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히 찾아온 첫눈

천천히, 조심히 와요

by 이룰성 바랄희

(얼마 전 첫눈이 왔을 때 쓴 글입니다. 물론 첫눈이 어마어마한 폭설로 우리에게 다가왔지만요.)


기다리던 첫눈이 기어코 내리는 밤이다. 늘 느꼈지만 첫눈이 내릴 땐 모두가 숨을 죽인 듯 고요하다. 깃털과 눈송이 중 누가 더 가벼울지 가늠도 안 될 정도로 천천히, 아주 살포시 내려앉는다. 손을 뻗어 내 손에 안착하는 눈을 따스히 움켜쥐어 본다. 첫눈은 신기하게도 차가움보단 따뜻함이 더 크게 느껴지는 모순적인 산물.

점차 눈이 쌓이기 시작하면 고요함은 이내 멀어져 간다. 우리 동네는 큰 번화가와 떨어져 단지가 전부 아파트로 둘러 쌓여 있어 꽤 조용한 편이다. 하지만 눈이 오는 날은 예외다. 눈오리 집게를 들고 최대 속력을 자랑하며 뛰어가는 꼬마아이부터 눈썰매를 더 빨리 끌어 달라며 아빠를 재촉하는 아이들까지. 세상이 전부 놀이터로 변하는 순간이다. 아무리 봐도 질리지 않는 장면들. 사랑스러움을 형상화시킨다면 이런 형태일 거라 확신하게 되는 순간들. 손 시린 것도 잊은 채 눈사람 제작에 열을 올리는 아이들의 모습은 ‘열중’의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내가 근래에 저토록 무언가에 열중한 적이 있었나? 아이들을 보며 많은 것을 배우게 되는 날.

눈이 아이들의 장난감으로 활약해 주는 동안 운전자들에게는 방해물로 전락해 버린다. 어쩌면 ‘기어간다’는 표현이 더 적합할지도 모르는 속도지만 그 조심스러움이 왠지 기분 좋게 한다. 눈이 많이 오는 날은 대중교통 또한 복잡한 사정을 숨길 수 없는데 사실 이런 날은 행여 지각하더라도 이해 못 할 사람 하나 없다. 늦게 오더라도 무사히 온 게 다행이라며 잘 와줘서 고맙다고 따스한 토닥임을 전하는 날이 아닐까 싶다. 지각이 다행스럽고 도리어 반가운 날.

비록 운전자들에게는 예쁜 쓰레기일 수 있고 길이 미끄러워 보행자들에게도 위험요소일 수 있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눈은 꽤 근사하지 않은가. 베이킹할 때 위에서 슈가 파우더를 살랑살랑 뿌려주듯 푸른색을 자랑하던 나무들이 영락없이 새하얗게 물들었으니. 첫사랑이라는 단어가 풍기는 분위기처럼 첫눈만이 줄 수 있는 분위기를 있는 힘껏 느껴본다.

오늘 밤 조용히 스며드는 우리 동네 첫눈, 이번 겨울.


https://youtu.be/foYyfXXMStc?si=wqbXk54mmPRM1Ua8

함께 들으며 잔잔한 겨울을 느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