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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호 Sungho Kim Feb 05. 2021

유럽살이 9년에 얻은 의사소통 팁들 (3)

이태리로 건너간 첫해와 그 이듬해까지 참으로 이해가 되지 않았던 이태리인들의 모습이 있었습니다. 보편적으로 그들은 사과를 하는 것에 대단히 인색했습니다. 생각해보면 사과를 쉽게 하는 사람과 사과를 좀처럼 하지 않는 사람이 만나 문화적인 간극과 충돌이 나타난 것 같습니다. 


제가 말씀드리는 것은 생활 속에 흔히 나타나는 작은 사과를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혼잡한 곳에서 다른 사람의 발을 밟았다거나, 실수로 물을 쏟았다거나, 지나가다 부딪혔다거나, 이런 경우라면 당연히 즉각적인 사과를 하죠. 하지만, 일을 진행하면서 나타나는 크고 작은 실수에 대해서는 좀처럼 사과를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한번은 연말 결산을 한창 준비하던 시기에 담당자의 사소한 실수로 결산결과가 바뀌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숫자를 다루는 사람에게 숫자는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결과를 뒤집을 수 있는 무게값이 있고 자존심의 영역입니다. 당연히 저는 그 사람도 저와 같은 느낌을 가질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물론 너무 늦지 않은 상황이라 수정하면 됐습니다. 하지만, 일차 예상치 보고가 올라간 상황에서 제법 큰 차이를 보이는 2차 보고를 해야 하는 사실 자체가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었기에 당연히 담당자가 사과부터 할 것이라 기대했죠. 하지만, 그는 사과하지 않더군요. 자신이 왜 그런 결과를 만들게 됐는지 이유와 상황, 아직 결산 결과를 법률적으로 수정하기에 늦지 않았다는 점 등을 말하며 자신의 정당성을 주장하더군요. 그 모습에 더 화가 났습니다.  실제로 그 담당자를 해고하는 것이 가능한지도 확인해 봤지만 법률적으로 상당히 어려운 사유였고 (실제 경제적 손실이 그로인해 발생된 것이 아니기에) 오히려 회사에 경제적 데미지가 생길 수 있기에 실행하지는 않았습니다. 결국 그는 끝까지 사과하지 않고 넘어갔습니다. 


그때 제가 품은 의문이 그것이었습니다. 왜 이들은 사과하지 않는 것일까?.... 앞서 말한 친구와 좀더 시간이 지난 후 직설적으로 물어본 적이 있습니다. 


"왜 넌 사과를 그렇게 안하니?"


"왜 당신은 그렇게 사과를 받으려고 합니까? 그게 왜 중요하죠?"


저는 왜 그렇게 사과를 받으려고 했을까요? 


아마도 그게 어려서부터 반복적으로 배운 사람으로서의 당연한 도리라고 생각했거나, 사과를 그 사람의 진정성으로 연결 짓는 자연스런 생각의 바탕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저는 그 사람에게 진정성을 요구했던 것이죠. 


그에게 들은 내용은 약간의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이태리에선 어려서부터 사과하는 것을 배우지 않는다고 하더군요. 오히려 자신의 정당성을 논리적으로 주장하는 법을 배운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2020년 기준 한국의 경우 인구 일만명당 변호사수가 12명 수준입니다. 이태리의 이웃이자 유럽의 강국인 영국은 32명, 독일은 20명 프랑스는 11명 수준인 반면 이태리는 40명 수준으로서 소송천국인 미국과 유사한 수준이며 우리나라의 3배를 훨씬 상회합니다. 즉, 이태리사회는 계약이나 법률적 다툼의 문제가 너무도 쉽게 제기될 수 있는 조건을 갖추고 있습니다. 때문에 그들에게는 아무리 불리한 상황에서도 다툼의 여지가 있는 쪽으로 본인의 입장을 어필하는 것이 당연하며 보편적입니다. 저는 잘못을 시인하고 사과하는 것이 미덕이라고 배우며 자랐지만 이들은 본인의 정당성을 주장하여 법률적인 피해를 최소화하도록 교육받고 자랍니다. 


때문에 저에게 미덕인 덕목이 그들에겐 위험스런 삶의 태도일 수 있는 것입니다.


요즘의 저는 처음과는 많이 다릅니다. 일단, 사과를 기대하지 않습니다. 사실, 그가 사과를 하든 안하든 객관적으로 달라지는 것은 없기도 하고 결국 벌어진 일의 경중에 따라 처분하는 것은 제 몫이기 때문입니다. 다시말해, 묵과하기 어려운 실수나 고의적 실수에 대해서는 고용관계나 거래관계에서 법률적 책임을 묻고 그렇지 않는 사소한 부분에 대해서는 주의를 주고 맙니다. 그가 사과를 했든 안했든 그건 더이상 제게 중요하지 않게 됐죠. 어차피 최종결정은 그와는 별개로 내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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