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생 때 나는 기술가정 시간을 퍽 좋아했었다. 관념적인 내용이 아닌 원리를 배우고 내 손으로 직접 물건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이 내게는 큰 즐거움이었다. 반바지 만들기, 경단 만들기 등 다양한 실습이 있었지만 그 중에서도 내가 가장 즐겁게 했던 것은 전기자동차 만들기였다. 전기자동차에 들어가는 기어박스, 회로 등을 조립하고 자동차의 몸체를 디자인해 우드락으로 만드는 작업이었다. 특별한 디자인을 만들어보겠다며 자료조사도 많이 했다.돼지 얼굴을 닮은 자동차의 몸체를 디자인해우드락으로 만든 후, 조립한 부품들을 넣어 자동차를 완성했다. 실제로 자동차가 움직이게 됐을 때 그 기쁨은 정말이지 잊을 수가 없다. 만들기를 시작할 때부터 탐을 냈던 어린 동생에게 수행평가가 끝난 후에도 내 줄 수 없었던 소중한 나의 첫 작품이었다.
전기자동차 만들기 실습 (출처: 원교재사)
당시 내가 전기자동차 만들기를 얼마나 즐거워했었는지와 별개로, 이후로는 ‘직접 만드는 경험’을 발전시킬 수 있는 기회는 거의 없었다. 때문에 기계, 제작, 메이커와 같은 단어는 나와는 관련이 없다고 여겼던 것은 어쩌면 당연했다. 이 시간을 떠올리게 된 건 순전히 ‘청계시소’ 덕분이었다. 직선운동, 회전운동, 캠 구조, 베어링 등 청계시소를 설명하는 생경한 제작 용어들이 도리어 즐거웠던 공작시간을 떠올리게 해준 것이다. 기뻐할 것은 개발될 기회가 없었던 우리의 잠재된 공작 본능을 깨워줄 현장이 멀리도 아닌 서울 한복판에 있다는 점이다. 바로 청계천-을지로 일대에 위치한 소규모 제조업 밀집지역이다. 청계시소는 치열한 삶 속에서 성장한 이 지역의 기술을 알리고, 시민들의 잠재된 공작본능을 깨워 세운 일대를 중심으로 한 제작문화를 활성화시키고자 예술가와 기술자가 힘을 합해 완성한 흥미로운 프로젝트다.
단절된 청계천의 상부와 하부를 잇다
이 동네에 더 많은 사람들이 와서 즐길 수 있도록 하는 동시에, 기계의 원리를 직관적으로 체험하며 동네를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구조물을 만들고 싶었어요.
청계시소는 다시세운 시민협의회의 의뢰와 2019년 서울시 시민 참여예산사업의 지원으로 3명의 작가가 머리를 모아 고안한 프로젝트다. 미디어 아티스트 전유진, 기계 디자이너 김성수, 테크놀로지아티스트 송호준까자 총 3인의 작가가 프로젝트를 이끌었다. 청계천-을지로 일대에서 작품활동을 해 온 이들은 이 지역의 제작문화를 더 많은 시민에게 효과적으로 알리고, 동시에 그 문화를 직접 체험할 수 있도록 하는 구조물을 만들기 위해 고심했다. 오랜 회의를 거듭한 끝에 선택된 것이 바로 ‘시소’이다. 제작과정에서는 청계천-을지로 일대의 생산시스템을 적극 활용했다.
이들이 제작한 시소는 ‘혼자’ 타는 시소라는 점에서 조금 특별하다. 청계천 상부의 세운교 위에 설치된 이 시소에 사람이 탑승하여 페달을 돌리면 반대쪽에 있는 추가 이동한다. 이내 추가 있는 반대편이 더 무거워지게 되면 시소가 회전하면서 사람이 탑승한 부분이 청계천을 향하여 올라가는 형태이다. 전기장치는 일체 사용되지 않았고 오로지 사람이 만드는 동력만으로 기계가 움직인다. 탑승자는 직접 페달을 돌리고, 그에 따라 장치가 움직이는 것을 몸으로 느끼면서 시소에 적용된 지렛대의 원리와 기계의 작동원리를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청계천으로 뻗어나간 청계시소
이런 특별한 형태의 시소가 고안된 데에는 크게 세 가지 이유가 있다. 먼저는 앞서 설명한 대로 사용자가 즐겁게 참여하면서 이 동네의 특성을 직관적으로 이해하게 하기 위해서다. 전기장치 없이 사람동력을 사용한 것도 시간의 누적으로 완성된 이 동네의 수공적 기술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두 번째로는 탑승자가 청계천 하부와 재개발이 진행되고 있는 지역, 그렇지 않은 지역을 한눈에 조망하며 청계천-을지로 일대가 직면한 현실에 대해 인식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40여년간 재개발 구역으로 지정되고 해제되기를 반복하며 오랜 시간 갈등을 겪었다. 최근 서울시가 ‘재생’으로 변경된 계획을 발표하긴 했지만, 이미 일부는 철거가 진행되고 있고 그에 따라 이 지역이 장시간 구축해온 제조업 생태계도 위기를 맞이했다. 청계시소는 이런 동네의 현실과 시민 유휴공간으로 거듭난 청계천의 현재를 동시에 조망하는 독특한 경관을 제공한다.
마지막으로 청계천 상부와 하부의 연결이다. 복원사업을 통해 산책하기 좋은 길이 된 청계천 하부에는 많은 사람들이 오가지만, 이들은 삶의 현장이자 제작문화의 산실인 청계천 상부의 속살을 알지 못한다. 작가들은 청계시소가 떠오른 모습을 보고 청계천 하부를 걷는 시민들이 이 동네의 이야기에 관심을 가질 수 있길 바란 것이다.
제작 문화의 확산과 사람동력의 가능성
실상 청계시소에 직접 탄 후에 처음 든 생각은 ‘힘들다’였다. 전기를 이용했다면 훨씬 쉬웠을 텐데, 굳이 2-3분여를 페달을 밟아야만 올라갈 수 있는 구조물을 만들었어야 했을까에 대한 의문이기도 했다. 그러나 움직이는 지조차 의심됐던 육중한 추는 온전히 내가 만들어낸 동력으로 끝내 적정한 지점에 도달했다. 그 순간 몸은 하늘 위로 가볍고도 부드럽게 떠올랐고, 나의 힘으로 기계를 움직여 높이 부유한 순간의 기분은 짜릿했다. 직접 만든 전기자동차가 작동했을 때 느꼈던 쾌감과 닮은 감정이었다.
기술의 발전은 인간 삶을 편리하게도 해주었지만, 인간에게 알 수 없는 무력감 또한 안겨주었다. 똑똑해진 기계가 빠른 속도로 인간이 하던 일을 대체해 나갈수록 우리가 해낼 수 있는 일의 범위는 어떤 면에서 줄어들고 있다. 손쉽게 물건을 사지만, 직접 만들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사라져 가는 것이 대표적 예다. 그러나 이곳 청계천에는 여전히 오랜 시간 몸으로 체득한 기술로 초소형 부품부터 초대형 구조물까지 만들어내는 놀라운 제조 시스템이 자리 잡고 있다. 이는 청계시소가 사람동력을 선택한 이유이기도 하다. 즉, 사람동력이 낡은 구시대의 것이 아니라 지금도 여전히 작동하는 힘이라는 것을 청계시소를 통해 경험하게 한 것이다.
좌-신한정밀 / 우-한라금속 작업장 (출처:청계시소 현장조사 보고서)
‘호모파베르’라는 말이 대변하듯 만들기, 곧 제작은 인간의 본능 중 하나이다. 물건이 넘쳐나는 시대에 늘어가는 원데이 클래스의 인기는 우리 안에 잠재된 만들기 본능이 있다는 것의 방증이며, 최근 대두된 메이커 교육의 중요성은 이 본능을 사용하는 것이 인간의 잠재력을 발휘하는데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 면에서 청계천-을지로 일대는 살아있는 교육현장으로서 높은 가치를 가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곳은 많은 예술가, 메이커, 과학자들이 자신들의 계획의 가능성을 타진할 수 있는 사람동력이 포진해 있는 보물 같은 공간이기도 하다. 이런 공간이 서울 한복판에 있다는 것은 큰 매력이다. 온통 카페나 쇼핑센터로 가득한 도시보다는, 역동적으로 움직여 원하는 것을 생산해내는 도시가 더 힙하지 않은가? 청계시소를 통해 부디 더 많은 사람들이 제작문화에 관심을 가지고, 이 지역의 매력적인 사람동력을 이용하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