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길에서 만난 소소한 그림들

나의 산책길 이야기

by 샛별


내가 살고 있는 마을은 비교적 도시의 외곽에 위치해 있다. 두 개 시의 경계지역이라 덜 발달되어 있고 아직은 시골스러운 분위기가 남아 있는 곳이다. 그마저도 최근 들어서는 개발의 바람이 여기까지 미처 와서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기는 하지만.


산책길에는 제법 큰 성당 묘지가 자리 잡고 있다. 처음 이곳으로 이사 왔을 때에는 묘지 사이로 난 길을 따라 산책을 하려면 인적이 드문 곳이라 조금은 무섭기도 했었다. 점차 사는 이들이 많아지고, 근처의 산과 약수터가 알려지고 사람들의 발길이 많아지면서 그러한 무서움은 서서히 사라지게 되었고 자주 그곳을 반려견과 함께 산책하다 보니 사계절의 그곳이 점차 편안해지고 주변을 자세히 둘러보게 되었다. 숲으로 가는 길은 두 갈래 길이다. 성당 묘지를 관통해 가는 길, 그리고 우리 동네 백사실 계곡이라고 친구가 이름 붙인 숲으로 난 오솔길. 길 옆에는 생강나무며, 산벚나무, 후박나무 등이 줄지어 서있고 잘 가꾸어진 무덤이 서너 개, 조용한 길이다.

숲으로 가는 길


겨울의 산책길은 넉넉함이 있다. 나무들이 무성한 여름에는 느껴보지 못하는 여유로움. 버려야 할 것을 버리고 봄을 준비하는 나무들의 벗은 몸은 근육질의 멋진 청년 같다. 나이 든 나무는 나이 든 나무대로 어린 나무들은 어린 대로 자신만의 얼굴을 지닌 나무들. 겨우내 그들을 보다 보면 봄이 가까워졌을 때 그들이 준비한 겨울의 이야기를 함께 하게 된다. 겨울 숲은 고요하다. 바람이 세차게 불어도.


가을날 떨어지는 낙엽을 밟으며 걷는 그 길은 따뜻하다. 모든 색이 자연 속에서 가장 부드러운 색감을 드러낸다. 바람이 불 때 그곳에 가만히 서있으면 나뭇잎이 떨어지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우수수 낙엽이 진다는 표현을 실감하는 순간이다.


봄이면 그곳에는 많은 꽃들이 핀다. 꽃마리, 진달래, 개나리, 철쭉, 솜방망이, 조개풀, 하늘하늘 어여쁜 노란 미나리아재비며 할미꽃, 남산제비꽃 등이 지천이다. 들꽃을 좋아하는 나는 폰의 카메라로 철 따라 피는 꽃의 어여쁜 모습을 담거나 냄새 맡느라 산책길은 더할 나위 없이 즐겁고 행복한 순간들이다.

남산제비꽃의 향기를 아는가? 아마도 물을 좋아하는 이 꽃은 아침 녘에만 그 향기를 맡기에 좋다. 최고의 향기다. 나는 젖은 땅에 엎드려 그 향기를 맘껏 들이킨다.

남산제비꽃


숲으로 가는 길의 층층나무


무덤가에 고개 숙인 할미꽃은 어여쁘다. 겉에 드러난 솜털로 덮인 자줏빛 꽃의 얼굴 속 노란 꽃술. 가까이서 수줍게 고개 숙인 그 얼굴을 보면 정말 예쁘다. 두 딸에게 버림받고 가난한 막내딸을 찾아가다 막내딸 집이 보이는 언덕에서 숨을 거둔 할머니가 묻힌 곳에서 피어났다는 전설 속 할미꽃은 꽃이 지고 나면 가련한 이야기 속 할머니처럼 하얀 백발을 휘날리며 어린 시절의 기억 속으로 나를 안내한다.



왜 그렇게 변두리에 집을 샀느냐며 이야기하던 부동산에 밝던 남편의 동료는 이미 땅속 사람이 되었다. 죽은 자들이 쉬고 있는 곳을 지나며 비석에 새겨진 그들의 이름들을 자주 보다 보니 남편의 동료처럼, 그들이 나의 지인인 것 같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늘 익숙한 그 길을 걷는 시간은 행복한 시간이다. 누군가를 떠올리기도 하고, 그리워하기도 하고, 자연의 아름다움에 상처를 치유받기도 하고...

이끼와 함께 땅에 바짝 붙어 핀 민들레.


새들도 숲에서는 배운다고 한다. 어린 새들도 숲에서 작은 먹이를 쫓고 잡는 법을 배우고 날개를 펴고 접는 법을 배우고, 나뭇가지 사이를 나는 법을 배운다고 한다. 숲의 사계를 들여다보다 보면 피어야 할 때를 알고 매년 피어나는 꽃들이 경이롭다. 나만이 안다고 생각하는 그 길의 한편에서 매일매일 피어나는 꽃들의 성장을 보는 것은 큰 기쁨이다. 나는 그 속에서 자연의 이치를 배우고 비우는 법을 배운다. 나는 그 길을 좋아한다.



어머니를 보내고 그 길을 걷던 어느 날이었다. 꽤 나이 든 어른이 무덤가에서 나뭇잎을 치우고 정리하고는 한참을 그 옆에 앉아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 모습을 멀리서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엄마가 그리웠다. 그 길에서..


무덤가에서- 어머니를 그리며


살아서 못한

가슴 아픈 이야기를

봉긋한 봉분 가

풀을 뜯으며 나눈다


세상일 바쁘다

하룻밤 잠만 자고 훌쩍 떠나는

야속한 자식

늘 지치도록 기다리시던

어머니


기다리다 지쳐

누우신 산허리

멧비둘기 구구

구슬피 우는 곳


봄은 오는데

작년 그 가지에도 새순은 돋고

무덤가 풀들도 새로 돋는데

어머니

추억으로만 살아나신다.


어머니 내 사랑하는 어머니

오늘

말 없으신 그 둥근 가슴에 기대어

하늘을 본다.




Main Photo by Andrew Neel on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