ㄴ : 낙엽과 눈

1부 자음, 사람의 소리

by 박성봉


낙엽돈(錢)


가을바람에 노랗게 흩내리는 은행잎.

하윤이가 말한다.

"아빠, 이게 다 오만원짜리면 좋겠다."

그 순수한(?) 한마디에 나는

가을 이곳 저곳을 돈으로 환산해본다.

파란 하늘은 천 원,

주황 단풍은 오천 원,

푸른 잔디는 만 원,

은행잎은 오만 원.

그러다 문득 깨닫는다.

이 돈이 누군가에게는 따뜻한 한 끼,

누군가에게는 고단한 하루의 위로,

누군가에게는 간절한 치료비임을.

"하윤아, 새뱃돈은 엄마가 꿀꺽한게 아니라,

언젠가 복리로 더 갚아 줄거야.

그러니 네가 가진 풍요를 시린 곳에

나누어 줄 줄 아는 넉넉한 사람이 되렴."

돈보다 소중한 것을 가을에게 배운다.













눈(雪)에 대한 양가감정


물은 얼기도 하고 흐르기도 해요.

가벼워 하늘에 둥둥 떠 있다가,

예쁜 꽃이 되어 하늘에서 내려오지요.

눈을 좋아하지 않는 아이가 있을까요?

하윤이는 눈썰매도 타고,

눈사람도 만들고,

눈 덮인 얼음판을 대야를 타고 씽씽 지칩니다.

눈은 어른도 설레게 합니다.

북가주 살 때 흰 눈 너머로 멀리 보이는

Lake Tahoe는 정말 아름다웠지요.

몇 년 전 눈길에 미끄러져 허리를 삐끗한 적이 있습니다.

예전엔 눈 덮인 경사길에 연탄재를 깨어 깔아놨지요.

누군가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워 봤나 반성하며,

눈길을 조심조심 걸어봅니다.

흰 눈은 누군가에겐 설렘이자 두려움.


* 안도현 - <너에게 묻는다>













눈먼 배려


만개한 벚꽃 잎이 흩날리던 4월 어느 날,

동경대 근처 현지인 교회의 부활절 예배.

촛불 점화를 위해 시각장애인 이토씨를

제단 앞으로 안내하는 당번이 되었다.

내딴엔 부축하려는 요량으로

지팡이를 짚은 그의 팔꿈치를 잡았다.

그러자 강하게 나의 팔을 제지하며 말하길,

"박상, 지팡이 쪽을 잡으면 시각장애인들은 두려워해요."

그러고는 나를 앞장 세우고,

가만히 내 어깨에 손을 얹고 따라오셨다.

소곤소곤 촛대 위치를 알려드리고 환해진 예배당.

그제야 깨달았다.

배려란 내 방식이 아닌,

상대의 입장에서 헤아리는 것임을.

그 순간 정작 시력을 잃은 것은 나 자신.









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