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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데이수 Jan 28. 2020

네모 반듯한 디자인은 가라

[미래와 예술 전시 스케치 ②] 미래 사회를 위한 비정형 건축 디자인

롯본기 힐즈에서 열리는 <미래와 예술> 전시 스케치 두 번째 편은 미래 사회에는 어떤 건축 디자인이 어울릴까? 라는 질문에서 시작해본다.





지금으로부터 6년 전, 2014년 3월 서울 동대문 한복판에 희한하게 생긴 건축물이 들어섰다. 동대문운동장이 있던 자리를 건축부지로 활용해 서울을 대표하는 랜드마크 건축물을 만들어보겠다는 취지였다. 무척 유명한 외국 건축가가 설계를 맡았다고 하고, 건축비도 상당히 들었다고 하니 그래 어디 한 번 어떤지 보자. 그렇게 뚜껑을 열어본 서울 시민들의 첫 반응은 '이게 대체 뭐냐' 정도였던 기억이다.


번쩍번쩍 빛나는 표면, 익숙한 직선이 아니라 낯선 곡선을 택한 과감한 형태, 아무리 들여다봐도 어디가 입구인지 알 수 없는 비정형적 요소까지 어느 하나 친절한 구석이 없는 곳이었다. 더군다나 이 UFO를 닮은 희한한 건물이 위치한 곳은 다름아닌 서울 동대문이었다. 조금 낡은 고층건물이 사방을 둘러싸고 있고, 저 멀리 남산타워가 보이는 이 곳의 풍경과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말 그대로 미래적인 건축물이었다.


"세계 최대 규모의 3차원 비정형 건축물". 이제는 여섯 살이 된 DDP가 스스로를 소개하는 문구다. 사진 출처는 DDP 홈페이지.


DDP 개관으로부터 2년이 지난 2016년 3월, 건축가 자하 하디드가 세상을 떠났다. 세계적으로 존경받는 건축가인 그가 마지막 유작으로 DDP를 남겼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필자 한 사람의 생각이 서울 시민 전체를 대표할 리 없지만, 적어도 필자의 경우에 이 이후에 DDP를 조금 더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었던 것 같다. 누구에게나 처음과 마지막은 중요하지 않은가. 뭐 좀 낯설게 생겼지만, 자하 하디드의 유작, 서울 한복판의 DDP.





이야기가 조금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다시 <미래와 예술> 전시회로 돌아와 보자. 건축은 공간이며, 그 공간 안에서 상호작용 하는 인간의 필요를 잘 반영해주어야 한다. 현재보다 미래 사회로 갈 수록 더 두드러지는 인간의 필요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그리고 그 필요를 더 잘 반영하기 위한 건축적 아이디어는 무엇일까? 여러 아이디어를 하나의 개념으로 묶어서 표현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해 답하기 위해, 위니 마스(Winy Maas) 교수를 필두로 글로벌 건축 싱크탱크를 표방하는 'The Why Factory'가 다공성(Porosity)이라는 주제로 작품을 출품했다. 대체 다공성이 무엇인가. 공(空), 즉 구멍이 많다는 뜻이다. 아래 사진을 보면 다공성이라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조금쯤 감이 온다.


왼쪽 하단의 네모 반듯한 건물은 다공성이 0이다. 젠가 게임을 하듯 뒷쪽으로 갈 수록 모양이 복잡해지고 그만큼 다공성도 높아진다. 사진은 직접 촬영.


설명에 따르면 사진의 블록들은 The Why Factory가 일본의 치바 공과대학과 함께 레고를 활용해서 만든 모형들이다. 치바 공과대학 학생들이 각각의 모형에 다공성(Porosity) 지수를 0부터 100까지 수치화하고, 각 수치가 의미하는 바를 다섯가지 척도로 계산해냈다. (이런 걸 할 수 있다니 공대생은 멋져요! 대단합니다!)


이 때 이들이 사용한 다섯가지 척도는 Floor, Terrace, Facade, Daylight, View이다.


* 아래 YouTube 동영상은 The Why Factory와 치바 공과대학의 공동 프로젝트를 요약한 것이다.


각 척도의 의미에 대해서는 딱히 설명이 없었지만, 필자의 생각을 덧붙여서 하나하나 뜯어보자.


먼저 Floor. 바닥. 바닥의 면적이 넓을수록 한 건축물을 많은 사람들이 이용할 수 있다. 공간효율성이 높다는 뜻이다. 자칫 네모반듯한 건축물이 바닥 면적도 가장 넓을거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치바 공과대학 학생들이 계산해보니 희한하게도 다공성이 높을수록 바닥 면적이 넓어졌다고 한다.


Terrace. 테라스는 공용공간이다. 나무를 심어 정원으로 꾸미는 등의 방법으로 건물 안 사람들이 서로 얼굴을 맞대고 소통할 수 있는 장소를 제공한다. 그러니 테라스 공간이 많을수록 공공건축물로서는 사람들 간의 소통 가능성을 높여준다는 장점이 있다. 네모 반듯한 건축물에서 테라스는 기껏해야 옥상 정도에 만들 수 있을뿐이지만, 다공성이 높아질수록 테라스를 슬쩍 끼워넣을 공간도 많아진다.


도쿄 미드타운 히비야로 보는 다공성. 거의 네모 반듯한 건물이지만, 중간의 움푹 들어간 부분(말 그대로의 구멍)에 테라스를 만들어 도심 속 정원으로 꾸몄다.

 

Facade. 필자는 바르셀로나에 여행 갔다가 이 단어를 처음 알게 됐다. 그 전에도 들은적은 있었지만 정확한 의미를 잘 몰랐는데, 성 가족성당(사그라다 파밀리아)에 가서 무슨무슨 파사드, 무슨무슨 파사드 를 차례로 보다보니 자연스럽게 의미가 체득됐다. 파사드는 말 그대로 건물의 정면, 얼굴을 의미하는 말이로구나.


Facade와 다공성의 관계에 대해서는 100% 고개가 끄덕여지지만은 않는 부분도 있다. 내가 DDP를 보며 어이없어 한 포인트가 무엇이던가. 건물에 도무지 입구도 출구도 안 보이기 때문이 아닌가? DDP는 건물에 Facade가 꼭 있어야 한다는 개념 자체를 뒤엎는 건물이라고 해도 그렇게 이상하지는 않을 것 같다. 다공성 이퀄 비정형성 이라고 하기는 어렵겠지만, 두 개념이 어느정도 연관성이 있다고 본다면 글쎄, 다공성이 높아질수록 Facade도 많아진다, 잘 모르겠다.


그치만 적어도 네모 반듯한 건물에 '얼굴'이 되는 정면이 하나라면,

네모를 반으로 쪼갠 건물에 '얼굴'이 되는 정면은 두 개가 된다고는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가우디의 대표작 '성 가족성당(사그라다 파밀리아)'의 여러 파사드. 이 거대한 성당은 360도로 뱅뱅 돌다보면 세 개의 파사드, 즉 얼굴을 보여준다.


나머지 Daylight와 View는 서로 관련이 있는 요소니까 한꺼번에 생각해보자.


햇빛을 받으면 비타민D도 합성이 되고 세로토닌도 분비가 되고 여러모로 좋은 점이 많이 있다. 건물 밖 뷰도 마찬가지다. 모두가 한강 뷰, 바다 뷰에서 살기는 어렵겠지만 적어도 창문을 열면 다른 집 살림살이가 훤히 들여다보인다든가, 옆 건물 벽면만 쳐다보며 살아야 한다면 그건 좀 아쉬운 일이다. 가급적 해도 잘 들고 뷰도 탁 트인 집에 살면 좋지 않겠는가.


이 문제에 대한 지극히 한국적 해결책이 바로 '판상형' 아파트일 것이다. 네모반듯한 아파트 단지를 남쪽을 바라보게 짓되, 각 동이 조금씩 엇갈려 있도록 위치를 조정해서 적당한 Daylight와 View를 제공한다. 물론 한계는 있다. 단지 안에서야 시공사 맘대로 할 수 있지만, 단지 밖에 예상에 없던 고층빌딩이 들어선다거나, 소위 혐오시설로 분류되는 무언가가 들어선다거나 하면 그때는 그야말로 난리가 난다.


그런데 다공성 이라는 접근법은 아파트 단지를 만드는 게 아니라, 하나의 건축물 안에서 최대한 많은 입주자들이 Daylight와 View의 수혜를 볼 수 있도록 설계하는 걸 도와준다. 세계적인 건축가인 스티븐 홀(Steven Holl)이 중국 청두에 만든 'Sliced Porosity Block'이라는 건물을 보면 조금 이해가 갈 것도 같다.


말 그대로 잘려나간(Sliced) 듯한 표면이 특징적이다. 사진 출처는 Archdaily.


네모 반듯한 건물을 짓다보면 자칫 저층부는 일조권이 떨어지는 경우가 있다. 스티븐 홀은 햇빛의 방향을 면밀히 계산해 잘려나간(Sliced) 듯한 디자인을 도입했고, 그 결과 건물 내 모든 입주자가 하루에 최소 2시간 이상은 햇빛을 받을 수 있도록 설계했다고 설명한다.


참고로, 아래는 건축가 스티븐 홀(Steven Holl)이 Sliced Porosity Block에 대해 직접 설명하는 영상이다.





자. 이야기를 정리해보자.


2014년 DDP 개관은 필자에게 꽤나 놀라운 일이었다. 비정형의 곡면 구조가 너무 낯설었고, 아름답지도 실용적이지도 않아보이는 구조가 왜 높이 평가받는지 전혀 이해가 안 됐다. 현대 건축이 필자 같은 평범한 사람들과는 전혀 다른 세계로 멀어지고 있는 게 아닌가 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DDP를 DDP로만 보지 말고 우리 사회가 어떻게 변화하고, 그 변화에 건축이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지 라는 큰 흐름 속에서 보면 이야기가 좀 달라질 수 있겠다. 적어도 건축가들이 생각할 때 공공건축은 공간효율성을 포기하지 않으면서(Floor), 사람들 간의 교류를 활성화하고(Terrace), 사람들에게 보다 다양한 '얼굴'을 보여주며(Facade),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어줘야 하는 것 같다(Daylight, View). 이 때 다공성(Porosity)라는 수학적 개념을 도입하면, 다공성이 높아질수록, 즉 네모반듯한 건물에서 보다 비정형적인 형태로 나아갈 수록 이러한 요소들이 조금 더 두드러지게 된다.


다공성이라는 낯선 개념이 중요한 게 아니고, 현대 건축을 이끌어가는 커다란 흐름을 생각할 때, 앞으로는 조금 더 낯선 모양의 건물을 봐도 그냥 놀라기보다는 이 모양이 우리들의 라이프스타일을 어떻게 반영할 수 있을지를 좀 따져봐야겠다 정도의 결론을 내려본다.





사실 전시회에서 짧게 다루고 있는 주제를 가지고 브런치에 긴 글을 쓰자니 영 쉽지 않았다. 건축에 대해 읽고 보기를 좋아하지만 그렇다고 잘 아는 분야도 아니다. 이런저런 자료를 찾아보며 필자 나름대로는 재미있게 써 보았지만, 혹시 잘못 들어간 내용이 있다면 그냥 지나가지 마시고 꼭 이야기 해 주셨으면 좋겠다.


어쨌든 <미래와 예술> 전시회에 대한 포스팅은 이것으로 마쳐본다.

그럼 다시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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