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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서 대소변은 정말 중요하다구요.

그래도 삶은 계속된다.

by 꿈꾸는댄서

처음에는 걷게 되기만 해도 감사했다.

면회가 불가능한 시기였기에 남편은 내가 걷는 모습을 동영상으로 찍어서 가족 단톡방에 올렸다.

모두들 기적이라고 기뻐하셨다.


그래. 이제 걷게 되었으니까 소변도 나오고, 대변도 나오고 원래대로 돌아올꺼야. 희망이 보이는 듯 했다.


입원한 지 두달 정도를 향해가고 있을 때 재활의학과 교수님이 소변줄을 빼보자고 하셨다. 걱정이 되기도 하고, 두렵기도 했다.


처음 소변줄을 빼고나서 물을 좀 마셔보고 기다려봤다. 배는 불러오고 소변은 마려운데 나오지가 않았다. 결국은 의료진의 도움으로 소변을 뺐다.


그래. 그럴 수 있지. 근력이 다 소실 되었는데 이것도 마찬가지겠지.. 돌아올꺼야.

두번째 소변줄은 뺐을 때 물을 많이 마셨는데 정말 오줌보가 터진다는 말이 실감날 정도로 꽉 찼는데도 나오지 않았다.


간호사님한테 얘기하고 담당의한테 알려지고 답이 올 때 까지 시간이 꽤 걸려서 정말이지 소변은 보고 싶은데 나오지는 않고 사지가 꼬이는 듯 했다.

이번에도 역시 의료진의 도움으로 넬라톤(일회용 소변줄)으로 뺄 수 밖에 없었다.


소변 보는데 도움이 되는 약을 최대치로 복용하고 있는데 소변이 안 나왔다.

그래도 감각은 다 있어서 소변이 차는 것도 느끼고 보고 싶은 것도 느꼈으나, 나오지를 못했다.


하루를 시도해보고 안되고, 이틀을 시도해보고 또 안되고..

하루에 몇 번 씩 소변 볼 때 마다 간호사를 불러야 하는 내 자신이 너무 받아들여지지가 않았다.


이대로라면 난 자가도뇨를 해야만 한다.

언제까지 소변줄을 계속하고 있을 수는 없다.

이동과 관리에 제약이 있고, 계속 소변줄을 하고 있으면 소변 보는 기능이 더 나아질리가 없으니까.


자가도뇨...말 그대로 휴대용 관을 이용해서 내 스스로 소변줄을 꽂아 소변을 보는 것이다.


어.. 이게 아닌데.. 난 이런 삶을 단 한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


결국 나는 대학병원 퇴원을 앞두고 자가도뇨환자로 등록되었고, 간호사님이 넬라톤할 때 양해를 구하고 내 신체에 대해 알아갈 수 밖에 없었다.


현타가 왔다. 그러나 어찌할 방도가 없었다. 나한테는 다른 선택권이 없었으므로.


소변도 그러니 대변도 역시나 그랬다.

관장이 아니고서는 변을 못봤다.


재활전문병원에 가서도 대변을 잘 못보니 거의 못 먹었다. 하루 종일 재활치료에 임해야했는데, 그때는 정말 정신력으로 버텼던 것 같다.


두 달여간 입원 후, 나온지는 네 달 째.

이제는 집에 가고 싶어 7월 말쯤 퇴원을 했고,

집 근처 외래에서 재활을 이어나가기로 했다.


대학병원, 재활병원, 집 근처 재활 외래에서도 의사쌤들은 하나같이 걷기가 이만큼 되니까 그래도 대소변도 따라 회복할꺼라고 했다.


처음에 어떨 때는 하루에 자연배뇨를 2~3회 할 때도 있었다. 소변이 나오는데 어찌나 신이 나던지...

그 때는 좀 참으면 잘 나오나 싶어서, 자가도뇨를 안하고 참다가 급성신우신염이 온 적도 있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이건 차차 좋아지는 건 아닌 것 같았다.


하루는 자연배뇨를 한 번도 못 할 때도 있고, 어떤 날은 갑자기 1~2회 할 때도 있고,

어떤 날은 너무 마려운데 막상 도뇨를 해보면 찔끔 나오고 마는 경우도 있었다.


관을 이용하는 거니까 아무래도 요로감염이 생길 수 밖에 없었고, 요로감염이나 신우신염 등 염증이 생기면 요실금의 우려도 커졌다.


마렵다고 생각하는 순간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소변이 찔끔하고 나와버린다. 정말이지 마음이 너무 힘들었다. 결국은 요실금 패드도 사서 가끔 사용하게 되었다.


처음보다 조금씩은 나아졌다고 나를 위로하지만

가끔 내 상태가 나아진건지, 내가 도뇨하는 삶에 익숙해진건지 헷갈린다.


차를 타고 먼 길을 가야할 때, 식당이나 카페갈 때 화장실부터 파악하게 된다. 집에서나 나가서나 자가도뇨관 키트는 나한테 필수품이다.


내 친구말대로 애기들 기저귀챙기듯이 나한테는 도뇨관이 기저귀 대용이다.


차차 먹는 양도 늘었고, 장 움직임도 많이 활발해졌다. 사람들이 터부시하는 방귀가 나에게는 얼마나 중요한지. 장마비 상태였을때는 방귀 한 번이 그리웠다.


지금은 막판에 주는 힘이 부족하고 항문이 열리는 게 잘 안되서 관장을 하긴 하지만, 그래도 장운동 자체는 정말 활발해졌다고 느낀다.


어떨 때는 이런 내가 서러워서 엉엉 운 적도 많았다.


하지만 엉엉 운 날이나, 어쩌다 기쁘게 하루를 보낸 날이나 내 몸 상태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 이왕이면 좋게 생각하면서 살자고 다짐했다.


언제 좋아질 지 모르고, 이대로 이렇게 죽을 때까지 도뇨와 관장이 필요할 지 나는 알 수 없다.

그래도 매일 나는 할 수 있는 것들에 초점을 두고 감사하는 삶을 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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