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에는 가로수길이 유명하다. 경부고속도로 청주 인터체인지에서 가경천까지 약 6km, 여름이면 울창한 플라타너스 나무가 긴 터널처럼 장관을 이룬다. 그러나 2006년 겨울, 내게 청주는 그저 닭발 나무의 도시였다.
야생화에 이끌려 환경교육을 시작했던 나는 그 무렵, 교원대 파견과정을 통해 정식으로 환경교육을 공부하기 위해 청주로 내려왔다. 새로운 시작의 설렘 반, 새로운 도전의 걱정 반이었던 마음으로 처음 청주로 입성하는 내게 펼쳐진 청주의 가로수길은 충격 그 자체였다. 숭덩숭덩 잘려 나간 굵은 나뭇가지를 드러낸 플라타너스 가로수들. 아름드리라 불러도 좋을 나무들의 굵기를 보아서는 꽤 무성한 나뭇가지를 가지고 있었을 것이 분명한 플라타너스들은 하나같이 서너 갈래의 굵은 우듬지만을 남겨둔 채 잘려있었다.
‘꼭 닭발 같네.’
생김새 때문에 닭발을 먹지도 못하는 내가 대번에 그것을 머릿속에 떠올릴 만큼 댕강댕강 잘린 우듬지로 가득한 플라타너스 가로수길의 첫인상은 강렬했다.
시간이 지나고 닭발 나무에도 푸릇하게 잎이 돋았다. 어설펐던 환경교육 새내기가 조금씩 깊이를 더해가며 청주와 교원대를 오가는 동안, 가로수길도 제 모습을 찾아갔다. 나무의 생명력을 우습게 보지 말라는 듯 푸른 낙원으로 초대하는 길목의 파수꾼처럼 플라타너스들은 신비로운 푸름으로 청주의 진입로를 채웠다.
하지만 청주 곳곳에서는 닭발 나무들이 끊임없이 출몰했다. 옛 청주법원에서 청주교대가 이어지던 길도 그중 하나였다. 오랫동안 자리 잡고 있었던 청주법원이 이전하면서 붐비던 사람들이 사라지고, 법원에 기대어 건물마다 세 들었던 법무사무소가 하나둘 공실이 되자, 거리를 가득 채웠던 상점들은 썰렁해진 가게 분위기에 곳곳에서 울상을 짓고 있었다.
휑해진 닭발 나무들이 남은 거리. 특히, 음식점 사장님들은 법원을 따라 새로운 둥지를 틀어야 할지, 오랫동안 삶의 터전이었던 가게를 정리해야 할지를 고민했다. 손님으로 든 내가 봐도 음식점들은 너무 썰렁했다. 사람의 발길이 끊겨 을씨년스러운 빈 건물들과 그 앞에 남겨진 닭발 나무들. 법원이 이전하기 전, 밥때를 가리지 않고 장사에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는 가게 주인의 푸념은 낡고 오래된 구도심지의 돌아오지 않을 번영의 한때처럼 남아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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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절, 아찔했던 것은 닭발 나무들만이 아니었다
에코샵홀씨에서 기획한 환경작가리더 연수 과정으로 원흥이 마을을 찾아 참으로 오랜만에 청주에 내려왔다. 우리 학급 아이들과 복닥복닥 환경교육을 실천해온 지 이십 년, 일상으로 성큼 다가온 기후 위기는 환경교육을 교육계의 핫이슈로 올려놓았다. 덩달아 환경교육을 제법 꾸준히 실천해오던 나도 바빠졌다. 그렇기에 본격적으로 환경교육을 공부했던 청주를 다시 찾은 나의 감회는 새로울 수밖에 없었다.
‘플라타너스 길은 여전한가?’
예비환경작가들을 태운 버스가 청주로 진입했을 때 내 관심사는 우선 그 겨울, 뭉툭한 서너 개의 우듬지를 자랑하던 닭발 플라타너스들이었다. 아직은 가을이라 그런지 그때의 겨울처럼 닭발의 모습들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동안 흐른 세월을 감안해 보면 그때의 모습보다 더 풍성해졌다고도 할 수 없었다. 차가 지나다니기 딱 적절한 가로수의 모습으로 청주의 플라타너스들은 그동안 지내 온 시간을 이야기해주었다. 가로수로서 적당한 크기와 모습으로 살아가야 하는 그들의 고단함이 차창 밖으로 무심히 흘러갔다.
드디어 원흥이 마을에 도착했다. 두꺼비 서식지라 하여 산과 들, 혹은 논밭을 기대했던 내 예상과는 달리 버스는 멀끔한 도로와 건물들이 즐비한 시내에 멈추었다. 원흥이 마을 안내도를 따라가다 보니 도로 팻말에 법원이라는 단어가 눈길을 끈다. 원흥이 마을 두꺼비생태공원 뒤로 웅장하고 큰 건물이 서 있다. 청주지방법원.
‘그때 법원이 이전한 곳이 바로 여기구나!’
그때의 난 이전했다는 법원이 어디로 갔는지 궁금해할 필요가 없었다. 그랬기에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이전한 청주법원을 마주한 놀라움은 잠시, 원흥이 방죽을 지켜낸 이야기를 듣기 위해 가을 낙엽이 제멋대로 머무는 나무데크에 자리를 잡았다.
구름마저 예술작품처럼 수놓은 하늘과 적당한 햇살, 붉은 잎사귀를 장난삼아 흔드는 바람과 사람 좋은 웃음으로 연수생들을 맞이해준 사단법인 ‘두꺼비친구’들의 신경아 사무처장님. 자신도 한때 아이의 손을 잡고 원흥이 방죽을 찾았을 때 포크레인 앞에서 결사 항쟁 중이던 환경운동가의 처절함에 두려움을 느끼던 평범한 아줌마였다고 담담히 서두를 시작하신다. 누군가에게는 몸과 마음을 내던져 지켜내야 했던 곳이었던 과거가 믿겨 지지 않을 만큼 가을의 향기를 품은 두꺼비생태공원은 고요한 평화와 햇살의 여유로움이 그득했다.
그런데 한 편의 드라마보다 더 우여곡절이 많은 원흥이 방죽 이야기를 들으며, 두꺼비를 지켜내는 평범한 마을 사람들의 감동적인 이야기가 이어지는 동안 나는 까닭 모를 불편함을 느꼈다. 두꺼비생태공원을 도는 동안에도 불편함은 그 크기를 더해갔다. 올 가뭄에 제대로 된 단풍 없이 낙엽부터 떨굴 준비를 하는 300년 된 느티나무의 애환일까, 높아진 옹벽의 그늘 때문에 수온 3,4도나 내려가 더이상 두꺼비가 찾지 않는 방죽의 아이러니 때문일까?
원흥이 마을 두꺼비생태공원은 꽤나 성공한 환경운동 사례였다. 아파트와 먹자골목이 난공불락의 요새처럼 이곳을 둘러싸고 있어도 이곳의 사람들과 수많은 작은 생명들이 쉴 수 있는 곳을 유지했으니 말이다. 높은 옹벽 너머 스카이라인에는 방죽을 둘러싼 무성한 푸른 나무 너머로 네모진 아파트들이 걸렸다.
두꺼비생태공원 내에서 희미한 배경으로 보이는 아파트들
이만하면 과거의 행적들이 어떤 과제를 남겼든, 앞으로 풀어야 할 과제가 무엇이든 지역 개발에서 우리가 놓쳐서는 안 되는 것이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었다. 외국의 생태도시와 견주어도 우리나라에서 비슷한 상황에 놓인 개발 예정지에서 벤치마킹할만 하지 아니한가.
까닭 모를 불편함의 원인을 찾아 부지런히 시선이 옮겨간 곳에는 다시 청주법원이 있다.
‘아, 난 정말 몰랐었구나!’
원흥이 방죽이 있는 지금의 구룡산 자락이 개발이냐, 보존이냐로 첨예하게 대립했던 직후 나는 이곳에 있었다. 그것도 환경교육을 제대로 해보기 위한 학업의 이유로. 대학원 연구실과 도서관, 실험실에서 수많은 논문과 서적을 읽는 동안 내 옆에서는 학업으로는 전달할 수 없는 생생한 환경 강좌가 펼쳐지고 있었던 것이다.
법원이 떠난 자리에 남은 음식점 사장님들의 한숨을 들으면서도 한 번도 생각하지 않은 신개발지, 구룡산 자락의 치열한 보존과 개발의 싸움. 그 지역에 머물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지역에서 일어났던 환경문제를 알지도, 인식하지도 못했다는 불편한 진실이 두꺼비생태공원 뒤 법원 건물을 마주하면서부터 이미 내 마음 한 켠을 두드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때 아찔하게 느껴야 했던 것은 닭발 나무만이 아니었다. 구룡산이, 원흥이 방죽이, 두꺼비들이 더 아찔했던 것이다.
학교 환경교육은 무엇을 교육해야 하는가
전국 최초의 두꺼비생태공원이 만들어지는 동안 청주에 살며 환경교육을 받고 있던 나는 무엇을 알고 무엇을 하고 있었나. 청주에서 살고 있다고 해서 청주의 환경에 대한 관심이 저절로 생기는 것이 아니었다. 내가 사는 지역이라도 그 지역의 변화과정을 환경적 관점에서 바라보고 문제로 인식하기 위해서는 교육적으로 촘촘하게 만들어진 자기환경화의 과정이 선제 되어야 했다.
교육은 정치적으로 이념적으로 중립적이어야 하나, 환경교육이 지속가능한 삶의 방향성을 제시하기 위해서는 지역의 환경 쟁점을 다루는 것에 주저함이 없어야 한다. 자신이 속한 지역적인 환경문제를 인식하지 못하면 지구적인 그 어떤 환경문제도 자기의 것으로 받아들이기가 불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환경교육의 오래된 딜레마는 아는 것을 행동하지 않는 것이다. 다양한 수업으로 환경지식을 쌓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나 그것이 환경감수성이나 적극적인 환경행동으로 이어지는 것을 확답할 수 없다. 환경감수성은 환경으로부터의 교육, 즉 환경 안에서 체험을 통해 어느 정도 효과적으로 길러진다는 것에 이견이 없으나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환경행동은 그것을 발현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여전히 고민스럽다.
환경교육에서는 이것에 대한 해답을 자기환경화에서 찾는다. 자기환경화란, 비자기환경으로 인식하고 있는 주변의 환경을 나의 것으로 인식하여 보다 민감하게 반응하고 적극적으로 행하게 하는 과정을 뜻한다. 다시 말해 나를 둘러싼 환경이 나와 밀접한 관계에 있다는 것을 깨달아 능동적인 환경행동을 실행하게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환경교육이 글로컬이어야 하는 이유, 기후 위기와 같은 전지구적인 환경문제에 대한 인식도 지역적으로 시작해야 하는 이유이다.
아쉬운 상상, 만약 그랬더라면
이제 와 그때의 원흥이 방죽을 보존하는 과정에 그 어떤 관심을 갖지 못했다는 것이 부끄럽기 그지없으나 그 부끄러움을 깨달은 것이 참으로 다행이다. 만약 이번 연수를 통해 두꺼비생태공원에 가보지 못했다면 이 부끄러움을 영원히 알 수 없었으리라.
아쉽고도 아쉽다. 만약 대학원에서 들었던 수많은 외국 사례 대신 청주의 지역 쟁점이 다뤄졌으면 어땠을까. 그것이 정식 커리큘럼까지는 아니더라도 학술포럼의 주제로 선정되어 좋은 환경교육을 고민하던 많은 사람들과 토론을 해보면 어땠을까. 그래서 산남 3택지개발지구가 원흥이 두꺼비생태공원이 되고, 도심생태복원의 대표적인 사례가 되어가는 과정을 눈앞에서 생생히 지켜볼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지금 나의 환경교육은 제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아찔한 것들에 대해 알아차리게 하고 있는지, 다시 한 번 되짚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