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시간 그리고 나의 이야기2
2019년, 나는 다시 2차 종합병원 접종실로 복귀했다.
그 무렵 아버지는 충대병원에서 한 달, 혹은 두 달에 한 번씩 이뇨제를 포함한 간경화 약을 꾸준히 복용하고 계셨다.
오랜 세월 간경화를 앓으시면서도 간암이나 큰 합병증 없이 지내오신 것이 그저 놀라웠다.
그런 평온이 오래가길 바랐지만, 인생은 늘 예기치 못한 순간에 우리를 흔들어 놓는다.
어느 날 아버지에게서 다급한 전화가 걸려왔다.
“배가 너무 아프고, 복수가 심하게 찼다.”
급히 병원으로 향한 아버지는 복부 CT를 찍으셨고, 배꼽 아래 장이 썩어 문합술이 필요하다는 진단을 받으셨다.
의사는 전신마취와 심폐기능 저하, 신장 손상, 사망 가능성까지 조심스럽게 설명했다.
서명해야 하는 수술동의서 위에 손을 올렸을 때, 만감이 교차했다.그때 아빠의 보호자로써
나는 처음으로 아빠의 생명이 얼마나 아슬아슬한 선 위에 서 있는지 실감했다.
아버지가 수술실로 들어가실 때, 나는 복도 한켠에서 한참을 서 있었다.
의사들의 분주한 발소리 사이로 감사와 불안.걱정이 교차했다.
수술실 대기판을 바라보고 있을때 교수님이
아빠수술 상황체크하러 오셨다.
수술을 위해 응급 협진으로 빠르게 진행하게되었음을 설명해주셨다.
마음 써주심도
수술과 직접 관련은 없지만 소화기내과 주치의로서 끝까지 신경 써주신 김석현교수님께 존경심이 일었다.
그리고 마음 한켠에서는 ‘이번에도 버텨주실까’ 하는 두려움이 밀려왔다.
수술 다음 날, 아버지는 중환자실로 내려가셨다.
혈압은 불안정했고, 소변이 잘 나오지 않아 집중치료가 필요했다.
여러 번의 수혈과 약물치료 끝에, 아버지는 결국 다시 일어나셨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기적은 멀리서 오는 것이 아니라, 하루를 더 버텨내는 그 자체임을.
퇴원 후에도 평탄한 날은 오래가지 않았다.
혼자 계시던 아버지는 점점 외로움을 느끼셨는지, 쓰레기를 모으기 시작하셨다.
집안은 발 디딜 틈이 없을 만큼 어지러워졌고, 결국 2022년에는 장기요양등급을 받으셔서 요양보호사의 돌봄을 받게 되었다.
직장과 아이들, 그리고 아버지의 병간호를 병행하는 일은 쉽지 않았지만,
그 도움 덕분에 나는 조금이나마 숨을 돌릴 수 있었다.
그 후로도 아버지는 몇 차례 낙상으로 다치셨고,
술을 드신 채 재판이나 진료에 가지 못하신 적도 있었다.명예훼손과 영업방해로 고소당하신 아빠셨다. 아빠를모시고 판결하는 법원에 모시고 간날도 엊그제처럼 또럿하다.
하지만 해마다 복수천자를 받으며, 굳어져 가는 간을 이끌고 또 한 번의 계절을 견뎌내셨다.
그렇게 아버지는 자신의 몸이 허락하는 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살아내셨다.
2024년 어느 날, 아버지는 갑자기 나를 “마누라”라고 부르며 웃으셨다.
응급실에서 검사한 결과, 암모니아 수치가 높아져 간성혼수 상태였다.듀파락관장을 해서 암모니아수치를 떨어뜨리는게 급선무였다.
나는 아버지 곁에서 기저귀를 갈고, 대변을 치웠다.술도못끊고 자기관리가 전혀안되는 아빠에게 화가 나기도 했고, 안쓰럽기도 했다.
의식이 오락가락하는 아버지를 바라보며, 나는 부모를 돌본다는 것이 얼마나 복합적인 감정의 일인지 새삼 깨달았다.
입원 생활은 반복되었다.
폐기능 저하, 천식, 위궤양….
밤마다 복통으로 깨어나던 아버지는 그럼에도 가족이 곁에 있으면 “병원생활이 좋다”며 웃으셨다.
그당시 동생은 아이 셋을, 나는 두 아이를 돌보며 직장을 다니며 엄마.동생내가 돌아가며 아빠 간병을 했다.
그 시절을 돌아보면 신기하게도 그 모든 시간을 버텨냈다.
이제 와 생각하면, 그때의 하루하루가 우리 가족에게는 작은 기적이었다.
퇴원 무렵, 아버지는 더 이상 집에서 생활하기 어려운 상태가 되셨다.
국가유공자이신 아버지는 보훈요양원에 입소하셨고,
그곳에서 지금까지 돌봄을 받으시고 한달이나 두달에 한번씩 김석현교수님께 20개가 넘는
약을 처방받아 드신다.
이제는 예전보다 말수도 줄고, 눈빛도 한결 부드러워졌다.
세월이 흘러 힘이 빠지신 그 모습에서, 나는 오히려 평안을 느낀다.
돌아보면, 아버지는 내 인생의 스승이었다.
그분의 병과 회복, 그리고 다시 병으로 향하는 순환 속에서
나는 인내를 배우고, 말로하는 사랑이 아니라 손과발이되어주는 진짜사랑을 배웠다.
이제 아버지를 바라보는 내 마음은 원망이 아니라 연민이고,
무거운 책임감이 아니라 감사함이다.
아버지가 계셨기에 나는 어둔 터널 속에서도 빛을 보았다.
그 빛이 나를 이끌었고,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사랑하는 아버지,
남은 시간 동안 당신의 하루하루가 평안하시길 바랍니다.
당신의 삶은 나에게,
세상에서 가장 단단하고도 따뜻한 수업의 여정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