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 혹은 버스, 자전거
우리는 해외 여행하면 자연스럽게 비행기를 떠올릴 수 밖에 없다. 육로로는 왕래할 길이 없기에. 배를 타기에는 때로 비행기가 더 저렴하기에. 그리고 너무나 바쁘기에.
나는 해군에 복무하던 중 운이 좋아 군함을 타고 18개 도시에 방문하게 되었다. 물론 승객이 아닌 배를 유지 보수하는 수병으로서 배에서 일을 해야 했으므로 그다지 여정자체가 즐거웠다고는 할 수 없지만 배를 타고 떠나는 여행은 상상해본 적 없는 새로운 경험을 선사해주었다. 비행기를 타면 4시간이면 도착할 거리도 배를 타면 거의 2주에 달하는 시간을 항해해야 도착할 수 있었다. 배는 움직이는 건물과 같아서 항해하는 동안 언제나와 같은 업무를 하고, 같은 침대에서 자고, 같은 식당에서 밥을 먹고, 같은 벽, 같은 얼굴들을 보며 똑같은 일상을 보냈다. 하지만 거대한 바다조차 조금식 변해갔다.
적도를 지나 남쪽으로, 다시 적도를 지나 북쪽으로 이동하면서, 하루에 5도 씩 변해가는 날씨에 나는 매일 아침 복도에 서서 내복을 입을지 벗을지 고민했다. 사계절을 2주만에 거치고 추위에 떨었다 다시 더위에 땀흘렸고, 땀이 좀 식는구나 싶을 때 다시 유리창이 얼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건 그렇게 까지 새롭진 않았다. 드 높은 산을 오르면 느낄 수 있는 것이었기에.
하지만 정말로 바다도 조금식 변해갔다. 언제는 짙다 못해 검정과 회색을 넘나드는 색상이었다가 남쪽으로 갈 수록 옅어져 푸른 바다가 되었다. 그마저도 만족스럽지 않은지 어느새 이온음료처럼 퍼런 색이 되었다가 이내 햍볕아래 옅은 보라빛을 띄게 되었다. 하지만 너무나 느리게 느리게 변해가서 마치 어느날 나이가 차가는 자신을 발견하듯 문뜩 달라진 건가 싶어 과거의 기억과 대조하며 옆 동료에게 뭔가 변한거 같지 않냐며 변화를 느꼈다.
그렇게 몇일, 몇주가 지나고 입항하는 날 문을 열고 나가면 새로운 대지가 나를 반겼다. 너무나 반가운 육지 내음은 재쳐두고 해변, 산, 나무, 사람, 언어, 공기까지 모든 것이 새로웠다. 오히려 너무나 오래 걸리는 그 2주 1주 하는 시간 탓에 이 신선한 충격은 무뎌지지 않았고 도착할 때마다 감탄을 자아냈다. 마치 이 문이 다른 세상과 연결된 것처럼 문만 열면 새로운 곳으로 갈 수 있는 공상과학 소설이 실현되면 이런 기분일까 싶었다.
매일같이 아무것도 없는 수평선을 바라보거나, 밤이 찾아오면 쏟아지게 많은 별들을 보고 별똥별들이 지나가는 것들을 보고, 큰 바도가 배를 뒤흔드는 것을 보면서 나는 생각했다. 상상해보지 못했던 것. 머릿속에 그려볼 생각조차 들지 못했던 것들을 보는 기분이 이런 가분이겠구나. 식당에 앉아 국그릇 속 국이 요동치는 것을 보면서, 복도를 걷는 모든 이들이 술취한 사람들 마냥 지그재그로 걸어다니는 것을 보면서, 침대에 누워 요람같은 흔들림을 느끼면서 우리는 또다시 새로운 땅으로 향했다.
군을 전역하고는 로망이었던 전역여행을 실현하고자 몽골로 떠났다. 몽골로 가기로 한 가장 큰 이유는 그곳이 내륙 국가였단 것이고, 넓은 평원을 보고 싶어서였다. 달리 말하자면 바다가 없어서였다. 군생활이란 기억으로 지겨워진 바다를 떠나 나는 넓은 육지 여행을 해보고 싶었고, 기차를 타고 대륙을 넘어보고 싶었다. 그렇게 몽골에서 시작해 러시아 횡단열차에 탑승하게 되었다.
육로로 국경을 넘고 수 없이 먼곳을 향한다는 것은 나에게 너무나 큰 환상이었다. 그리고 모든 여행이 그러하듯 그곳에는 일상이 있음을 알려주었다. 누군가에게는 그것이 일상이었다. 먼 곳에 있는 친지를 만나러, 군 입대 혹은 제대를 위해 고향으로 혹은 타지로 떠나는 여행. 그 틈에서 들떳던 내 마음도 가라앉았고, 또다시 조금식 변하는 바깥 풍경을 바라보며, 조금식 타고 내리며 달라지는 승객들을 바라보며 조용히 나를 바라보게 되었다. 인터넷도 되지 않는 곳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할당된 조그만 공간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은 어쩌면 지금 우리에겐 너무나 색다른 일이 될 지 모르겠다. 하지만 군대에서 전역한지 얼마 안 되었고, 스마트폰 조차 전역후에 사용하기 시작한 나로서는, 너무나도 같은 하루 다만 일도 당직도 없는 주말의 하루와 같았다.
이후 모스크바를 거쳐 리가, 바르샤바와 유럽을 여행할 때에는 버스를 이용했다. 더 알아보니 이랬다. 거리가 아주 멀면 기차가 조금 더 싸고, 가까울 수록 버스가 싸다. 하지만 당황스럽게도 가끔은 비행기가 버스나 기차보다 가격이 낮았다. 어느 바르샤바에서 피자를 사먹은 날, 한 친구가 나에게 오늘 특가로 나온 스톡홀름 행 비행기표가 내가 먹은 피자보다 싸다고 말해 주었을 때의 충격이 아직도 가시지 않는다. 심지어 비싸지도 않은 피자였다.
사실 기차가 편한 환경이었다고 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나에게는 배 생활로 때문에 좋게 느껴지는 요소들이 있었다. 침대 사이즈나 복도 크기는 배와 비슷했다. 그러나 기차에는 햇볕이 들었고, 군생활 중 내 소원 중 하나가 아침 햇살에 잠에서 깨는 것이었다.(배 안에는 햇볕이 조금도 들지 않았다.) 다행이 여름이 지나 머리만 감아도 그리 불편하지 않았고, 기차칸 안에 외국인은 나 하나 뿐이었음에도 잠을 자고 창 밖을 바라보며 문제 없이 시간을 보냈다. 사실 붙임성이 좋지 않은 나는 별말 없이 조용한 다른 승객처럼 조용히 보냈다. 어쩌면 내가 다른 이들처럼 한번에 6-7일 식 기차를 탄게 아니고, 5개 도시를 거쳐 하루 식 타고 다녀서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버스는 이렇다 말씀드릴게 없는 것이 우리 시외버스 보다 살짝 안좋은 느낌 정도라고 말 할 수 있을 거 같다. 다만 창 밖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가만히 그 풍경만 바라보다 돌아가도 좋은 여행을 했다고 말 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것 역시 살면서 접해보지 못한 풍경이었다.
어느 여행이 더 낫거나 낮은 것은 없다. 우리가 마주하는 풍경이 놀랍던 사소하건, 그것을 바라보는 우리의 눈이 그를 어떻게 감상하는 지에 달려있다. 어떤이는 집 앞 공원을 돌아다니며 행복을 찾을 수 있고, 누군가는 에펠탑 앞에서 실망감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