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이랑 밥을 먹고 차도 마시고

by 바람세탁소


봄날이랑 밥도 먹고 차도 마시고 2009.04.10


강아지 콩순 이를 마당으로 출근시키는데,

총알처럼 튀어 나가는 녀석 때문에 슬리퍼가 벗겨졌습니다.

줄을 바짝 잡고 깽깽이로 서서 슬리퍼와 발바닥을 툭툭 털어내고 고개를 드는데

복숭아꽃이 환하게 피고 있습니다.


한창 들려오던 봄소식이 이제야 도착한 것 같은 기쁨.

우리 마을에서 꼴등으로 뿌려 둔 씨앗이 혹시나 나왔으려나

덮어 둔 비닐을 들춰보고 바보처럼 웃습니다.


창문을 열어 눈부신 햇빛을 큰 소리로 부르고

주전자에 기쁨 두어 잔 팔팔 끓여 커피를 타고.

집 안에만 콕 박혀있던 나를 데리고

봄날과 밥을 먹고 차도 마시며

이 봄날과

친하게 지내고 싶어 졌습니다.



'꽃 차'


봄은 또

우리 집 마당에 와 있습니다.

때론 얄밉게 바람 많은 봄날이지만,

노란 민들레 꽃들이 별처럼 많은 데다

복숭아 꽃잎들은 새로 산 립스틱을 바른 입술처럼

반짝 윤이 납니다.



비 온 뒤 200.04.29


하나, 둘. 하나, 둘.
금방 수세미로 닦아서 걸어 놓은 집게 하나가 흔들흔들 박자를 탑니다.

맨발로 밟고 선 마룻바닥은 어제 내린 비 때문인지

걸음을 옮길 때마다 찡찡

어린 강아지 소리를 냅니다.

건조하게 마른 내 머릿속을 비롯해

모든 사물이

비가 왔다고 알은체 합니다.


이웃 할머니는 잠깐인 봄날을 잘게 쪼개서

채소가 무성한 하우스와

봄볕 듬뿍한 기다란 밭을 여러 줄 만들었고,

현관 앞엔 쪼르륵

튤립과 팬지 꽃까지 심었습니다.


물을 흠뻑 마신 할머니의 건강한 밭에선

새싹들이 돋는데,

겨우 줄 맞춘 나의 밭은

이제야 기지개를 켭니다.


봄 소풍 나온 아가들처럼 신 난 민들레 꽃 사이로 앉아 걸으며

여린 민들레 잎사귀와 질경이 잎을 좀 뜯었습니다.

쌉쌀한 민들레 잎에 포도즙을 넣고 새콤하게 무치고,

질경이 잎은 데쳐서 볶아놓으니 식구들이 맛있게 먹습니다.

이럴 때는 마당이 있어서 참 좋습니다.



봄날은 봄날답게 2009.04.24


신경질적으로 불어대던 바람이 사라지니
창밖은 여느 날의 봄처럼 평온합니다.

삶아서 널어놓은 빨래처럼 뽀얀 햇살

어제보다 하루 더 마음을 열기 시작한 나뭇가지들이

조금씩 푸른빛을 내기 시작합니다.

민들레 꽃들이 마당을 뱅뱅 돌며 피어나는 동안

키 작은 질경이들도 요만큼 요만큼씩 착실히

초록색 수를 놓습니다.

아이스크림처럼 녹아내리는 아까운 봄날 하루가
참 잘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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