로 머물러있는 게 아니고, 여러 사람들의 서로 다른 의지가 서로 엇갈리며 새로운 의미를 창출해나가는 게 아닐지.



키스해링 작품의 모티프를 이용해서 팝아트 풍으로 꾸며진 미술관 카페. 고맙게도 이른 시간(9시)부터 문을 열어줘서, 미술관에 들어가기 전에 이 곳에서 커피 한 잔 하며 시간을 보냈다. 위 사진 오른쪽은 아래 도면에서 Museum Theater라고 적힌 공간인데, 미술관의 입구이기도 하고 출구이기도 하다. 이 곳이 입구라고 생각하며 커피도 마시고 사진도 찍으며 시간 보냈다가, 전시를 다 보고 나오니 다시 이 곳이 등장해 놀랐다.


미술관과 건축은 떼어놓을 수 없는 요소라고 생각한다. 가령 모네 그림을 사방이 막힌 공간에서 인공광으로 감상할 때와, 주변 자연환경과 어우러져 자연광으로 감상할 때 느낄 수 있는 감상이 정말 다르다.


그런 점에서, 이 곳 키스해링 미술관은 건축적으로도 굉장히 여러 가지를 생각해서 만든 훌륭한 미술관이라고 생각한다. (안도 타다오의 오모테산도 힐즈처럼) 여러 대각선이 교차되어 수직 공간을 수평으로 풀어놓은 전시관이라든가(아래 도면의 Room of Hope), 어둠과 빛을 이용해 의외성을 극대화한 전시관(Room of Darkness) 등, 전시를 감상하는 내내 건축가의 따뜻한 배려를 느낄 수 있었다.


미술관 도면. 출처는 나카무라 키스해링 미술관 홈페이지.


해발 1,000m의 산 속 마을에 비밀처럼 등장하는 의외성이 마음에 들었던 나카무라 키스해링 미술관. 워낙에 어디선가 한 번쯤은 봤을법한 대중적인 작가라, 평소 미술을 별로 즐기지 않는 사람이라도 재미있게 구경하고 나올 수 있는 공간이었다.



선데이수를 소개합니다.
필자 선데이수는 2018년 초부터 일본 도쿄에 거주하고 있습니다. 일본 도쿄를 기점으로 주말이나 연휴를 이용해 주변 소도시를 여행했습니다. 스스로를 '기차 덕후'로 소개합니다. 기차 구경도, 기차 타는 것도 좋아합니다. 신칸센처럼 빠른 기차보다는 느릿느릿 달리는 로컬 기차를 더 좋아합니다. 기차 타고 갈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떠났습니다. 때로는 단 한 장의 사진을 보고, 때로는 단 한 마디의 키워드를 보고 여행지를 결정하는 '즉흥 여행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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