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외) 내 맘대로 집파스타의 매력

by 선데이수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니 몇 안 되는 요리 레파토리가 금세 바닥이 날 지경이다. 열악한 요리실력에도 그나마 언제든 무리하지 않고 만들어낼 수 있는 음식이 있다. 바로 파스타다. 꼭 필요한 건 파스타면과 올리브유, 그리고 양파. 나머지는 그때그때 냉장고에서 발굴해 낸 식재료를 대충 때려넣고 만든다. 배고프면 면을 많이, 적당히 먹어야 할 땐 면을 좀 적게.





올리브유의 힘!


올리브유에 대해 잘 모르지만, 올리브유를 살 때는 수입식품 비중이 높은 큰 마트에 가서 가격과 패키지를 유심히 들여다보고 고른다.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가 물건을 잘 고르는 비결 중 하나는 그냥 비싼 걸 사는 것이다. 잘 모를 땐 가격을 보라는 것. 그 마트에서 제일 비싼 제품과 제일 싼 제품을 비교해 보고, 중간보다 조금 아래 가격의 올리브유 하나, 그리고 중간보다 조금 위 가격의 올리브유를 하나 산다.


그런데 올리브유를 두 개나 사서 뭐에 쓰는가.


둘 중 싼 쪽은 마늘과 양파를 볶을 때 쓴다. 기분상 조금 더 팍팍 쓰게 된다. 둘 중 비싼 쪽을 쓸 때는 왠지 팍팍 따르기가 망설여진다. 그래서 가끔 빵을 찍어먹는 데 쓰거나, 아니면 오일파스타가 거의 다 볶아졌을 때 즈음 마지막에 슥 둘러주는 데 쓴다.


올리브유만 잘 골라도 오일파스타는 대충 맛있다. 소스를 따로 만들지 않아도 되어서 편하다. 집에서 파스타를 할 때 세 번 중 두 번 정도는 별다른 소스 없이 올리브유만 넣고 오일파스타를 만들어 먹는 것 같다.


소고기랑 마늘을 잔뜩 넣고 볶았다. 일본은 이상하게 마늘이 비싸다. 큰 맘 먹고 한 번 사오면 아껴가며 파스타 해 먹는 데 쓴다.
마트에서 연어 구운 걸 싸게 팔길래 사다가 오일파스타에 넣어먹었다. 자칫 심심할뻔했는데 연어향이 배어서 아주 맛있었다.


재료는 내 맘대로


사 먹는 파스타도 물론 좋아한다. 소스에서 깊은 맛이 난다. 그걸 따라잡으려면 먼저 내 요리실력을 키운 다음, 굉장한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할 것 같다. 그치만 뭐 혼자 먹자고 굳이 그렇게까지.


반면 사 먹는 파스타에 아쉬운 부분이 있다면, 내가 좋아하는 재료를 더 팍팍 넣어줬으면 하는데 아무래도 좀 부족하다는 것이다. 집파스타는 그런 거 없다. 내 손으로 재료를 사다가 내 손으로 해 먹으니 좋아하는 재료는 듬뿍, 싫어하는 재료는 빼고 먹을 수 있다.


봉골레에 마늘과 바지락과 면이 거의 같은 비율로 누워있다든지...



발사믹 식초와 올리브유를 넣고 버무린 콜드파스타 속 모짜렐라 치즈와 토마토를 원 없이 먹을 수 있다든지...




아는만큼만 만들 수 있다


(내 요리실력으로는) 어떤 음식을 먹어봤다고 해서 그대로 만들 수 있을 리 없지만, 반대로 안 먹어 본 음식은 아예 시도조차 할 수 없다. 집파스타의 메뉴판은 어디까지나 내 짧은 경험과 상상력의 범위를 벗어날 수 없다.


가령, 어느 날 문득 피자헛에서 시켜먹던 미트소스 오븐 스파게티가 간절히 먹고 싶어진 날이 있었다. 마침 집에 오븐도 있겠다, 당장 오븐 전용 그릇을 사 와서 비슷하게 만들어 보았다. 잘게 갈린 고기랑 양송이버섯을 넣고 소스를 만들고, 반쯤 완성된 파스타를 그릇에 넣고 피자치즈를 솔솔 뿌려 오븐에 굽는다. 내가 만드는 다른 파스타에 비해 시간이 무척 많이 걸리는 편이라 배고플 땐 못하는 일이지만, 그래도 어릴 때 먹던 그 맛이 그리운 날이면 피자치즈를 사 가지고 와서 느릿느릿 만들어 먹는다.



파스타면 종류가 무지무지 많지만 내가 사는 종류는 거의 정해져있다. 스파게티, 펜네, 푸실리, 파르팔레, 그리고 페투치네 정도. 그 외에는 딱히 먹어본 적이 없어서 어떻게 요리를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내 상상 속 페투치네는 사실 묽은 크림소스랑 잘 어울리는데, 크림소스는 내가 만들 줄 몰라서 미트소스 파스타를 만들 때나 쓴다. 그래도 좋아한다. 페투치네. 칼국수 먹을때처럼 꼭꼭 씹어먹으면 맛있다.




하지만 단점도 있다...


이렇게 장점이 많은 게 집파스타지만, 치명적인 단점도 있다.

다름 아닌... 너무 많이 먹게 된다는 것...


스파게티면 1인분은 대체 어떻게 계량하는 것일까? 동전 하나 크기 정도면 된다는데 왜 늘 내가 만드는 파스타는 1.5인분 정도로 완성이 되는지. 파스타면을 계량하다가 나도 모르게 식탐이 들어 정량보다 면을 더 넣는가보다.


1인분씩 구멍이 뚫려있는 스파게티 전용 주방기구가 따로 있다는데, 매번 산다산다 하고 사는 걸 까먹기를 몇 차례. 까먹는지 무의식 중에 안 사는지. 이제는 그냥 스파게티 면을 살 때 1인분씩 묶여있는 걸 고르고 있다. 특별히 배가 고픈 날이더라도 내 맘대로 양을 늘릴 수 없어 식탐 많은 내게는 적절한 통제가 된다.


냉동 껍질콩과 냉동 새우를 사다놓고 슥슥 볶아먹는다. 후추를 좋아해서 잔뜩 뿌린다. 내가 좋아하는 재료만 골라서 듬뿍듬뿍 넣었으니 맛이 없을수가...



그래도 기왕이면


음식이라는 게 혼자 슥슥 만들어 혼자 슥슥 먹는것도 물론 좋지만, 그래도 기왕이면 소중한 사람과 마주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같이 먹고 싶은 마음도 든다. 매번 넷플릭스 켜 놓고 혼자 밥 먹다보니 밥을 차려놓고 다 먹을때까지 걸리는 시간이 채 10분도 안될 때가 많아 요 며칠은 꼭꼭 씹어서 천천히 먹는 연습을 한다. 적어도 15분 이상은 밥 먹는 걸 목표로... 에잇, 좀 슬퍼지네.


어느덧 4월도 중반을 넘어간다.


내가 초등학생일 때 4월은 과학의 달로 기억된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그렇다고들 했다. 미술시간에 과학상상화를 그려 잘 그린 사람을 표창도 해 주곤 했다. 그 때가 대략 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반으로 넘어가던 때였으니, 당시 2020년은 굉장한 미래처럼 여겨졌다. 그 때 내가 그리던 2020년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잘 기억은 안 나지만... 적어도 전염병 때문에 모두가 집에만 콕 틀어박혀 있는 모습을 상상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자동차가 하늘을 날아다니고,

국경을 넘는 건 물론 지구에서 우주로 넘어가는 것 조차 쉽게 해결이 되고,

뭐 이런 것들을 상상하지 않았을까?


정작 2020년의 현실은 과거의 상상이 다 우스워질 정도로 어둡다.

전 세계 각국이 국경을 굳게 닫아걸고 네모난 방 안에서 신음하고 있다.


이 사태가 시작된 지도 어느덧 좀 지나 익숙해질 때도 됐건만, 여전히 현실감이 없다.


매번 이뤄지지 않는 꿈을 꾸는 것 같아 조금 힘이 빠지기도 하지만, 그래도 꿈꿔본다. 이 어두운 봄날이 어서 지나가고, 굳게 닫힌 하늘길이 다시 열려, 사랑하는 가족들, 사랑하는 친구들과 함께 식사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이 글을 읽고 계시는 여러분도, 모두 힘내세요.


우리, 밥은 천천히 꼭꼭 씹어먹어요.





오늘의 관련글은 '해외거주자의 집밥 이야기'로 달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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