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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깨란 May 03. 2020

영화 <기생충>은 모든 나라에서 동일하게 이해될까?

기생충으로 본 문화의 소비와 수용

문화산업이 등장했던 초기에 문화의 소비자는 문화 생산자의 의도를 그대로 수용할 뿐, 능동적 영향력이 전혀 없는 것으로 여겨져 왔다. 하지만 오래지 않아, 수용자가 문화를 능동적으로 해석할 뿐 아니라 자신의 상황에 맞게 수용한다는 이론이 등장했다. 이러한 관점에서 수용자 개개인의 해석과정은 완전히 독립적인 것이 아니라 사회 문화적 맥락에 영향을 받는 것으로 이해된다. 이번 글에서는 역사적 계급적 인종적 맥락의 차이에 따라 문화적 텍스트가 어떻게 다르게 받아들여지는지 구체적인 사례를 분석한 세 가지 연구를 통해 문화 수용의 관점을 이해하고, 영화 <기생충>의 사례에 적용해보고자 한다.  


먼저, Beisel(1998)은 빅토리아 시대 누드화 복제품이 "외설이냐 아니냐"를 두고 펼쳐진 두 개의 소송에 대해 비교한다. 누드화 복제품 소송에 휘말린 두 사람 중, 상류층인 Knoedler의 체포는 '검열'로 여겨졌고, 이로인해 언론 및 다수의 사람들로부터 반발을 샀다. 반면 가게의 점원이었던 Muller의 소송은 아무 무리 없이 넘어갔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를 통해 예술의 의미가 그 대상 자체라기보다는 예술을 소비하는 계층이 누구냐에 따라 결정된다고 보았다. 


Halle(1996)는 기독교의 도상학적 상징 작품들이 내포한 의미와 형태가 시대와 문화가 변함에 따라 변화해온 것을 추적한다. 한 예로 마리아가 동정녀임을 강조하기보다 ‘성모’임을 강조하는 시대적 흐름에 따라 전신이 아닌 허리 아래 곧 생식기 부분이 절단된 모습의 마리아 관련 물품들이 등장했다.

상반신만 있는 마리아 상 (출처: Inside Culture(1996))

이와 유사하게 예수도 하나의 인간이었음을 강조하기 위해 성기를 드러낸 조각 혹은 그림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기도교의 도상학적 작품들의 변화는 르네상스 시대 '인간 중심' 기조와 여성에 대한 인식 변화를 내포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마지막 사례는 서부극이 인디언과 앵글로 족 각각에게 사랑받는 상이한 이유에 대해 분석한 Shively(1992)의 연구다. Shively(1992)는 인디언의 경우 서부극에서 카우보이가 보여주는 자유로운 성품과 삶의 방식을 좋아하는 반면, 앵글로족들은 서부극을 자신들의 역사라고 생각하고 있음을 확인했다. 두 경우 모두 자신들의 민족적 정체성과 연결하여 작품을 소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문화의 소비와 수용에 있어 무엇이 중요한지에 대한 연구는 오늘날처럼 전 세계 문화를 거의 실시간으로 즐길 수 있는 환경에서 더욱 흥미롭게 진행할 수 있다. 때로 한국에서 별다른 반응을 불러일으키지 못했던 문화 콘텐츠가 해외에서 열광적인 반응을 불러일으키거나, 한국에서 중박 정도로 흥행한 영화가 해외에서 대박을 터뜨리는 경우 등이 그렇다. 한 예로 유튜브 시대의 K-POP 열풍의 시작을 알렸던 ‘강남스타일’이 있다. 강남스타일의 경우 코믹한 뮤비, 재치 있는 춤과 음악으로 한국에서도 나름대로 좋은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이미 익숙한 가수 싸이의 그 다운 신곡의 하나로 받아들여졌다면, 해외에서는 전에 없던 콘텐츠로 여겨져 돌풍을 일으켰다. 최근 슈퍼밴드에 출연한 ‘더 로즈’의 경우 전원 한국인으로 구성된 밴드임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해외에서 더 인기가 많은 밴드이다. 이미 해외 10여 개국 투어를 마쳤을 정도니 말이다. 이러한 사례를 통해, 결국 특정 문화적 생산물 자체도 중요하지만, 소비자들이 문화적 생산물을 어떻게 수용하느냐에 따라 그 의미와 위상이 달라진다고 이해할 수 있다.


최근 칸 영화제에서 수상하며 전 세계적 주목을 받고 있는 기생충이 각 나라의 문화적 맥락에 따라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있는가는 위에서 살펴본 문화의 소비와 수용에 관점에서 매우 흥미로운 주제이다. 사실 기생충의 사례는 소비와 수용의 관점도 중요하지만 문화적 생산물 자체도 여전히 굉장히 중요하다는 점을 보여주기도 한다. 국내외 할 것 없이 전체적 플랏과 영상미, 장르의 혼합과 박진감 넘치는 구성에 대해 찬사를 아끼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빈부격차라는 전세계가 공감하는 문제를 영화 기생충은 유쾌하면서도 씁쓸한 특유의 방식으로 전달한다.  

소시민을 대표하는 문광과 그의 남편

흥미로운 점은 빈부격차라는 공통주제에대해 문화적 맥락에 따라 구체적으로 반응하는 바는 문화적 맥락에 따라 다르다는 점이다. 일례로 기생충에서 가사도우미였던 ‘문광’이 주인공 가족의 발길질에 지하로 굴러 떨어지는 장면에서 칸 영화제 시사 당시엔 박장대소가 터져나왔다고 한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한국에서는 탄식이 터져 나왔다. 이러한 차이는 한국 관객의 경우, 가장 소시민적인 캐릭터 ‘문광’ 의 상황에 몰입한 반면 타국 관객은 스토리 자체에 몰입하여 '주인공 가족 대 적대세력' 이라는 구조적 관계 안에서 장면을 받아 들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와 같은 차이는 Shively(1992)의 연구에서 서부극 영화를 보는 인디언, 앵글로가 각각 몰입하는 대상과 이유가 달랐던 것과 같은 맥락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 지하철 풍경 (출처: 서울신문)

또한 이 영화에서 상류층이 하류층을 무시하는 태도 극대화해서 보여주는 소재로 활용된 ‘지하철’도 한국 상황과 다른 나라 상황에서 다르게 받아들여질 수 있다. 한국에서 지하철 매우 대중화된 교통수단이다. 사실상 최 상류층 제외 대부분이 지하철을 이용한다.반면 미국과 같이 넓은 대륙의 경우 지하철의 중요도는 한국에 비해 떨어진다. 때문에 ‘지하철 타는 것들한테 나는 냄새’라는 박사장의 경멸적인 대사의 무게는 한국에서 더욱 남다를 수 밖에 없다. 이 대사를 통해 한국관객들은 다른 어떤 나라의 관객들보다 빠르게, 이항대립적으로 제시된 부자 가족과 가난한 가족 중 가난한 가족에 몰입하게 될 것이다. 

 

이처럼 문화의 소비와 수용은 콘텐츠 자체도 중요하지만 수요자에 의해 능동적으로 받아들여지며, 동시에 이러한 반응은 또다시 사회적 구조적 맥락에 영향을 받아 생성된다. 때문에 문화 자체가 중요한지, 구조가 중요한지, 개인의 능동적 수용이 중요한지를 논하기보다 특정 문화적 대상에 대해 갈라져 나오는 반응을 통해 사회를 읽어내는 작업이 보다 흥미롭다고 생각된다.      




참고문헌

Beisel, Nicola. 1998. "Censorship, audiences, and the Victorian nude." pp. 109-125 pp. 89-92 part II Intro 포함 in Smith, Philip. (ed.) The New American Cultural Sociology. Cambridge University Press).

Hall, David. 1993. "The Truncated Madonna and Other Modern Catholic Iconography." pp. 171-92 in Inside Culture: Art and Class in the American Home. Chicago: University of Chicago Press.

Shively J. 1992. "Cowboys and Indians: Perceptions of Western Films among American Indians and Anglos." American Sociological Review 57:72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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