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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데이수 Jul 02. 2019

고요한 어촌마을을 깨우다, 세토우치 트리엔날레

세토우치의 12개 섬과 주변 항구에서 3년에 한 번 열리는 국제예술제

오늘 <일본 미술관 산책> 매거진에서는 필자 본인의 2019년 버킷리스트 중 하나이기도 한 세토우치 국제예술제, 또는 세토우치 트리엔날레(Setouchi Triennale)를 소개한다.





올해 일본에서 이런 이벤트가 열린다는 걸 알게 된 건 세토우치에서 아마도 제일 잘 알려진 섬일 나오시마(直島)와의 인연 때문이다.


필자는 2015년에 오사카로 혼자 여행을 갔다가 정말 우연히 이 곳에서 2박을 했다. 당일치기도 1박도 아니고 (무려) 2박. 어쩌다 이렇게 인연이 닿았는지 모르겠다. 당시 필자 주변에는 나오시마를 아는 사람도, 다녀온 사람도 없었다. 그냥 여행 정보를 검색하다가 나오시마의 스토리를 보고 눈길이 갔던 게 계기다.


나오시마는 1960년대부터 일본의 고도 경제개발을 지탱해 온 산업지구 중 하나로, 이 곳에는 커다란 구리제련소가 있었고 그 때문에 심각한 환경오염 문제에 시달렸다고 한다. 1980년대 후반 미술에 관심이 많은 한 출판사 사장이 이 섬을 발견했다. 그는 지역 주민의 생활터전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이 섬에 예술적 영감을 불어넣겠다는 걸 모토로 여러 예술가, 건축가와 협력해 나오시마를 예술의 섬으로 가꿔냈다, 뭐 이런 이야기였다.


섬 여기저기에 입이 딱 벌어질 만큼 훌륭한 미술관들이 들어서 있지만, 기본적으로 나오시마는 고요한 어촌마을의 정취를 잃지 않고 있다. 몇십년 간 여기 서있었는지 모를 목조건물.


그 나오시마에 실제로 가 보니 어땠느냐면, 이건 뭐 어떻게 표현해도 과장스럽게 들릴 것 같지만, 까무러치게 좋았다.


젊은 작가들이 각자 오래된 집을 하나씩 맡아 각자의 방식으로 나름의 주제를 표현해 놓은 공간인 이에(家) 프로젝트의 집 하나 하나를 들여다보면서는 각각의 작가들과 가까이서 이야기를 나누는 느낌을 받았고, 지중미술관 안 유려한 곡선으로 표현된 모네의 방 안에서는 공간이 주는 감동에 사무쳤다.


그 전까지 현대미술은 덮어놓고 이상하다는 편견을 가지고 있었는데, 나오시마의 경험으로 현대미술이 내게 조금 더 가까워진 것 같은 기분을 받았다. 작가들이 혼자 궁리해서 알 수 없는 작품을 '이해하든 말든' 하며 던져놓는 게 아니고, 나름대로의 주제의식과 표현방법을 가지고 감상자와 공감하려는 사람들이라는 걸 어렴풋이나마 느꼈다고 할까. 과거에 작품만으로 소통하던 게 나오시마에서는 작품을 담은 공간으로 소통의 영역이 확장되어 조금 더 이해가 깊어진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다.


이 날 날씨가 흐려서 수평선을 만족스럽게 찍지 못했지만, 이 공간예술은 양 옆이 풀숲으로 막힌 길을 따라 걷다가 수평선이 나타나는 순간을 제시하고 있다. 수평선도 작품의 일부다.


어쩌다보니 본론보다 서론이 길어졌다. 요약하면 나오시마에 한 번 더 가보고 싶다, 라는 마음으로 검색하다가 세토우치 국제예술 라는 이벤트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자,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서 세토우치 국제예술제를 소개해본다.


이 예술제는 올해로 어느덧 4회째를 맞는 이벤트로, 올해는 '바다의 복권(復権)'을 테마로 내세우고 있다. 대략 예술이 바다의 자연 경관과 조화를 이루고, 나아가 세토우치의 각 섬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과도 긴밀하게 상호작용 할 수 있기를 바란다는 취지다.



한중일은 물론 미국, 유럽, 중남미 등 세계 여러 나라의 작가들이 참여한단다. 리스트가 하도 길어서 읽어 볼 엄두도 나지 않지만, 한국 작가만 따로 검색해보니 이우환, 구정아, 최정화, 김경민 네 분이 계셨다. 이우환 작가는 일본에 와서 몇 번 들어본 적이 있고, 나머지 분들은 잘 모르겠다.


필자는 아직 실제로 가 보지는 못했으니 어떤 분위기인지 알 수 없지만, 예술을 조금 더 가까이서 느낄 수 있게 해 주는 활기찬 분위기였으면 좋겠다고는 생각해 본다.


올해의 포스터. 바다라서 물고기가 그려져 있는 것일까.


국제예술제는 봄 여름 가을에 각각 1달 남짓씩 진행된다. 연간 행사기간으로 따져보면 3달이 조금 넘는다. 봄(4.26~5.26)은 이미 끝났고, 여름(7.19~8.25)이 곧 다가온다. 필자는 올해 봄과 여름에는 영 시간을 맞추기가 어려웠던지라, 가을(9.28~11.4)을 노려볼 계획이다.


그런데 만약 올해 다른 사정이 생겨서 못 가게 된다면?


아, 그건 큰일이다. 비엔날레(Biennale)가 2년에 한 번 하는 이벤트라면 트리엔날레는 3년에 한 번이라는 뜻이다. 올해가 2019년이니, 올해를 놓치면 다음은 2022년까지 기다려야 한다. 이렇게나 궁금한데 3년을 더 기다릴 수는 없다. 개인적으로는 묘하게 공휴일과 핀트가 맞지 않아서 약이 오르는 상황이지만, 정 안 되면 주말을 이용해서 짧게라도 꼭 다녀와야 궁금증을 해결할 수 있을 것 같다.





다음으로는 세토우치가 대체 어디인지, 그리고 국제예술제는 어디에서 진행되는지도 잠깐 짚어볼 필요가 있겠다.


일본은 4개의 큰 섬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세토우치란 그 중 홋카이도를 제외한 3개의 섬인 혼슈 시코쿠 큐슈가 만나는 지점에 위치한 내해(内海)를 가리키는 말이라고 한다. 이 곳 세토우치에는 나오시마, 테지마, 쇼도지마 등 비교적 크기가 큰 섬에서 지도에 점처럼 찍히는 작은 무인도까지 수많은 섬이 있다. 


세토우치 국제예술제는 아래 지도에 짙은 색으로 표시된 12개 섬과 인근 항구에서 진행된다.



혼슈 시코쿠 큐슈 가 만나는 지점에 위치한 곳이니만큼 취향에 따라 어디서 여행을 시작할건지도 적당히 정할 수 있다. 필자는 2015년에 JR 간사이 와이드패스(패스 관련정보 링크)를 이용해서 오사카 → 오카야마 → 우노항 → 나오시마항 의 루트로 나오시마에 들어갔다.


하지만 한국에서도 그렇고, 도쿄에서도 비행기로 이동하는 게 오히려 경제적인 코스인 점을 감안하면 다카마쓰를 기착점으로 삼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아무래도 오사카보다는 다카마쓰가 거리적으로 가깝고, 교통 면에서도 다카마쓰항에서 각 섬까지 직통으로 연결되는 배편이 제일 많기 때문이다.


섬과 섬 사이의 이동은 역시나 좀 골치아픈 부분이다. 배가 무슨 버스처럼 10분 간격으로 있는 것도 아닐테고, 배 시간을 신경써가며 각 섬들을 어떻게 이동해야 하나. 공식 홈페이지를 보니 3일 간 페리에 무제한으로 승선할 수 있는 프리패스 티켓을 사는 방법도 있고, 아예 일본어나 영어로 진행되는 오피셜 투어에 참가해서 전세 배를 이용해서 정해진 코스를 돌 수 있다고 한다. 필자는 아마 후자인 오피셜 투어를 선택하게 될 것 같다. 축제기간이라 사람도 많을텐데 이것저것 따져보기도 골치아플 게 분명하다.





여기까지 세토우치 국제예술제를 소개하는 글을 마친다. 필자는 작년 연말부터 줄곧 이 이벤트 페이지를 정독하며 언제 가야하나 생각만 해 왔는데, 아직도 구체적인 일정을 정하지 못한 채로 여름까지 다 보내게 되어서 아주 초조한 기분이다. 가을에는 꼭 다녀와서 정보글 말고 후기글을 남기고 싶다.


오늘의 관련글은 요코하마 미술관을 소개한 글로 달아본다. 이 때 관람한 건 테이트 미술관과 연계한 누드 테마 전시회였는데, 다음이 모네 전시라서 나오시마의 지중미술관만큼 모네를 잘 다뤄줬으면 좋겠다고 기대하는 내용의 글을 썼던 기억이다. 나 참, 사람이 이렇게 한 치 앞도 보지 못한다. 요코하마 모네전(展)을 실제 보고 온 감상은, 한 마디로 대실망이었다. 프랑스까지 가기에는 너무 멀고, 가까운 일본에서 멋진 모네 전시를 보고 싶은 분이 있다면 다른 데 말고 지중미술관에 가 보시기를 추천한다. 정말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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