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선데이수 Jan 14. 2020

지속가능한 도시를 꿈꾸며

[미래와 예술 전시 스케치 ①] 사막도시의 미래 마스다르(Masdar)

얼마 전 롯본기 힐즈의 모리 미술관에서 오는 3월29일까지 열리는 <미래와 예술 展>을 인상깊게 보고 왔다. 모리 미술관 전시는 단순히 미술 전시에 그치는 게 아니라, 여러 흥미로운 주제에 대한 일본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담론을 미술이라는 렌즈에 비춰 볼 수 있게 해 주어 늘 만족스럽다.


이번 전시는 크게 미래의 '도시'와 '인류'라는 키워드로 나눠볼 수 있겠다. 특히 전반부에서 미래의 '도시'가 어떤 모습이어야 할지에 대해 생각할 만한 거리들을 잔뜩 제시했다. 필자 입장에서는 2020년 도쿄 올림픽은 물론, 2025년 오사카-간사이 엑스포 라는 대형 이벤트를 연이어 앞둔 지금 일본이 어떤 고민을 하고 있는지 엿볼 수 있어 의미가 있었다.


물론 전시에서 다뤄지는 '미래'의 도시가 '현재'의 도시와는 한참 동떨어진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겠다. 실제로 그렇다. 스마트시티,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제로(Zero)인 친환경 도시. 개념은 있지만 아직 실체는 없다. 가령 전시회의 한 섹션에서 2025년 엑스포를 앞두고 오사카-간사이의 인프라를 어떻게 재구축 할지에 대해 화려한 청사진을 내놓지만, 아무리 세상이 빠르게 변한단들 불과 5년 뒤에 현재의 오사카가 그렇게나 삐까뻔쩍한 도시로 변할거라 생각하진 않는다.


하지만 미래는 거대한 물결-트렌드처럼 한 발짝 한 발짝 다가온다. 손에 닿지 않을 것 같이 먼 미래의 청사진을 그리는 과정에서 현재의 우리에게 도움이 될 만한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다면, 그리고 그 인사이트를 토대로 현재의 도시 속 미래의 트렌드에 맞는 지점을 조금씩 적용해나갈 수 있으면 그걸로 충분한 게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몇 차례에 걸쳐 <미래와 예술> 전시 중 필자가 인상깊게 본 몇 가지 키워드를 제시하고, 각각의 키워드에 대해 전시에서 제시한 내용에 약간의 리서치를 더해 연재해보려고 한다. 재미있게 읽어주셨으면 좋겠다.





아랍 에미리트(UAE)에서 가장 큰 도시 아부다비(Abu Dhabi). 아부다비 중심에서 차로 30분 정도 떨어진 거리에 미래도시 마스다르(Masdar)가 건설되고 있다. 이 거대한 건설 프로젝트를 이끄는 건 (산유국이라 돈 많기로 소문난) 아랍 에미리트 정부. 2030년 완공을 목표로 프로젝트가 진행중으로, 이미 Siemens(지멘스) 중동 HQ, 국제재생에너지기구(Irena) HQ가 입주 해 있다고 한다.


붉은 색 핀으로 표시한 곳이 마스다르(Masdar). 아부다비 공항과 바로 붙어있다. 사진 출처는 구글 지도.


이 도시의 비전을 '최신 과학기술을 동원해서 오염물질 배출 제로를 달성하겠다'고 요약할 수 있을 것 같다. 사실 사람이 먹고 자고 싸는데 아예 오염물질을 배출하지 않을 수는 없고, 이런저런 계산을 통해 '순 배출량(Net emission)'을 제로로 만들겠다는 의미라고 한다.


사막 한 가운데서 어떻게 그런 구상이 가능하다는 걸까. 마스다르는 몇 가지 건축적 아이디어를 제안한다.



1) 건물을 빽빽하게 지어 인공적으로 그늘을 만든다


아랍 에미리트는 어디에 석유에너지를 많이 쓸까? 가장 쉽게 생각해 낼 수 있는 답은 역시 에어컨 일 것 같다. 사막의 건조한 기후와 뜨겁게 내리쬐는 태양열. 아래 사진의 왼쪽에 보이는 아부다비의 전경을 보면 자연스럽게 아, 겁나 덥겠다! 라는 생각부터 든다. 한참동안 유행했던 통유리 건축은 세련됐지만 단열에는 취약하다. 그러니 실내에 에어컨을 빵빵하게 틀어놓지 않고는 버틸 수 없게 된다.


오른쪽에 보이는 마스다르의 풍경은 좀 다르다. 건물의 각 섹션에 테라스를 두어 최대한의 그늘을 만들고, 낮은 건물을 빽빽한 밀도로 지어 인공적인 그늘 길을 만들었다. 뿐만 아니라 도시 곳곳에 바람 탑(Wind Tower)을 두어 공기 순환을 촉진시킨다.


전시에서 제시한 통계를 보면

- 사막의 기온 : 섭씨 67도

- 아부다비 도심의 기온 : 섭씨 71도

- 마스다르의 건물 그늘에서 잰 기온 : 섭씨 50도

- 마스다르의 녹색 정원에서 잰 기온 : 섭씨 48도


섭씨 48도나 50도도 그다지 견딜만한 기온으로 여겨지지는 않지만, 그래도 열악한 기후적 조건에서 최선을 다했다는 것 만큼은 분명하다.


왼쪽은 익숙한 초고층 빌딩이 빽뺵히 들어 선 아부다비의 전경, 오른쪽은 낮은 건물이 뺵빽히 들어 서 그림자를 만들어 주는 마스다르의 거리이다. (사진 출처는 UAE 정부 홈페이지)


2) 도심에서는 도보로, 원거리 이동은 친환경 교통수단으로


도심의 주요 건물을 빽빽하게 짓는 데는 또 다른 이점이 있다. 도심에서 도보로 이동하도록 유도할 수 있다는 점이다. 마스다르의 주요 건물들은 서로의 간격이 200m를 넘지 않도록 배치되었다고 한다. 운 나쁘게 내 현 위치에서 목적지까지 다섯 개의 건물을 지나쳐야 하더라도, 총 거리가 1km를 넘지 않는다. 이 정도면 번거롭게 다른 교통수단을 이용하느니 그냥 도보로 이동하는 걸 선택하고 말 것이다.


* 참고 : 도심에서의 도보이동은 최근 유럽을 중심으로 세계 각 도시들이 지향하는 미래 도시의 라이프스타일이기도 하다. 아래 위키피디아 링크를 보면, 덴마크 코펜하겐을 비롯해 세계 많은 도시들이 도심에의 차량 진입을 제한하고 있다.


한편 마스다르가 위치적으로 아부다비와 인접해 있는 만큼, 아부다비와의 사이를 잇는 교통수단 역시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마스다르는 도심 내는 물론 도심 바깥을 잇는 교통수단까지도 화석에너지를 이용하지 않는 자율주행 전기차, 메트로(Metro), 그리고 경전철(LRT:Light Rane Train)로 한정할 게획이다.



3) 친환경 에너지, 재생 에너지를 적극 활용해 오염물질 배출을 줄인다


이 모든 도시 인프라를 운영하는 데 에너지를 전혀 사용하지 않을 수는 없다. 아랍어로 마스다르는 기원(Source)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에너지를 어디에서 얻을 것인가? 마스다르 프로젝트의 기획자들은 중동에 제일 흔한 바로 그것, 태양열에서 답을 찾는다.


아래 사진에서 도시 마스다르에 대한 수치들을 찾아볼 수 있다. 거주자 4만5천명, 통근자 4만명으로 총 8만5천명을 수용하는 도시. 이 도시의 에너지는 92%가 태양열에서 온다. 태양광 패널을 활용하기도 하고, 거대한 거울로 빛을 모아 에너지로 활용하기도 한다. 나머지 8%는 폐기물을 재처리해서 얻겠다고 한다.


인구 1천만명의 대도시 서울에 살았던 내게 8만5천명은 아주 귀여운 숫자다. 참고로 영화제로 유명한 프랑스 칸느(Cannes)의 인구가 약 8만명쯤 된단다.





<미래와 예술> 전시회에서는 물론 마스다르 프로젝트의 긍정적인 모습만 비춰줬다. 하지만 브런치 포스팅을 준비하면서 마스다르에 대한 언론 기사를 찾아보았는데, 아래와 같은 제목의 신문 기사가 눈에 띄었다.


이산화탄소 제로를 꿈꾸는 마스다르, 세계 최초의 친환경 유령 도시가 될까?


이 기사에 따르면 마스다르 프로젝트는 원래 2006년에 시작해 10년만에 마무리하는 걸 목표로 출범했다. 즉, 4년 전인 2016년에 이미 완공이 되었어야 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각 분야 전문가들이 모여 아무리 시뮬레이션을 해 보아도 애초의 목표였던 'Zero Emission'을 달성하기는 어렵다는 게 밝혀졌다. 가령 한 관계자는 현재 상황에서 마스다르가 달성할 수 있는 건 'Zero Emission'의 절반 정도 된다고 고백하기도 한다.


'Zero Emission'의 비전을 달성하기 어려운 데에는 인접도시와의 교류도 영향이 있다. 마스다르가 다른 도시와 완전히 격리되어 있다면 마스다르 안에서의 지속가능성이 성립할 수 있겠지만, 이게 뭐 컴퓨터 게임도 아니고 사람 사는 세상에서 그런 게 가능할 리 없다.


결국 이 기사가 쓰여진 2016년 2월 시점에 마스다르 프로젝트의 진행상황은 잘 봐 줘야 전체 계획의 5% 정도였다. 기사는 완공 시기가 2030년으로 미뤄졌지만 과연 완공을 미룬다고 해서 원래의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라는 여운을 남긴다.


* 참고로  기사 원문을 링크한다.





이 프로젝트를 위해 엄청난 재원을 투자한 아랍 에미리트 정부에는 조금 미안하지만, 마스다르에 대해 이것저것 찾아보며 느낀 게 있다. 마스다르가 이런저런 지속가능한 도시 프로젝트를 계획하는 사람들에게 아주 훌륭한 사례연구 거리가 될 거라는 점이다. 설령 마스다르가 성공하지 않더라도, 마스다르를 반면교사로 언젠가는 마스다르 같은 도시가 등장할 거란 희망이 생긴다.


이름부터 미래도시 느낌이 팍팍 나는 마스다르. <미래와 예술> 전시에는 건축가들이 도안을 그린 기획 단계의 프로젝트들도 많이 전시가 되었지만, 마스다르는 이 세상 어딘가에 실재하는 도시라는 점에서 더욱 매력적이었다. 이거 참, 이러다가는 공상과학 영화의 상상력이 실제 현재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게 되지 않을까? SF 작가들은 공부 많이 해야겠다.


그리고 지금으로부터 10년 뒤인 2030년, 마스다르가 과연 어떤 모습이 될지 앞으로도 잘 지켜봐야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고요한 어촌마을을 깨우다, 세토우치 트리엔날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