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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데이수 Apr 14. 2019

해안선을 따라 떠나는, 이즈 기차여행 (1편)

로컬기차를 타고 느릿느릿 달려, 바다로 간다.

이즈반도는 도쿄에서 기차로 1시간 30분 남짓, 시즈오카로 가는 길목에 위치해 있다. 이즈반도 초입에 온천여행으로 유명한 아타미가 있고, 남쪽 끝에는 일본 최초의 개항지 중 하나인 시모다항이 있다.


지난 겨울, 문득 바다가 보고싶어져 이즈반도로 훌쩍 여행을 다녀왔다. 미리미리 정보를 찾아 둔 덕분에 '미나미이즈 교통 패스'를 끊어서 교통비도 상당히 절약했고, 일본 전통가옥을 개조해서 만든 호스텔에 운 좋게 예약하는 행운도 누릴 수 있었다.


이즈반도를 지나는 기차들은 하나같이 오래됐다. 세월의 흔적이 담뿍 느껴진다. 타고있으면 칙칙폭폭 덜컹덜컹 온갖 소리를 내서 음악 듣다가 포기하고 기차 소리나 들었다.


가서는 특별히 뭐 한 건 없지만, 느리게 가는 로컬 기차를 타고 창 밖에 탁 트인 수평선을 바라보거나, 바다가 보이는 당일치기 노천 온천에서 노을이 지는 풍경을 구경하거나, 조금은 쇠락한 듯한 항구도시 시모다에서 자전거를 빌려타고 씽씽 달리며 시간을 보냈다.


도쿄와 이즈반도. 지도에서 확인할 수 있듯 꽤 크기 떄문에, 가령 이즈반도의 초입에 해당하는 이토에서 시모다항까지는 1시간20분 정도 걸린다. (출처 : JR동일본)




먼저, 이 여행을 떠난 계기가 된 미나미이즈 패스를 소개한다. JR동일본 홈페이지에는 한국어 안내가 꽤나 충실하게 되어 있는 편인데, 이 패스와 관련된 안내는 이상하게 없다. 일단 일본어 링크를 붙여둔다.



2일 간 6,160엔에 (1) 도쿄에서 이토역까지의 왕복 열차 자유석, (2) 이토역에서부터 이즈반도 안에서의 기차/버스/페리 무제한 이용권 이 포함되어 있다. 보통열차에 비해 특급열차가 조금 더 빨리 가기는 하지만, 특급열차를 이용할 경우 요금을 따로 물어야 해서 빡빡한 일정보다는 느긋하게 움직이는 경우에 어울리는 상품이다.


6천엔이 넘는 가격이 얼핏 비싸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일본의 교통비가 워낙 비싸기 때문에 실제로는 도쿄에서 이토역까지 왕복 티켓값 정도만 지불하고 이즈반도 안에서의 교통비 프리패스를 추가로 받는거라 무조건 이득이다.


당일에는 발권이 안 되고, 여행 전날까지 JR 여행 서비스 센터에서 '미나미 이즈 프리 패스'를 사 두면 된다. 여행 서비스 센터는 도쿄, 신주쿠, 시부야 등 8개 주요역에 위치해 있고 지점마다 영업시간이 다르지만 빠르면 17시에 문을 닫는 경우도 있으니 홈페이지에서 시간을 확인하고 미리미리 움직여야 한다. 적어도 일본에서는 가난한 여행자일수록 즉흥적으로 움직일 수가 없다. 사전에 예약해야 가격이 훨씬 싸지기 때문이다.


오른쪽의 회색선이 철도노선이다. 이토역부터 종점인 이즈큐시모다역까지를 연결한다. 겨울이라 해도 빨리 지고 해서, 이번에는 철도노선만 이용해서 여행했다.


이번 여행이 정말 만족스러웠던 이유는, 일정 내내 어딜 가든 조금도 붐비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도시 도쿄에 살다보면 매일 출퇴근길 가방 속 물건이 납작하게 눌릴 정도로 사람에 치여 지칠 때가 있는데, 이즈반도에서 느낀 밀도는 도쿄의 그것과는 완전히 달랐다.


가령 주말 피크시간 로컬 기차의 객석 상태가 모습이 이렇다면 믿겠는가.


보통열차는 기차라기보다는 지하철에 가까운 느낌이지만, 그래도 창 밖에 바다가 보여서 기분전환에는 충분하다.


책 한 권 슬렁슬렁 읽으며 세월아네월아 음악 대신 칙칙폭폭 기차소리를 듣고 있다가 문득 창 밖을 바라보면 푸른 바다 푸른 하늘이 사각 프레임을 가득 채우고 있다.


수평선을 쳐다보기가 지루해질때쯤, 해안가 마을에 옹기종기 색색깔 지붕이 등장하곤 한다.




바다를 보고 싶어서 떠난 여행이었기 때문에 중간에 바다를 보러 내려본다. 이토역(伊東駅)에서 10분 정도 산책로를 따라 걸으면 나오는 현수교(吊り橋, 쯔리바시)를 구경하러 간 것. 딱히 성수기라고 부르기 애매한 한겨울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산책로에 아무도 없이 혼자 사락사락 낙엽 밟는 소리를 내고 있자니 굉장히 사치하는 기분이 들었다.



한편에서는 경쾌한 소리를 내며 맑은 물이 흐르고, 한편에서는 울창하게 자란 나무가 시원한 그늘을 드리웠다. 도쿄만 해도 충분히 공기가 맑은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여기에 오니 또 다르다. 숨을 한 번 들이마실 때마다 맑은 공기에서 오는 청량감이 느껴진다.


조금 걷다보니 나무그늘 사이로 푸른 수평선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고, 어느덧 절벽을 따라 위태롭게 매달린 현수교가 등장한다. 와, 이거 진짜 건너야 하는건가. 다행인지 불행인지 사람이 없어서 그나마 덜 무섭다. 내가 내딛는 한 걸음 한 걸음이 고스란히 진동으로 바뀌는 게 느껴진다.


색색깔의 옷을 입은 사람들. 멀리서 보니 의외로 색감이 잘 어울린다.


절벽 오른편을 돌아보니 암벽등반 동호회 모임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준비운동을 하고 있다. 이게 웬일이람. 이즈반도가 암벽등반 말고도 보드, 스노쿨링 등 각종 액티비티를 즐기는 사람들에게는 드물지 않은 목적지라고는 하지만, 진짜 이렇게 보게 되다니. 뭐, 혼자 걷던 길에 길동무를 만난 것 같고 그다지 싫지 않다.


오른편에서 소소하게 사람들이 만들어 내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왼편에서는 자연이 만든 파도소리가 고요한 듯 존재감을 뽐낸다. 오후의 햇살이 비춰 눈부신 바다와, 끊임없이 절벽에 부딪히며 흰 거품을 빚어내는 파도.


와. 나 고작 두시간 전까지만 해도 도쿄에서 지하철을 타고 있었는데 지금은 이런 풍경을 보고 있다니. 입이 저절로 벌어진다.



현수교를 왕복하고 돌아가려는 길에, 해안가까지 내려갈 수 있는 산책로 표지판을 발견하고는 잠시 내려갔다 왔다. 그늘이 없는 땡볕이라 오래 앉아있지는 못했지만, 적당한 바위에 골라 앉아 파도 소리를 듣고 있자니 마음 속 불안과 걱정이 씻은듯이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다음날 시모다항에도 다녀오기는 했지만, 바다가 예쁘기로 따지면 이토역 인근이 백 배 정도 더 예뻤다. 시야에 걸리는 것 하나 없고, 짙은 파란색의 물도 아름다웠으며, 물비린내도 거의 나지 않아 청량했다. 뭐, 항구 근처의 바다라 어쩔 수 없을거라고는 생각하지만 말이다.



아차, 여행에서 식사의 즐거움을 빼놓을 수 없지. 바다 근처이니만큼 웬만한 스시집에 들어가면 이즈반도에서 바로 잡은 생선을 이용했다는 치자카나(地魚)를 맛볼 수 있다. 눈이 번쩍 떠질 정도로 맛있는 생선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새로운 식재료를 경험해보는 데서 오는 즐거움이 있다.




선데이수를 소개합니다.
필자 선데이수는 2018년 초부터 일본 도쿄에 거주하고 있습니다. 일본 도쿄를 기점으로 주말이나 연휴를 이용해 주변 소도시를 여행했습니다. 스스로를 '기차 덕후'로 소개합니다. 기차 구경도, 기차 타는 것도 좋아합니다. 신칸센처럼 빠른 기차보다는 느릿느릿 달리는 로컬 기차를 더 좋아합니다. 기차 타고 갈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떠났습니다. 때로는 단 한 장의 사진을 보고, 때로는 단 한 마디의 키워드를 보고 여행지를 결정하는 '즉흥 여행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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