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크 시대의 화장에 대해 생각한다.
출퇴근 길 빼놓지 않고 마스크를 끼고 나간지 어언 한달 반 째. 다들 하니까 나도 하긴 하지만, 솔직히 마스크는 불편하다. 습기가 차서 내내 찝찝한 건 물론, 아침에 한 번 쓰고나면 화장품이 누렇게 묻어나와 오후에 그대로 끼기가 싫다. 마스크 안 피부가 숨을 쉬지 못해 트러블이 잦아진 건 덤.
그렇게 불편함과 씨름하다 결심했다.
나, 이제 화장 안 해.
그 전에도 화장을 빡세게 하고 다니는 편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평일엔 나와 세상 사이의 마지막 한 겹 비비크림만은 포기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 시국에 그게 다 무슨 소용이라. 아주 작은 망설임을 물리치고 나니 이렇게 편할 수가 없는 것을.
내 주변 사람들이 유독 예의 바른 사람들이라 입 밖에 내질 않는지, 또는 비비크림을 바르나 안 바르나 내 얼굴은 그냥 내 얼굴로 보이기 때문에 신경쓰질 않는지, 뭐 어떤 이유든 내가 썡얼로 출근하기 시작한 지 어언 2주째에 접어드는 지금까지 내 작은 일탈(?)에 의문을 갖는 사람은 없었다.
반대로 아무도 뭐라 하지 않았는데 내가 괜히 신경 쓰느라 스트레스 받는 순간도 왔다. 가령 업무적으로 누굴 만났는데 상대가 메이크업을 너무 잘 하고 나타난 경우. 각자 취향과 상황에 맞춰 할 수 있는만큼 하는 거라고 생각은 하지만, 그래도 왠지 주눅이 든다.
내 경우에 화장을 한다는 건 가면을 한 겹 덮어쓰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다. 화장 이라는 물리적 가면을 걷어내더라도 내 나름의 심리적 가면이 있다면 사회 속에서 관계를 구축하는 데 문제가 없다. 그치만 내가 심리적으로 덜 건강한 순간에는 역시 물리적 가면에 조금 더 의지하고 싶어지는 것 같다.
사춘기 무렵부터 나는 여드름과 씨름하며 살았다. 온갖 민간요법 - 계란흰자도 발라보고 계피가루도 올려보고 등등 - 을 시도하고, 간헐적으로 피부과에도 왔다갔다 하며 공을 들였지만 별 차도가 없었다. 그러다 하도 답답한 마음에 집에서 한두 번 건드렸던 게 피부에 고스란히 흉터로 남기도 했다.
그렇게 수능이 끝나고, 그 땐 화장을 잘 하게 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줄 알았다. 대학교 입학을 앞두고 화장품 로드샵에 가서 뭘 사야할지도 모르는 채 화장품을 한가득 사고, 그 중 반 이상은 제대로 쓸 줄 몰라 버리기를 반복하던 나날들. 내 화장의 목적은 딱 하나였다. 피부 좋아보이는 것.
지금은 안다. 내가 무슨 유명한 메이크업 아티스트도 아니고, 안 좋은 피부를 어떻게 좋아보이게 할 수 있단 말인가. 안 되는 걸 되게 하려고 덕지덕지 화장품을 올리면 올릴수록 화장만 두꺼워져갔다. 핸드폰 카메라에 필터 가득 넣고 셀카 찍으면 대충 피부가 좋아보일 수 있겠으나, 셀카 말고 거울 속 내 피부는 그야말로 텁텁해보일 뿐이었다.
다행히 내 이야기의 결말은 해피엔딩이다. 나이가 20대 중반을 넘어가면서 피부 체질이 조금 바뀌었고, 그 시기쯤 나와 잘 맞는 피부관리실을 만나 꾸준히 다니다보니 피부결도 많이 좋아졌다.
어쨌든 이런 사정이 있기 때문에 나는 둘 다의 경우를 다 이해할 수 있다.
지금은 내 쌩얼에 딱히 스트레스 받지 않으니까 마스크를 핑계로 썡얼로 다니는 데 큰 문제가 없다. 내 쌩얼이 내 스트레스의 큰 원인이던 시절엔 좀 달랐다. 누군가 나에게 '썡얼로 다니면 편할텐데 왜 그렇게 화장을 두껍게 하고 다녀?'라는 무신경한 말 한 마디라도 던졌다면 난 글쎄, 너무 큰 상처를 받았을 것 같다. 한동안은 그 말 던진 사람을 미워하는 데 온갖 에너지를 다 쓸 정도로 말이다.
그러니 내 선택을 다른 사람에게 강요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냥, 이런 방법도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을뿐.
아, 그래서 화장 안 하면 어떻냐고요?
길게 말할 것도 없이 당연히 엄청 편하고 좋다. 확실히 땀도 덜 나고, 또 마스크를 내내 끼고 있는 게 아니다보니 끼고 벗고 할 때마다 마스크 안 누렇게 화장품 묻은 걸 보며 찝찝했는데, 화장 안 하니 그런 걱정도 없다.
물론, 위에서 잠깐 언급한 심리적인 문제 - 물리적 가면이 없어서 내 자신을 너무 노출하는 것 같아요! - 가 남아있긴 하다. 지금은 마스크가 너무 불편한 나머지 화장 안 하는 편리함이 우세하지만, 코로나 사태가 잠잠해져 마스크 안 끼고 다녀도 되는 날이 오면 그 때는 어떨까 생각해본다. 슬금슬금 비비크림 정도는 바르고 다니던 시절로 돌아갈 것 같기도 하고. 잘 모르겠다.
뭐 그건 또 그 날의 나에게 물어보기로 하고, 오늘은 오늘의 사정에 맞춰 지내는 게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