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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샛별 Sep 27. 2023

우울과 친구 하기

담과 울타리






우울이 들어 못 들던 어느 날 밤 명상앱을 켰다. 오늘의 명상은 울타리를 치는 명상이다. 내 마음 주변에 조금씩 울타리를 넓혀 그 안에 함께 하고픈 사람을 데려다 두는 상상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우울이 휘감고 있는 이즈음의 나는 데려다 둘 사람이 하나 둘 줄고 있다. 속이 훤히 비치는 살얼음 같아서 여려진 마음이 다칠까 봐 사람은 울타리 밖에 옮겨두고 저 사람은 울타리 밖에서 기다리게 한다. 기다리라 둔 사람들은 모두 좋아하던 사람들 이건만 그들을 그대로 둔 채로 울타리 안에 또 작은 담을 하나 더 쌓고 웅크리고 있는 자신을 본다.


담은 고형의 물질로 단절하는 것이다.

담과 울타리의 차이는 밖에서 안을 들여다볼 여유, 또한 안에서 밖을 내어다  수 있는 여유에 있다. 내 것만이 소중한, 이기심이 전부가 아닌 타인을 돌아볼 수 있는 마음의 여유와 여유롭게 숨 쉴 공기의 흐름을 허락하는 데 있다. 

울타리에는 성근 틈이 존재한다. 돌 울타리, 시멘트 울타리란 말은 없다. 돌로 만들어졌어도 제주의 돌담은 세찬 바람 때문에 게 뿌리내리지 못하는 식물들을  보호할 수 있도록, 바람의 길은 열어 두었으되 차가움은 막아준다. 가난한 살림에는 허름한 울타리담조차 없었다면 살림이 나은 옛 어른들이 쌓은 담은 기와를 얹은 흙담이거나 돌담이었다.  담은 바람의 길을 열어둔 제주의 돌담처럼, 자신들의 카테고리를 하였으되 높이는 사람의 키와 비슷하게 넘겨다 볼 수 있을 만큼 나지막하다.  안에 사는 이와 지나는 사람이 서로의 눈길을 느낄 수 있을 만큼의 높이로 안온한 모습이다. 그  너머 안과 밖으눈길과 바람이 여유롭게 넘나드는 옛 담은 울타리에 가깝다. 


정겨운 울타리의 기억 하나, 유년의 시골집을 생각한다.  울타리는 싸리를 베어 말려서 엮어 땅에 심듯 만든 것이었다. 마치 살아있는 나무처럼 색감이 그대로 살아있는 얼기설기 엮어진 울타리를 타고 강낭콩 넝쿨 초록빛 잎새 사이로 주홍빛 꽃들이 피어있거나, 분홍이나 남색의 나팔꽃이 드문드문 피어있던 울타리의 모습그야말로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다. 바라만 보아도 좋은, 어느 것 하나 튀지 않고  몸인 듯 어우러지던 풍경이었다. 지금은 볼 수 없는 그 울타리를 강원도 꽤 깊은 산속에서 발견했을 때의 기쁨이란...


도시의 삶 속에서 자주 사람 사이의 높은 담을 느낄 때가 있다. 아니 나 역시도 담을 쌓기도 한다. 그 시간은 무겁고 쓸쓸하다.  무거움이 싫어서 우울의 시간이 길어지지 않도록 혼자의 시간으로 돌아선다.


혼자 있는 시간을 사랑한다. 상처받거나 마음 다친 일이 있을 때 혼자의 시간은 단단히 담쌓지 않고, 바람 드나드는 울타리를 정비하는 일이 된다.

함께 나누어야 할,  자유롭고 편안하게 서로를 받아줄 공간을 가꾸는 힘을 내게 준다. 우울을 친구 삼아 스스로를 치유하는 시간이다.


바쁠 때 우리는 돌아볼 여유가 없다. 심하게 외로울 때는 위로조차 받아들일 여유가 없다. 그 시간이 길어져 많은 것들에 등 돌리고 무너질 듯할 때, 그때가 마음밭을 매어줄 때다.

지금 나는 담을 치고 문도 닫고 있다.

어떻게 해야 할까.

낯선 곳에 혼자 나를 버려두는 꿈을 꾼다. 보다 객관적으로 나를 바라보는 마음이 저 담을 부수는 힘을 전해 줄 것이. 안이 바라다 보여 그 너머로 웃으며 서로를 마주 보고 안부 물을 그 시간을 다시 찾을 수 있게 할 것이다.


너와 나 서로 꽃 같은 우리들을 보호해 주는 울타리.

안온한  너머의 세상을 부드러운 눈으로 넌지시 바라보게 하는 울타리.

잠시 나를 쉬게 하는 울타리.

따뜻한 어깨를 잘 내어주던 나는 지금 어디에 숨어 있는가?

어깨를 말없이 내어주던 나를 버리지 않기를. 사랑을 그러안기를... 울타리를 넓히야지.


우울의 담 안에서  팔을 쭉 뻗어 나는 스스로의  어깨를 조용히... 다정하게 그러안으며 토닥토닥 살갑게 두드려 다. 

아직은, 조금 더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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