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부 역설의도 - 첫번째 이야기
· 20년간 나를 따라다닌 공황장애와 불면증, 같은 뿌리를 공유하는 두 질환의 기록.
· 약물로 급한 불을 끄고, 인지행동치료로 불안의 고리를 끊어가는 과정.
· 나를 망친 것이 아니라 지켜주려 했던 뇌의 서투른 방어 기제였음.
· 두려움을 껴안고 한 걸음 나아갈 때, 불안은 내 재산목록 1호가 됨.
느긋하게 공항에 도착했다.
탑승까지 아직 세 시간이 남았다.
여유롭게 수하물을 부치고 출국 수속을 마쳤다.
회사 정책상 수석 엔지니어는 10시간 이상의 장거리 출장 시 비즈니스석이 제공된다.
내 돈이라면 절대 누리지 못할 호사다.
도착지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스히폴(Schiphol) 공항이다.
비즈니스석 탑승객은 항공사 라운지에 입장할 수 있다.
'아, 이런 곳이 있었구나' 하며 여러 음식을 조금씩 먹어본다.
가볍게 요기를 하고 나오니 시원한 아메리카노 한 잔이 간절해졌다.
스타벅스에 들러 커피를 한 모금 넘기다가 문득 깨달았다.
그 사실을 인지하자마자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최악의 시나리오가 머릿속을 채운다.
만약 이륙 후 비행기 안에서 공황발작이 온다면 어떻게 하지?
숨을 쉴 수 없어 다급하게 호출 버튼을 누르고, 당황한 승무원이 달려오는 모습이 떠오른다.
결국 기장이 회항을 결정하고 수백 명 승객이 나를 향해 원망의 시선을 쏟아낼 것이다.
20년 동안 공황장애는 나를 놔줄 줄 모른다.
한동안 괜찮다가도 환경이 바뀌면 어김없이 찾아온다.
이전 경험으로는 이직이나 부서 이동 후 반년쯤 된 시점이 늘 위기였다.
처음의 긴장이 서서히 풀리면서, 역설적으로 불안은 더 강해진다.
이번에도 새로운 부서로 이동한 지 네 달째였다.
나의 공황 증세는 빠져나갈 수 없는 공간에서 악화된다.
하늘에 떠 있는 비행기가 그렇고, 높고 긴 케이블카가 그렇다.
하윤이가 이제 갓 두 돌이 되었을 때다.
11km에 달하는 인제양양터널을 운전하던 중 심한 공황발작을 겪었다.
당장이라도 차를 멈추고 싶었지만, 터널 안 편도 2차로에는 갓길이 없었다.
그 10여 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다.
그날 이후 나는 긴 터널을 병적으로 피하게 되었다.
터널만이 아니다.
꽉 막힌 고속도로도 나에게는 불안의 대상이다.
한 번은 정체가 심했던 경부고속도로를 운전하던 중 발작이 왔다.
간신히 갓길에 차를 세우고 덜덜 떨리는 손으로 112에 전화를 걸었다.
출동한 경찰관 두 분 중 한 분은 내 차를 대신 운전해 주었고,
다른 한 분은 순찰차의 경광등을 켠 채 뒤에서 호위해 주었다.
새삼 한국에 산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정신의학에서는 이를 광장공포증(agoraphobia)이라 부른다.
이름 탓에 넓은 광장을 두려워하는 병으로 오해하기 쉽지만,
공황 상태에 빠졌을 때 즉각 피하거나 도움을 구하기 힘든 상황 자체를 회피하는 불안장애다.
그렇게 나는 '공항'에서 '공황'을 다시 만났다.
나에게는 공황 말고도 불면증이라는 오랜 동거인이 하나 더 있다.
불면증을 처음 자각한 것은 첫 공황발작을 겪기 5년 전쯤이었다.
한국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던 무렵, 어느 날 새벽 3시쯤 눈이 번쩍 떠졌다.
정확한 시각을 기억하는 이유는,
자다가 깨는 일이 워낙 드물어 눈을 뜨자마자 시계부터 확인했기 때문이다.
그 후로도 며칠 동안 약속이나 한 듯 같은 시간에 잠에서 깼다.
원래 누가 업어가도 모를 정도로 깊이 잠드는 편이었는데, 그 며칠 밤은 달랐다.
몸은 천근만근 피곤한데, 막상 잠자리에 누우면 정신이 또렷해졌다.
밤을 뜬눈으로 지새우니 낮에는 하루 종일 몽롱했고 연구에도 도무지 집중할 수 없었다.
날이 갈수록 신경은 날카로워졌고, 작은 소리와 빛에도 극도로 예민해졌다.
창문에는 틈새 없이 암막 커튼을 달았고,
밤이면 유난히 크게 울려대는 벽시계들을 찾아 모조리 배터리를 빼버렸다.
이듬해 3월, 4주간의 기초 군사훈련을 받을 때의 일이다.
생활관은 30명 정도가 평상에 나란히 누워 자는 구조였다.
그런데 하필 내 자리 바로 위에 붉은 취침등이 켜져 있었다.
그 미세한 불빛조차 신경 쓰여 도무지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어떻게든 빛을 차단해야겠다 싶어 처음에는 보급받은 양말로 눈을 가려 보았다.
하지만 고개를 살짝만 돌려도 스르르 흘러내려 영 불편했다.
궁여지책으로 보급된 국방색 삼각팬티,
일명 '브레이브맨'을 안대 삼아 머리에 뒤집어쓰고 잠을 청했다.
다음 날 아침, 불침번 근무자가 이를 '이상행동'으로 보고하는 바람에
소대장실에 불려 가 면담까지 해야 했다.
가장 부러운 사람은 베개에 머리를 대자마자 잠드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들은 7시간 넘게 통잠을 잔다.
또 다른 부류는 잠이 안 오면 그러려니 하고 일어나 다른 일을 한다.
간밤에 몇 시간 못 자도 하루 피곤하고 말지, 내일은 더 잘 자겠지 하고 넘긴다.
나는 그렇지 못하다.
'못 자면 내일 어쩌지. 몇 시간은 꼭 채워야 해.'
잠에 대한 집착이 역설적으로 불면을 불러온다.
나에게 불면증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나에게는 왜 불면증과 공황장애가 생겼을까.
환경의 산물일까, 아니면 타고난 기질일까.
초등학교 입학 전에 살던 집은 기찻길 바로 옆이었다.
그 무렵, 부모님과 나란히 누운 단칸방에서
나는 밤마다 거인이 쿵쿵거리며 쫓아오는 악몽에 시달리곤 했다.
이후 초등학교 시절을 보낸 마을에는 육군 부대 사격장이 있었다.
시도 때도 없이 동네를 울리던 총소리 탓에,
나는 작은 자극에도 소스라치게 놀라는 예민한 아이가 된 것 같다.
하지만 어쩌면 환경보다 타고난 기질의 영향이 더 클지도 모르겠다.
내게는 경증의 강박증, 이른바 OCD(obsessive-compulsive disorder)가 있다.
약속 시간을 정확히 지키지 못하면 불안해지고,
발표 자료를 만들 때 도형과 문자열이 선에 맞춰 정렬되어야 마음이 놓인다.
책상 위는 깔끔하게 정리되어야 비로소 집중이 잘 된다.
돌이켜보면 이런 기질은 다름 아닌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듯하다.
얼마 전 아버지의 이웃이 아버지의 성격에 대해 놀라며 이런 이야기를 들려줬다.
"남들은 밭에 고추 모종을 대충 심는데, 아버지는 양쪽 끝에 실을 팽팽하게 매고
일정한 간격으로 표시를 해둔 뒤, 그 줄에 딱 맞춰 심으시더라."
그 말을 듣는 순간, '나였어도 똑같이 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영락없는 부전자전(父傳子傳)이다.
뇌과학의 관점에서 보면 불안은 편도체와 관련이 있다.
위험 신호가 오면 편도체는 심박수와 호흡을 끌어올려
이른바 투쟁-도피 반응(fight-or-flight response)을 작동시킨다.
가짜 위협이었다면 전전두엽 피질이 상황을 이성적으로 판단해 편도체를 진정시킨다.
이 제어 회로가 정상이라면 일시적인 긴장으로 끝난다.
하지만 공황장애는 이 브레이크가 고장 난 상태다.
불안을 느낄 이유가 없는 상황에서도 극도의 불안이 밀려온다.
다음에 또 발작이 오면 어쩌나 미리 불안해하는 예기불안(豫期不安)이 생긴다.
나의 불면증도 잠 자체보다 이 예기불안에 더 뿌리를 두고 있다.
어쩌다 불면의 밤이 며칠 이어지면 또 못 자면 어쩌지 하는 걱정이 앞서고,
잠에 집착하게 되고, 집착할수록 잠은 달아나는 악순환에 빠진 것이다.
공황장애와 불면증은 초기에 적극적으로 치료하면 예후가 좋은 편이다.
하지만 나처럼 치료 시기를 놓쳐 만성화되면 호전과 악화를 반복한다.
다행히 두 질환 모두 약물치료와 인지행동치료로 충분히 효과를 볼 수 있다.
공황장애의 치료에 쓰이는 약물은 우울증 치료제와 겹치는 경우가 많다.
우울과 불안 모두 뇌 속 세로토닌 시스템의 불균형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SSRI(선택적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 계열의 약물은
신경세포가 세로토닌을 다시 흡수하는 것을 막아, 뇌 속에 세로토닌이 더 오래 머물게 한다.
매일 꾸준히 복용하며 예민해진 편도체의 반응을 낮추는 원리인데,
장기간 복용해도 비교적 안전하다고 알려져 있다.
반면 극도로 불안하거나 도저히 조절할 수 없는 발작이 일어날 때는
벤조디아제핀 계열의 신경안정제를 쓰기도 한다.
복용 후 10~20분이면 안정이 찾아오는, 급한 불을 꺼주는 소화기 같은 약이다.
불면증에 쓰이는 수면제 역시 여러 종류가 있지만 기전은 비슷하다.
뇌의 억제성 신경전달물질(GABA)의 작용을 강화해
각성 스위치를 끄고 수면을 유도하는 방식이다.
인지행동치료는 증상을 눌러 가라앉히는 약물과 달리,
왜곡된 생각과 행동 패턴 자체를 교정하는 훈련이다.
공황장애를 예로 들면, 진료실에서 의사의 감독 아래 좁은 빨대로만 숨을 쉬거나,
제자리에서 빙빙 돌며 일부러 두근거림과 어지러움을 유발한다.
노출치료(exposure therapy)라고도 불리는 이 방법은
공황과 비슷한 신체 증상을 의도적으로 일으킨 뒤,
결국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경험을 반복하며 불안의 고리를 끊어내는 것이다.
한 걸음 떨어져 나의 반응을 객관화하니 불안이 찾아와도 예전만큼 휘둘리지 않았다.
그렇게 인지행동치료의 효과를 보기 시작할 무렵, 가족과 오사카 여행을 갔다.
유니버설 스튜디오에서의 경험이 노출치료의 실전 무대가 되었다.
다리가 허공에 뜬 채 타는 롤러코스터, 플라잉 다이노소어.
가장 높은 지점을 향해 천천히 올라가는 동안 불안은 최고조에 달했다.
급강하와 회전이 반복되었지만 눈을 부릅뜨고 견뎠다.
'어차피 금방 끝난다' 하며 계속 스스로에게 되뇌었다.
기구가 멈추었을 때, 말로 할 수 없는 자신감이 올라왔다.
여행을 다녀온 뒤 증상은 눈에 띄게 좋아졌다.
하지만 여전히 거의 매일 밤 수면제 없이는 잠을 잘 수가 없다.
약을 꽤 오래 먹어 온 터라 내성과 의존성이 걱정된다.
당분간은 일상을 유지해야 하니 지금의 방법을 이어가겠지만,
조금씩 줄여가며 언젠가 약 없이 잠드는 밤이 왔으면 좋겠다.
내게 있는 이 불안은 나를 파괴하는 것일까.
돌아보면 나의 불안 기질이 오히려 지금의 나를 만든 것 같다.
초등학교 때 아이 걸음으로 거의 한 시간 거리를 통학하면서도 6년 개근상을 받았다.
혹시라도 등굣길이 늦어지면 엉치뼈 쪽이 근질근질하면서 불안이 몰려왔다.
'늦으면 안 돼.'
고2 때부터 본격적으로 대입 준비에 매달린 것도,
대학에서 2학년까지 놀다가 3학년 때 학점 관리를 시작한 것도,
취직, 이직, 직장에서의 책임감도 모두 더 나은 곳으로 가고 싶은 성취욕과 함께
'못하면 어떡하지' 하는 불안이 나를 움직여왔다.
잠을 못 드는 것도 잠 자체보다 '내일 일을 그르치면 어떡하지' 하는 마음의 불안이었다.
더 잘하고 싶은 마음이 불안을 낳고, 역설적이게도 그 불안이 지금까지의 성과를 만들어왔다.
김영하 작가는 단편소설 《당신의 나무》에서 앙코르와트 사원을 감싼 스펑나무에 대해 이렇게 쓴다.
"나무는 뿌리로 사원을 부수면서, 동시에 그 뿌리로 사원이 완전히 무너지지 않도록 버텨준다.
나무와 부처가 서로 얽혀 900년을 견뎠다.
부서지기 쉬운 사암으로 지어진 이 사원이 아직 서 있는 것은 나무 덕이기도 하다.
사람살이가 다 그렇지 않은가."
나의 불안은 바로 그런 나무 같은 존재였다.
나를 부수면서도 버티게 해주는 뿌리.
그래서 나는 나의 불안을 끌어안기로 했다.
딸 하윤이와 영화 〈인사이드 아웃 2〉를 봤다.
불안이(Anxiety)가 그토록 폭주하다가, 갑자기 멈추더니 눈물을 흘리며 이렇게 말한다.
"I was just trying to protect her."
(난 그녀(라일리)를 지키려고 했던 거야.)
이 장면에서 아이에게 들킬까봐 참아왔던 눈물이 터지고 말았다.
처음으로 내 안의 불안이에게 고마웠다.
나를 지켜주려고 했구나.
그리고 그동안 너무 힘들었을 나를 꼭 안아줄 수 있었다.
다시 공항 스타벅스 안이다.
약은 수하물 안에 있고, 짐은 이미 비행기에 실렸을 것이다.
처방전이 필요한 약이라 공항 내 약국에서도 구할 수 없다.
그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최악의 상황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것뿐이었다.
그래도 말로 할 수 없는 두려움이 마음과 생각을 가득 채웠다.
다시 엉치뼈 끝이 근질근질했다.
허먼 멜빌의 소설 《모비딕》에서 1등 항해사 스타벅(Starbuck)이 선원들에게 이런 말을 한다.
그렇다, 커피숍 스타벅스는 그의 이름에서 따왔다.
"고래를 두려워하지 않는 자는 내 보트에 절대로 태우지 않겠다."
두려움을 모르는 사람은 겁쟁이보다 훨씬 위험한 동료라는 뜻이다.
무서운 것을 무섭지 않다고 우기는 것은 용기가 아니라 만용이다.
진짜 용기는 두려움을 느끼면서도 보트에 오르는 것이다.
그렇게 나도 두려움을 안고 비행기에 올랐다.
그리고 이전부터 두려움을 느낀다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했다.
대범하게 일을 추진하는 사람들이 부러웠다.
하지만 스타벅의 저 말이 나에게 용기를 준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현재 살아있는 모든 인류는 두려워할 줄 아는,
그래서 일견 겁쟁이로도 보일 수 있는 조상들의 후예다.
다행히도 그날의 출장은 아무 일 없이 무사히 끝났다.
이륙 전까지 극도의 긴장 상태였지만,
바퀴가 땅에서 떨어지자마자 거짓말처럼 곯아떨어져
승무원이 환영 음료를 건넬 때야 비로소 눈을 떴다.
나는 앞으로도 낯선 환경에 놓일 때마다,
끝이 보이지 않는 긴 터널을 지날 때마다
불쑥 고개를 드는 불안을 안고 살아갈 것이다.
소노 아야코는 에세이 《약간의 거리를 둔다》에서 이렇게 말했다.
"불행은 엄연한 사유재산이다."
이 말을 빌려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불안도 나의 사유재산이다.
그리고 내 재산목록 1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