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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샛별 Apr 21. 2022

어느 시골의 유목민

몸과 마음의 균형 잡기




봄은 즐길 수 있는 시간이 아니라 일 년 중 가장 바쁜 시즌이다. 하우스 안에서 마주하는 작물의 꽃은 감상의 대상이 아니라 씨름해야 하는 대상이다. 살랑거리며 열린 문틈 새로 흔들리는 저 푸른 잎들은 우리의 손길을 기다리는 일들이 흔들어 대는 손이다.


농사일을 거들기 시작하면서 봄이 시작될 즈음이면 시골에 내려온다. 도시의 봄꽃(벚꽃, 개나리, 진달래)이 막 피어나기 시작할  이곳의 일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일에 지쳐 잠시 도시로 돌아 올 즈음이면 그제야 이곳에는 봄꽃들이 피어나기 시작했으므로 결국 몇 년째 봄꽃들과 제대로 만나지 못했다.

올해는 늦게까지 추워서인지 농사일이 이 주정도 늦게 시작되었다.  년째 농사일을 거들다 보니 할 수 있는 일이 제법 늘어서 꽃이나 나물을 따거나 잎을 수확하고 포장하는 일들이 제법 손에 익었다. 손에 익은 일만큼 몸이 따라 준다면 얼마나 좋으랴마는 코로나로 적게 움직인 몸뚱이는 여기저기가 삐그덕 , 일하는 것이 힘에 부쳤다. 열흘을 못 채우고 아픈 무릎을 감싸 안고 도시로 다시 돌아왔다. 시골에서는 산재해 있는 해야 할 일들을 보면서 마음 편히 쉴 수가 없는 탓이다.


 "쉬어야 해! "

아주 오랫동안 머리 위주로 살았다. 몸의 소중함은 무지하게 머리를 운반하는 도구쯤으로만 여기고 살았다고나 할까.

젊은 날에는 아픈 몸이라잠시 쉬고 나면 곧 회복되었기에  몸의 고마움을 느끼기보다 그냥 당연한 거였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어느 때부터인가 여기저기서 고장 난 신호음이 연이어 들려오고 회복은 느리기만 하다.

 쉬어도 회복되지 않는 날들을 만났을 때, 부러졌던 팔이 의학적으로 붙었음에도 마음껏 들어 올릴 수가 없음을 알게 되었을 때, 어느 날 불현듯 허리가 아파서 일어서지도 못할 만큼 심각한 그런 날들을 만나고서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내 정신을 담은 몸을 다시 돌아보게 되었고 고마움을 표하기 시작했다

아침마다 30분가량 무리하지 않은 작은 운동을 조용한 음악을 벗 삼아서 하게 되었다. 그 무엇보다도 하루를 시작하는 순간부터 먼저 몸을 위하는 일로 시작하고 싶었다. 하루를 견디게 해 줄 고마운 존재들을 살피고 어루만지며 고마움을 표하고 싶었.  시간이 몇 개월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랜만의  일은 큰 부담이었던가 보다. 




터미널에 내려 집으로 가는 양옆으로 흐드러지게 핀 벚꽃 송이들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얼마 만에 제대로 바라보는 벚꽃인지. 창가에 기대어 앉아, 물끄러미 늦은 절기 덕에 찬란한 봄의 빛을 맘껏 바라보았다. 바라만 보아도 마음에 분홍 꽃물이 드는 듯하다.


아픈 몸을 이끌고 집에 돌아와 책상 앞에 앉아 가장 먼저 찾은 것은 나의 필기구함이다. 작은 몽당연필들과 색연필, 펜들이 그득히 담긴 나의 도구함.

몸의 근육은 마음 근육보다 빨리 적응해가는지 몸은 조금씩 숙달되어 가는데 비해, 초창기보다 험한 일의 양이 줄었음에도 불구하고 앞에 서면 처음 일을 배울 때 보다도 더 두려움이 미리 앞에 다가선다. 용감하게 농촌의 일상 속으로 걸어 들어가려면 내게 아직 더 많은 마음 단련이 필요한 모양이다. 

일찍 잠자리에 들어야만 하루를 소화해 낼 수 있기에 멀리해야만 했던 책이며 필기구가 너무도 그립고 갈증 나는 시간들이었다. 

이제 돌아왔구나. 내가 좋아하는 자리에.

며칠 만에 만져보는 필기구를 음미하듯 만지작 대다 보니 종이와 연필만 있으면 가능한 모험의 세계, 연필의 담백한 세계를 사랑해왔다는 연 필광이라던 작가가 생각났다.

나의 필기구함 속에 모여있는 작은 몽당연필들. 작은 연필 하나도 볼펜대에 끼워서 마지막까지 아껴 쓰던 오래된 습관을 버리지 못하고 모아두었던 몽당연필들은, 연필 수집광 이라던 그녀의 책에서 알게 된 연필 깎지로 새로 살아난 터였다. 


오랜만에 그녀의 책을 다시금 펼쳐 들었다.

"우리는 사는 게 아니라 때론 살아지기도 한다."

연필 끝에서 나온 문장의 힘으로 앞으로 나아간다. 희망이 매정하게 등을 보이며 내 발끝과 반대 방향으로 가는 것을 보는 일은 늘 가슴을 후벼 판다. 다른 이의 글이라는 뗏목에라도 옮겨 타야 하는 순간, 아스라한 아픔이 묻어 있는 문장들을 따라 적는다. 연필 끝에서 나온 문장의 힘으로 앞으로 나아간다.

-연필이 사각거리는 순간 다시 소중한 것들이 말을 건다, 정희재


고단한 몸을 끌고 돌아와서 무언가를 하기에는 너무 지쳐 초저녁부터 잠자리에 드는 삶이 계속되다 보 몸에 제자리를 내어주어 처음엔  듯 던 머리가 갈급증을 호소한다. 머리를 쓰고 싶어 지는 순간이다. 책을 읽고 글을 쓰고... 마치 도시에 두고 온 편리한 일상들처럼 몸에 익은 습관들이 스멀스멀 고개를 들고 나는 마냥 활자가 그립다. 그러나 마음뿐 그냥 잠드는 날이 계속되다 보면 마음에 서늘한 바람이 분다.


자연에 있다고 해서 저절로 치유가 되는 건 아니다. 만날 준비가 있어야 한다. 판화가 이철수 님의 삶을 보여주던 프로그램에서 작가가 한 말이었던가. 낮에는 농부로 논과 밭에서 일하고 밤이면 자연에서 배운 이치를 글과 판화를 새기며 열심히 사는 삶. 일찍이 도시의 삶을 버리고 농촌에서 만족하며 산다는 작가다. 그의 삶은 몸과 마음의 균형이  이루어져서인가 그의 글도 그림도 마음에 다가와 안기는 것들이어서 마음에 큰 평화를 준다. 참 좋다. 시골에서 나도 그런 평화를 얻고 싶었건만.


주변의 사람들을 돌아보면 내가 하는 일이라는 것은 너무도 작은 것들 일 것이다. 모두들 무거운 노동의 시간들을 열심히, 정말 열심히 사신다.

아침 이른 시간부터 시작된 노동에 지친 몸을 한잔 술로 달래고 일찍 잠드는 삶. 그들에게 삶의 즐거움은 무엇일까? 무엇을 위하여 그리 열심히 사는지 생각해 볼 필요조차 없는 만족한 삶인가? 그렇게 농사꾼의 삶을 당연하게 살고 있는 남편을 가끔 멀리서 바라보곤 한다.

! 낯설다.


시골생활이 주는 일의 무게를 처음 실감한 것은 한 주머니의 콩을 만들기 위해 거쳐야 하는 수많은 일들을 보고서였다. 씨앗을 심고 가꾸고 풀 매고 콩꼬투리를 얻고 털고,.. 털어도 잘 빠져나오지 않은 남은 쥐눈이콩을 일일이 까던 콩깍지에서 나오는 작은 가시 같은 털들, 온전한 콩만을 골라내는 일까지, 한 줌 콩 얻기도 이리 힘든 시간이 필요한 거구나.

늦은 가을 밤늦게까지 콩을 고르며 생각했었다. 나는 주문만 하면 봉지째 잘 담긴 콩을 받아 들던 마음으로, 시골에서 조용한 가운데서 하루를 사는 것을 기대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더욱이 작물을 팔기 위해 해야 하는 더 큰 수고로움의 터에서 돌아보면, 나를 위하여 집 문 앞까지 잘 정돈된 채소며 과일 보따리들이 고맙다.

그러나 감사한 마음과는 달리 그 일련의 과정들을 느끼고 보며 아이러니하게도 고단한 날들을 사는 두려워한다. 

같이 살았으면.. 하는 남편의 바람과는 달리 적게 일하고 소소하고 여유로운 시골의 꿈을 꾸던 나는 몸이 힘들어지는 봄이 돌아오면 계절병처럼 삶을 저울질하게 된다.  

도시에서만 외로운 게 아니다. 시골의 삶에도 외로움이 산재해 있고 도시에서도 사랑하며 배울 게 있듯이 시골살이에서도 사랑해야 할 것 배울 것들이 많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시골에서의 삶도 균형이 있어야 한다. 몸의 쓸모만큼 머리를 쓰는 시간이 필요하다. 더욱이 건강을 충분히 지탱할 수 있는 나이가 아니라면 몸과 머리의 균형을 잡을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하지만 아직도 몸의 무게에 휘둘리어 휘청대며 사는 삶 한가운데 내가 있다.


(도시의 집에서)

좀처럼 고이지 않는 글의 조각들을 기다리던 시간들도, 고이지 않는 글들을 긁어모으는 순간일지라도 머리와 몸의 균형을 잡느라 허둥대는 이 시간이 너무도 소중하다.

연필을 쇼핑했다. 여러 가지 경도를 나타내는 기호들이 적힌 파버카스텔 시리즈. 때론 그림을 그리고, 때론 심이 닳도록 글을 쓸 날을 그리며 도시에서 쟁취한 소중한 나의 전리품을 받고 기뻐한다.

평생을 도달하지 못할 것 같은 기준을 품고 살더라도 만족은 가장 가까운 곳에서 찾아야 한다.

사각사각 닳아진 파버카스텔 연필의 길이만큼 내게 평화가  자리잡기를.

희망이 부질없고 너무 거창해 보일 때에는 너무 욕심내지 말자고 스스로를 다독인다. 그럴 때는 그저 균형감각만 되찾아도 된다. 빛과 어둠, 선과 악에 대한 균형감각만 잃지 않아도 쓰러지지 않는다.

 -정희재. 도시에서 살며 사랑하며 배우며, 정희재

그녀에게서 위로를 얻는다. 시골에서 돌아와 늘 떠나고 싶었던 도시에서.




일주일을 쉬고 돌아온 시골에서 활짝 피어나고 있는 봄꽃들과 만났다.  온통 꽃천지인 낯선 풍경이 새롭다. 점심식사 후 하우스 앞 돌에 걸터앉아 환하게 핀 벚나무를 바라보며 양치질을 한다. 어디선가 근처에서 첫 휘파람새 소리를 들었다. 도시에서 처음 봄 야생화를 만났을 때 느꼈던 기쁜 마음으로 새소리에 귀 기울인다.


바람이 세차게  불어도 힘차게 봄이 무르익고 있다.  



Photo : 백록담에서 만난 새들(핸드폰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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