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그렇게 딱 떨어지는 답만 내놓지 않기에
얼마 전 엄마랑 버스정류장에서 있었던 일이다. 내가 주머니에 소중히 간직한 초콜릿을 먹고 쓰레기가 된 껍질을 고이 접어 버스정류장 틈에 끼우려는 시늉을 하며 엄마에게 “난 이런 사람이 너무 미워.”라고 말한 뒤 둘이 격한 공감을 나눴다. 참고로 나는 쓰레기를 길에 함부로 버리거나 신발을 벗지 않고 의자에 발을 올리는 행위들에 다소 예민한 편이다. 그러다 버스를 타려고 주머니에서 카드를 빼는데 초콜릿 껍질이 호로록 날아가는 거 아닌가! 주우려고 허겁지겁 따라갔지만 차도로 가버렸고 버스가 눈앞에서 오고 있었다. 위험한 상황에서 바람의 흐름을 타 멀어지는 쓰레기를 아련하게 쳐다보는 수밖에 없었다.
어쩔 수 없었지만 졸지에 난 길가에 쓰레기를 버린 사람이 되어버렸다. 아무도 내 사정은 모른다. 쓰레기를 잘 챙겨가려고 주머니에 고이 넣어 놨지만 주머니에서 손을 빼는 동시에 비둘기처럼 날아가버린 거라는 걸 누가 알아주겠는가. 그러다 문득 든 생각은 내 눈으로 목도한 게 생각만큼 진실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이었다.
비슷한 일화가 또 있는데 몇 년 전 택시를 탔을 때였다. 기사님이 내가 탄 지 얼마 되지 않아 문자를 보내셨고 운전하시는 내내 문자를 주고받으셨다. 나는 불안한 눈으로 거치되어 있는 기사님의 폰을 볼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이젠 전화까지 왔는데 기사님의 첫마디는 “엄마 수술 잘 됐대?”. 따님에게 온 전화였고 아내분이 오늘 수술을 하신 것 같았다. 소중한 가족이 있다면 누구나 분명히 이해될 상황이었다. 내가 택시에 탑승했을 때가 마침 수술이 끝난 시점이었기에 그렇게 분주하셨구나 싶었다. 난 그저 평면적으로 바라봤기에 운전을 불안하게 하시는 기사님 정도로 오해했지만 알고 보니 내가 모르는 이야기가 숨겨져 있었다. 누구나 일하는 중이라 할지라도 다 제치고 받고 싶은, 아니 받아야만 하는 전화였을 거다.
이처럼 눈살 찌푸리게 되지만 내가 모르는 이야기가 숨겨져 있는 경우들을 마주할 때가 있다. 난 그저 그런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남모를 사정이, 일종의 비화가 있는 경우들. 그래서 요즘은 ‘만약 그게 아니라면?’이라는 생각을 자주 하곤 한다.
예전에는 종업원이 불친절하면 안 좋게 보기 바빴는데 요즘은 내가 모르는 속사정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그 종업원이 오늘 연인과 이별한 첫날이라면? 가족이 아파서 병원에 있다면? 몇 년 동안 준비한 시험에 떨어진 날이라면?
위에 언급한 세 가지 경우라면 누구나 침울한 하루를 보낼 것이다. 근심걱정 따위 없는 해맑은 표정으로 상대를 대할 수 있는 사람은 현저히 적을 거라 예상해 본다. 나는 공과사를 확실히 구분하는 걸 지향하지만 나 또한 무너지는 날이 있다. 우린 모두 인간이기에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그런 서로를 이해해 주길. 그런 서로를 보듬어주길. 서로가 서로에게 자비로워지길. 나부터 부단히 노력해야겠지만 우리 사회가 조금 더 따뜻한 손길로 서로를 어루만져 주기를 바라본다.
두 눈으로 똑똑히 목격해도 생각한 상황과 전혀 다를 수 있다. 나의 말과 생각이 늘 정답은 아니다. 세상은 그렇게 딱 떨어지는 답만 내놓지 않기 때문에. 부드럽고 유연하게 생각할 기회를 주는 한 마디.
“만약 그게 아니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