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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깨란 May 04. 2020

Vlog의 유행은 일상을 어떻게 바꾸는가?

고프만 연극적 관점으로 본 Vlog와 일상의 무대화


 SNS의 발달은 일상생활에서 무대로 기능하는 가상의 공간을 무한히 확장시키고 있다. 개인들은 비단 연예인이 아니더라도 SNS를 통해 자신의 일상을 공유하고, 오프라인 세상에서와 완전히 다른 자아로 자신을 연출하기도 한다. SNS의 발달로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에는 분명히 많은 순기능이 존재하지만, 매우 사적인 일상이 무대화되는 상황은 때로 우리에게 스트레스로 다가오기도 한다.


사실 일상을 '개개인들의 자아 연출로 이루어진 무대'라고 보는 관점은 SNS가 없던 시절에 이미 어빙 고프만이 제시했다. 그는 사회의 미시적 상호작용을 연극적 관점으로 분석하여,  당연시되었던 관습들을 비판했다. 또한 어디에나 존재하는 모순을 색다른 방식으로 제시하여 나와 전혀 다른 사람을 이해할 수 있는 공간이 있음을 보여주었다. 변하는 사회를 풍성하게 이해하고 활용할 수 있도록 고프만의 연극적 관점을 소개한다.

어빙고프만의 자아연출의 사회학

고프만은 그의 저서 <자아 연출의 사회학>에서 모든 상징적 상호작용 과정에서 참여자들은 가장 먼저  ‘상황 정의’를 공유한다고 말했다. 참여자들은 상황과 각자가 맡은 역할에 따라 공연자가 되기도 하고, 관객이 되기도 한다. 이때 인상관리를 하는 개인은 무대 전면 영역에서 보일 모습을 준비하기 위해 무대 뒤의 영역을 가지게 되며, 공연을 준비하는 팀과 함께 관객에게 준비된 모습을 보여준다. 무대 뒤의 영역에서 팀은 상황 정의를 공유하고 공연을 효과적으로 만들기 위한 전략을 공유한다. 그런데 팀은 고정되고 공고화되어 있다기보다 상호작용의 상황이 변화함에 따라 변화한다. 예를 들어, 공연 중 의도치 않은 실수가 발생했을 때 관객은 이를 눈 감아 주고, 공연을 수습할 수 있는 방법을 함께 찾기도 하는데 이때 공연자와 관객은 팀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상황을 공유하는 뮤지컬 팀


고프만의 연극적 관점이 흥미로운 것은 이 관점을 통해 사회를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동시에, 상호협력적으로도 바라볼 수 있다는 모순에 있다.  사람들이 뒷 무대에서 자신의 진짜 모습과 달리 앞 무대를 연출하고 있다는 관점에서는, 사회는 위선과 냉소로 가득 찬 곳으로 이해된다. 이러한 비판적 관점은 우리가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사회의 모습 중 그 실체가 폭로되고 교정되어야 할 상황에서 아주 유용하게 활용된다. 예를 들어, 정치인들이 ‘연출’하는 모습을 그대로 보기보다 그 실제가 무엇인지에 대해 관심 가질 수도 있고, 고프만이 자주 든 예시에서처럼 남성 앞에서 그를 높여주기 위해 무지함을 연기하는 여성의 모습에서 잘못된 점을 꼬집어 낼 수도 있다.


하지만 연극적 관점에서 고프만이 상류층의 위선을 폭로하고 일상을 냉소적으로 바라보고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는 어느 한 사람도 예외 없이 이런 연극에 참여하고 있으며, 우리 모두에게 뒷무대가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모든 인간이 모순되고 위선 된 측면을 조금씩은 가지고 있다는 사실 서로에 대한 분노만을 뱉는 대신, 협력의 실마리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유용하다. 고프만의 해설을 보면 상호작용의 상황 속에서 팀은 유동적으로 변화하며, 관객조차도 공연이 훌륭하게 마무리될 수 있도록 공연자의 실수를 눈감아 주는 역할을 한다. 고프만은 비서가 만나고 싶지 않은 방문객을 돌려보내기 위해 상사가 자리에 없다는 거짓말을 했고, 이 사실을 상사와  통화 중에 알게된 방문객이 이를 모른척하고 돌아가기도 한다는 예를 든다. 이러한 상황을 볼 때 상호작용 과정에서의 인상관리와 상황 정의는 한 개인의 훌륭한 능력으로만 가능한 것이 아니라 상호작용에 참여하는 각 성원들의 협력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임을 알 수 있다.


고프만의 아이디어를 활용하여 정치적 삶에 있어서 사람들의 공적인 입장 표명에 대해 고찰한  Eliasoph(1990)의 연구는 연극적 관점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Eliasoph(1990)는 정치학 연구에서 전통적으로 많이 사용되는 서베이 방식이 대중의 의견을 오판할 수 있기 때문에, 새로운 연구 방식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발화가 사회적 맥락 안에서만 의미를 가진다는 점과 발화의 내용은 형식과 분리될 수 없다는 두 가지 지점에 집중하여 개인들이 ‘공적인 상황’에서 정치적 이슈에 대해 어떻게 말하는지에 대해 연구하였다.  Eliasoph는 개인들이 ‘공적인 상황’에 몰입할 수 있도록 고프만의 관점에 입각하여 일종의 무대를 만들었다. 즉, 거리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인터뷰를 하면서 라디오 뉴스에 활용될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는 미국인들이 ‘공적인 삶’은 개인의 것이라기보다 미디어를 통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는 점에서 착안한 것이다. 그 결과 Eliasoph(1990)는 세 가지 유형을 발견했다. 먼저, 불손한 화자(irreverent speaker)는 정치적 삶이 자신과 관계없다는 것을 강한 어조로 말하며 정치적 영향력 없음을 시니컬하게 드러낸다. 두 번째로 겁먹은 화자(intimidated speaker)는 자신이 정치적 견해를 표명해도 되는지에 대해 자신 없어하며, 원론적인 이야기(cliche)로 답변한다. 마지막으로, 염려하는 화자(concerned speaker)는 스스로를 시민사회의 일환으로 여기며, 자신과 관계있는 내용에 대해 전달한다. Eliasoph의 연구는 고프만의 관점을 활용하여, 일종의 무대를 연출하고 모호하게 이해되는 미국인의 정치적 삶에 대한 보다 깊이 있는 이해하기 위한 시도였다.

Eliasoph가 연출한 공적인 상황

고프만은 <자아 연출의 사회학>의 결론에서 무대와 무대 뒤, 사람들이 연기해야 하는 배역이 고정적이지 않고 변화하고 있다는 사실을 작은 사회 단위의 변화와 발전상을 추적하는 것을 통해 알 수 있다고 말한다. 그는 또 무대 뒤에 속했던 부엌이나, 경비 공간 등이 점차 무대 공간으로 기능하고, 오페라 리허설 관람 등 전통적으로 무대 뒤로 여겨졌던 영역들이 무대 앞으로 나오는 현상을 추적할 필요가 있다고 언급한다.


고프만의 관점에서 볼 때 특별히 흥미로운 것은 브이로그의 인기이다. 브이로그는 일상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따라가는 관찰 카메라 콘텐츠를 말한다. 흥미로운 점은 브이로그라는 장르가 연예인과 같은 공인에게서와 일반 사용자에게 매우 다른 의미의 무대로 활용된다는 것이다. 먼저 연예인의 경우 브이로그는 두 가지 의미로 활용될 수 있는데 먼저는 무대 뒤의 노출이다. 연예인이라는 직업은 다양한 직업 중에서도 인상 관리, 이미지 관리가 특히 중시되는 직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팬들은 스타의 관리된 모습 외에도, 무대 뒤의 모습을 보고 싶어 한다. 무대 뒤의 꾸미지 않은 모습을 보는 것은 팬으로 하여금 연예인과  실제로 가까워졌다고 느끼게 한다. 브이로그, V앱, SNS 등은 바로 이 무대 뒤를 공식적으로 노출할 수 있는 공간인 것이다. 흠모하는 연예인의 일상을 가까이서 지켜보는 행위는 팬들이 더 높은 충성도를 가지게 만든다.

V라이브를 통해 무대 후면을 공유하는 스타들

  

바로 이 지점에서 브이로그, V앱, SNS라는 공간은 또 다시 무대 앞이 된다. 팬을 관리하는 것은 결국 연예인의 이미지를 사는 사람을 늘리는 것, 수요자를 관리하는 것이라고도 이해할 수 있다. 어느 순간 연예인들은  ‘무대 뒤’에서 기대되는 모습을 연기하는 무대 앞에 서게 되는 것이다. <나 혼자 산다>와 같은 프로그램을 통해 원하는 이미지를 강화하고자 하는 출연자들의 시도도 유사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팬들이 ‘무대 뒤’라고 여기고 열광했던 모습이 무너졌을 때 팬들은 무대 앞의 모습이 무너졌을 때 보다 더 크게 실망하게 된다. 대쵸적인 예가 '승리 사태'다. 그는 <나 혼자 산다>에 출연해 '건실한 사업가'의 이미지를  얻었으나, 이내 이미지와 정반대되는 사태가 벌어지면서 몰락했다. 예상되는'무대 뒤' 모습의 붕괴로 더 큰 파장을 일으킨 사례라고 할 수 있다.

한편, 일반 사용자에게 V로그나 SNS는 없던 무대 공간이 생기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즉, 일상에서 이미 정해져 있는 배역을 연기할 공간 외에 원하는 배역을 만들어낼 수 있는 공간이 생기는 것이다. 실제로 최근 연구 중 인터뷰에서 만난 한 20대 SNS 사용자는 SNS를 통해 제2, 제3의 페르소나를 만들고 그에 몰입하는 것에 흥미를 느낀다고 이야기 했다. 이처럼 고프만의 이론은 특별히 연기할 무대가 풍부해지고, 가치와 배역의 개수도 늘어난 현대사회를 풍성하게 이해하고, 즐길 수 있도록 도와주는 특별한 관점이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누군가의 브이로그를 보게 된다면, 저게 진짜인지 아닌지 생각하기보다, 좋아요와 구독을 누르는 것으로 누군가의 연극에 협력해 보면 어떨까.




참고문헌

어빙 고프만. 2016. 자아 연출의 사회학. 현암사. 진수미 역.

Eliasoph, Nina. 1990. "Political Culture and the Presentation of a Political Self." Theory and Society 19: 465-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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