젤리와 묵
젤리들이 절규했다. 바다가 꿈틀대기 시작했다. 해는 이미 고개를 숙였고, 달은 구름으로 얼굴을 가렸다. 항해사는 별들에게 길을 물었고, 별들은 잡상인이라도 본 듯 불쾌한 얼굴로 길을 흩었다. 뱃속은 요동치며 물건들은 무너지고, 길 잃은 음식들이 바닥을 구르기 시작했다. 쾅! 번개가 내리친다. 쾅 배가 바다에 머리를 박는다. 쾅 빛이 가득하다 금세 사라진다. 쾅! 파도가 배를 내리친다. 쾅 정신이 금세 희어진다.
잔해가 흘러온다. 어떤 천치들이 서쪽 바다를 항해한단 말인가? 서쪽 바다에 사는 파도들은 언제나 오만한 몸짓으로 서로를 도발하며 산보다 커지려는 듯 끊임없이 요동친다. 저 바다를 건널 배를 만드는이 하늘을 나는 배를 만드는 게 더 쉬울 것이란 건 상식 중의 상식이다. 세상이 몰상식으로 가득해간다.
잔해 위로 초록, 빨강, 노랑. 색색의 생물체들이 흘러왔다. 신비한 생명체에 놀란 묵들은 색색의 젤리들을 바닷가에 모아 두었다. 곰의 모양을 하기도, 벌레의 모양을 하기도 단순히 원형이 기도 하던 젤리들은 겹겹이 쌓여 햇볕에 묽어지기 시작했다.
묵들이 동요하기 시작했다. 과거로부터 먼 바다를 건넌 외래종들이 우리 묵들을 밀어낼 거라는 예언이 있어왔습니다! 지금이 바로 그때입니다. 여러분 저 휘황찬란한 색상들을 보십시오! 붉은색과 검은색, 형형 색색은 언제나 맹독을 품고 건드리지 말라는 경고였습니다! 자연은 경고해왔습니다. 해가 지면 저것들이 일어나 입에서는 독을 뿜고, 손에는 무기를 쳐들고 우리를 공격할 것입니다! 묵사발의 날이 다가왔습니다! 분별 있는 묵들이여 어서 가 저 젤리들을 성난 파도에게 돌려줍시다!
묵들의 연약한 몸체들은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하고 어린아이들이 하나둘 눈물을 보이기 시작했다. 멈추십시오 여러분! 우리는 묵들입니다. 우리는 저 저열한 도토리들이 아닙니다. 우리는 찌는 듯한 고열과 고통을 참아내고, 살을 에는 추위를 이겨내 묵으로서 다시 태어났습니다. 우리는 더 이상 야생의 감각으로 살아가지 않습니다. 예와 법 그리고 정의를 이뤄냈습니다. 이뤄지지 않은 일로 누군가를 처단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여러분 저것들이 이미 수명을 다했으면 묻어주어 장례를 치러줘야 할 것이오 살아 있다면 어서 빨리 구명을 해야 합니다! 시간이 없습니다 여러분. 이런 뜨거운 햇살이라면 누구든 곧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강합니다! 저들이 우리에게 무기를 들었을 때, 무기를 들어도 늦지 않을 것입니다.
묵들은 쌓여있는 젤리들을 흩으며, 숨이 붙어 있는 이들을 찾으려 애를 썼으나 대부분 절망에 젖은 얼굴을 한채 싸늘히 굳어 있을 뿐이었다. 묵들은 그 얼굴들을 바라보며, 잠시라도 이들을 다시금 바다로 돌려보낼 생각을 했다는 자신들을 부끄러워하며, 혹여나 생존자가 있을까 더 열을 내어 생존자를 찾으려 애를 썼다. 이미 숨을 걷은 젤리들은 오랜 전통대로 장대에 매달아 태양에 말리기 시작했고, 묵들 중 몇은 그 밑에서 예를 갖춰 통곡하기 시작했다. 바닷가는 한숨과 통곡, 멀리서 들려오는 거대한 파도 소리와 거친 바람들이 뒤섞이며 더더욱 눅해져 갔다.
그러다 한쪽 끝에서 비명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젤리들 밑에 깔려 있던 누런 생명체가 갑자기 튀어나와 묵들에게 달려들기 시작했다. 이내 바닷가는 혼돈으로 치달았고, 연약한 묵들은 사나운 괴수에게 무참히 박살 나가기 시작했다. 묵들은 이성을 잃고 달려드는 괴생명체를 피해 달려가다 서로를 밀고 뒤얽히며 점차 사고로 실족하는 이들이 괴생명체에게 당하는 이들보다 많아지기 시작했다.
묵들은 연약했고, 살아남은 묵들은 무장했다. 또한 산제물로 젤리들을 구명해야 한다고 주장한 묵들을 벌거벗긴 체 바닷가로 내몰았다. 도가니에 혼돈이 들어섰다.
누런 구미베어가 정신을 차렸을 때 눈앞이 보이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사고로 시력을 잃었다고 생각했다. 혹은 이미 죽어 우주로 돌아왔다고 생각할 찰나였다. 하지만 가만히 있어보니 바닷소리가 들려왔다. 생명체들이 주변에서 웅성이고 있었다. 살아있다! 하지만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다른 젤리들에 깔려있던 탓이었다. 그렇게 하염없이 시간이 흘러갔다. 잠에 든 듯하였다. 그러다 눈이 부셔 눈을 떴다. 갈색의 생명체들이 다른 젤리들을 옮기고 있었다. 두려움이 움트기 시작했다. 갈색 생물들은 젤리를 옮기다 냄새를 맡더니 장대에 매달아 올리기 시작했다. 이것은 너무나도 뻔한 일이었다. 이 야만인들은 우리를 잡아먹을 것이다. 그게 아니어도 당장 뙤약볕에 젤리들의 시체를 장대에 널어대고 있었다. 아 이방인들에 대한 경고 이리라. 우리의 시체를 과시하는 것이리라. 저들은 악마이다. 구미베어는 분노에 사로잡혀, 두려움에 사로잡혀, 광기에 사로잡혀 묵에게 달려들었다. 수가 너무 많아 어찌할 수 없으리라는 사실이 오히려 원동력이 되어 죽음을 느끼며 묵들의 머리통을 내리쳤다. 그것들의 몸체는 탱글탱글했으나 부서지기 시작했고, 다른 것들 또한 놀라 도망치기 시작했다. 살 수 있으리라는 마음이 고개를 쳐들기 시작했다. 더욱이 소리를 지르며 저것들이 제발 모두 도망가기를 바라며 맹렬히 돌진했고, 이내 아수라장이 되어 자신이 내리치는 묵보다 알아서 자빠져 망가지는 것들이 더 많았다. 모두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가기 시작했다. 이쯤 되자 구미베어 역시 그들을 바라보지 않고 반대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죄책감은 들지 않았다. 살았다는, 살아남았다는 안도감만이 가득할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