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이 닿는 자리와 닿지 않는 자리
아침 내내 고정돼 있던 자리들이
점심시간이 되자
한꺼번에 움직이기 시작한다.
의자를 끄는 소리가 나고,
그 소리를 신호처럼
사무실의 공기가 바뀐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
식당으로 향한다.
메뉴를 고르는 시간은 짧고,
자리에 앉는 순간부터
이야기는 이미 시작돼 있다.
누가 먼저 꺼내지 않아도
대화의 방향은 자연스럽다.
아이 이야기,
어제 집에서 있었던 일,
아침에 급하게 해결한 일들.
이야기는 끊기지 않고 이어진다.
한 사람의 경험에
다른 사람의 경험이 포개진다.
“우리 집도 그래.”
“그럴 때가 제일 힘들어.”
말들은 서로를 알아보는 방식처럼 오간다.
같은 테이블에 앉아 있지만
모두가 같은 속도로
그 대화 안으로 들어가는 건 아니다.
누군가는 말을 이어가고,
누군가는 고개를 끄덕이며 듣는다.
그리고 누군가는
어느 순간부터 대화에서 조금 멀어진다.
가족 이야기는
대화 소재로 늘 강하다.
끝이 잘 보이지 않고,
다음 이야기를 꺼내기도 쉽다.
시댁, 친정,
아이 일정과 교육,
부부 사이에서 생긴 작은 마찰까지.
점심시간은 그렇게
금방 지나간다.
듣고 있으면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다.
상황은 알겠고,
마음도 짐작이 간다.
다만 그 이야기가
내 쪽으로 완전히 건너오지는 않는다.
왜 그렇게까지 해야 하는지,
왜 그 자리에서 멈추지 못하는지.
질문은 생기지만
굳이 꺼내지 않는다.
이런 자리에서는
말을 더하지 않는 쪽이
오히려 편하다.
괜히 다른 방향의 말을 보태면
대화가 어색해질 수 있다는 걸
이미 여러 번 배웠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말수가 줄어든다.
밥을 먹다 보면
전화가 울린다.
아이에게서,
배우자에게서.
“밥은 먹었어?”
“아까 그건 어떻게 됐어?”
통화는 길지 않다.
하지만 그 짧은 통화 안에는
하루의 맥락이 담겨 있다.
통화를 마치고
다시 숟가락을 드는 모습도 익숙하다.
누군가는 그 사이 반찬을 집고,
누군가는 물을 마신다.
아무도 그 장면을
특별하게 보지 않는다.
점심시간의 풍경 중 하나다.
그런 순간,
조용한 휴대폰이 있다.
알림도, 진동도 없다.
처음에는 의식하지 않으려 한다.
괜히 비교하는 것 같아서.
괜히 의미를 붙이는 것 같아서.
그러다 몇 번의 점심을 지나면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이 시간에
나에게 걸려올 전화는 없다는 걸.
그 사실은
갑자기 마음을 무너뜨리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아무 감정도 남기지 않는 건 아니다.
그냥
잠깐 스쳐 지나간다.
비슷한 점심시간을 보내본 사람이라면
아마 이 감각을 알고 있을 것이다.
대화에서 한 발 비켜나면
시선은 음식으로 향한다.
그동안 흘려보냈던 맛이
이상하게 또렷해진다.
국물이 생각보다 뜨겁고,
반찬 간이 강하다는 것도 느껴진다.
말을 하지 않으니
씹는 소리가 더 크게 들린다.
점심시간에
이렇게 음식에만 집중해본 적이 있었나
싶을 만큼
시간은 조용하게 흐른다.
대화에 끼지 않아도
자리에 없는 것은 아니다.
그냥 다른 방식으로
그 시간을 지나고 있을 뿐이다.
그러다 회사 이야기가 나오면
분위기가 조금 바뀐다.
회의에서 있었던 일,
업무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누가 어떤 판단을 했는지.
이야기는 다시
모두가 같은 선에 서 있는 쪽으로 온다.
그때는 말이 조금 늘어난다.
웃음도 자연스럽다.
이 공간에서의 역할은
분명히 존재한다는 느낌이 든다.
점심시간 내내
내가 사라져 있었던 건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
식사가 끝나고
각자의 자리로 돌아오면
오후가 시작된다.
그때 문득
점심시간의 장면이 떠오른다.
말을 아끼던 순간들,
숟가락에만 집중하던 시간들.
외롭다고 하기에는
조금 과한 표현이고,
괜찮다고 넘기기에는
묘하게 남아 있는 감정.
그 감정은
굳이 이름을 붙이지 않아도
하루 안에서 제자리를 찾는다.
점심시간에
빠져 있었던 건
어쩌면 대화가 아니라
그 자리에서 내가 할 말이 없다는 사실이었을지도 모른다.
겉으로 보기에는
나도 다른 사람들처럼
같은 테이블에 앉아 있었고,
같은 음식을 먹고 있었다.
그 시간은
조금 불편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하루를 흔들 만큼의 일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같이 밥을 먹는 이 사람들이
싫지는 않았다.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거리와,
괜히 눈치 보지 않아도 되는 분위기.
의자를 끄는 소리로 시작된 점심시간은
다시 의자를 밀어 넣는 소리로 끝나는 점심시간은
각자 아무 일 없었다는 얼굴로
자리로 돌아간다.
나는 다시 내 자리로 돌아가
하루를 이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