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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샛별 Dec 09. 2021

 돌밭에도 꽃들은 자라고

시간이 흐르면




호텔에서도 꽃이 보고 싶어서 해외여행을 가면서도 비닐 꽃병을 챙겨 간다는 사람이 쓴 글을 읽었다. 꼭 필요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꽃을 사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그녀에게 힘껏 박수 보내고 싶은 나는 하우스 주변을 빛낼 꽃을 고르러 화원에 간다.


꽃이 주변에 빛나는 하우스라!  

개나리며 진달래꽃, 고추냉이 꽃 작은 가지라도 꺾어다 주길 즐겨하는 남편도 좋아할 것이다.


그런 꿈을 꾸었었다.

그리고 꽃들을 심었었다.




"뱀이다!"


어느 늦여름 날, 어제 옮겨 심은 보랏빛  매발톱꽃 여린 모종들을 살피러 가다 돌담 위 바위에 앉아 볕을 쪼이고 있는 뱀과 조우했다. 처음에는 너무 놀라 버럭 소리를 질렀지만 잠시 후 호기심에 어떤 녀석인가 조금 더 살펴보려는 순간 내 소리에 오히려 더 놀라 뱀은 스르르 돌담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 이후 놀란 가슴은 며칠 동안 돌담 가까이에서 모종을 살펴보기보다 먼발치서 꽃들을 바라보게 했다. 어쩌면 녀석은  원래 그곳에 살던 뱀이니 또 만나게 될지도 모를 일이기 때문이었다.

내가 꽃을 심은 곳은 바로 그곳. 산을 깎아 만든 하우스의 돌담 주변, 또는 그 언덕 위 돌 많은 땅이다. 흙보다 골라내어야 할 돌이 많은 곳. 잡초가 무성한 곳.


첫해 돌담 언덕 하우스 귀퉁이 이곳저곳에 꽃들을 심었었다. 척박한 땅에 심은 꽃들은 싹도 잘 나지 않았고, 그나마 난 것들도 심기만 했을 뿐 떠나 있는 날들이 많다 보니 자주 돌보아 주지 못해서 성적이 좋지 못했다. 백일홍은 몇 송이뿐이고, 스피아민트는 아주 작고 여리게 몇 그루만, 그나마 샤스타데이지가 꽤 여러 그루 자라나 가을이 되니  제법 푸르게 품을 키웠지만 한 겨울의 추위를 거쳐야만 피는 꽃이라 그저 잡초 무리인 듯 보였다.


올봄 다시 꽃씨를 심었다. 추운 곳 이어서 였던지 또는 파종시기를 잘 맞추지 못해서였던지 새싹이 잘 나지 않았다. 몇 번이나 다시 씨앗을 심어야 했다. 어느 날은 심어놓은 땅에 뾰족이 줄 맞춰 올라온 새싹을 돌보아 주었지만 며칠 후 더 자란 다음에 보니 내가 심은 꽃이 아니라 잡초인 경우도 있었다. 잡초 씨앗들은 끝도 없이 시간을 두고 자꾸만 나와서 새싹을 기다리는 마음을 흔들어 놓곤 했다. 어린 시절 집이나 학교의 꽃밭에서는 다 자란 꽃만 보았지 새싹일 때부터 눈여겨보지 않은 탓이다. 그 흔하고 좋아했던 채송화 조차도 다시 새싹을 눈여겨보아야 했다.


꽃밭에서 키우는 꽃들은 잡초보다 약하다.  

이 년 차 샤스타데이지를 여기저기 포기를 나누어 심었다. 초봄에 옮겨 심어 잡초들 사이에서 더디게만 자라던 데이지가 가여워 둘레에 풀로 멀칭을 두껍게 해 주고 부지런히 물을 주었다. 어느 날부터인가 기운을 얻은 꽃은 힘을 내어 부쩍 자라더니 초여름부터 꽤 오래 하우스를 빛나게 해주는 예쁜 하얀 꽃길을 만들어주었다. 몇 송이 이기는 했지만 메리골드도  잡초 속에서 이곳저곳 자라서 어느 날 꽃을 피웠다. 스피아민트 역시 첫해는 작은 가지로만 남아 있더니 첫겨울을 지내고 여름이 되며 더 굵어지고 곁가지를 내었다. 부지런히 잘라 옮겨주었더니 제법 작은 무리를 이루었다. 추운 겨울이 지나고 내년이 되면 보랏빛 예쁜 꽃을 피워 낼 것이다.

백일홍은 몇 그루 되지는 않지만 키가 크게 자라서 넘어진 채로도 곧게 머리를 들고 아주 굵은 꽃송이를 내밀어 늦가을까지 하우스를 환하게 비춰주었다.

금잔화는 일 미터 가까이 큰 키를 키웠다. 참 많은 가지를 내어서 황금빛 꽃, 연 노란빛 꽃을 피워냈다. 술잔 모양의 꽃이 자꾸자꾸 피어나 옮겨 심을 때의 여릿한 모습은 어디에도 없다. 백일홍과 어우러져 핀 꽃이 지고 나면 생긴 씨앗들을 가득 모았다. 내년에는 더 잘 키워야지.  종이를 접어 만든 상자 안에 씨앗들이 빼곡히 쌓였다.

채송화도 한련화도 늦게나마 여름을 지나며 더욱 화사한 모습으로 하우스 입구를 지켜주었다.

잡초가 무성해서 여름이 가까워지면 접근하기가 어렵던 언덕에는 풀들을 걷어내고 골을 파서 백합 구근들을 심었다. 아들과 한 달의 시간을 도시에서 보내고 여름 더위의 끝자락에 만난 백합은 절정이 지난 즈음이라 했지만 아직도 예쁜 모습으로 피어있었다.

언덕 아래 평평한 땅 한구석에 잡초를 뽑고 심어둔 코스모스도 작은 무리여도 잘 자라주었다.

한그루뿐인 얼굴이 아주 큰 해바라기가 익어 고개 숙인 채 하우스 입구에서 인사를 한다.


하우스를 지켜주는 입구의 작은 한련화 꽃밭과  해바라기


돌담 언덕 위에도 꽃들은 자라고


돌밭 한 귀퉁이의 채송화와 메리골드


이렇게 제대로 자라는지 잘 살펴 주지도 못했던 메마른 땅에서 자란 나의 꽃들은 시골 생활에 젖어들지 못한 내가 버리지 못하는, 나 자신을 표현하고 위로하는 나 나름의 인권선언이었던 셈이다. 그저 노동이 아니라 즐길 수 있는 노동을 하며 살고 싶다는...

남편은 그걸 알고 있을까?




'말이 씨앗이 된다, 고토다마'란 공감의 기술님 글을 읽다가 불현듯 이전 내가 썼던 글이 생각났었다. 긍정의 말이 가져다주는 마법이 내게도 있었구나 하고.

다시 사는 시골에서의 삶을 어떻게 살 것인가를 꿈꾸며 썼던 글을 다시 읽어본다.


새로 시작한 삶은 익숙지 않은 길이어서 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내게 다가온다. 조금씩 천천히 받아들여 가기로 마음먹는다. 농사는 서툰 나지만 하우스 주변에  심을 꽃들과 심고 피는 시기 등을 공부하면서 힘든 일의 무게를 덜어 낼 꿈을 꾼다. 여기에는 해바라기를, 여기에는 한련과 코스모스, 아! 금잔화도 심어야지.. 멀리서 바라보면 꽃이 피어있는 하우스를 만들어 야지.

- '다시 사는 고향이 첫사랑과 닮았다'에서


해바라기도, 한련화도, 코스모스도, 금잔화도... 비록 몇 송이지만 모두들 잘 자라나고 있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들은 묵묵히 그 품들을 키우며 희미할지라도 꿈꾸던 모습으로 모두들 잘들 자라 주었다.

시골살이가 어렵다고, 무릎이 아프다고, 내가 없어지는 것만 같다고 불평하던 나의 시간들 동안 그들은 그저 묵묵히 자라고 있었더라.


이 나이에 들어서도 필요한 것들 중 많은 것들은 시간이 가져다주는 것임을 잊고 산다. 그래서 가끔은 조바심을 내곤 한다.

찬찬히 돌아보니 시간이 지나야 익어가는 것들이 바싹 나의 눈앞에 다가와  있었다.

여유를 지니고 주변을 돌아보았더라면.


어느 순간 그들이 내 눈을 뜨게 해 준다.


저 꽃들처럼 나도 나날이 단단해져 가고 있는 것인가?




Main photo :   Cassie Smart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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