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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호 Sungho Kim Feb 05. 2021

유럽살이 9년에 얻은 의사소통 팁들 (5)

우리가 각자 맡은 업무들은 대부분 일정한 시기에 완수해야할 정해진 마감기한이 있고 일정상의 루틴이 있습니다. 그런 일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긴급한 요청을 받는 경우 있기도 하잔아요. 상사는 새로 요청한 일이 너무 긴급한 일이라 그 것 부터 얼른 해달라고 압박합니다.  이 때, 보통 어떻게 하시나요? 


제가 말씀드린 사례를 저는 너무 자주 겪었었기에 이 부분에서 외국인직원(현지직원)들과 약간의 마찰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보통 그런 경우 추가근무를 많이 해서라도 급한 일과 마감이 다가온 일들을 다 쳐내곤 하죠. 하지만 이태리 영국에선 그렇지 않았습니다. 


일단 그런 요청을 받은 직원이나 매니저가 찾아옵니다. 


"피터, 알다시피 내일이 000 업무의 마감기일 이야. 당신이 요청한 그 일을 따져보니 하루 정도 걸릴 일이더라구. 급하다고 하는 그 일을 하려면 어쩔 수 없이 000 업무의 마감기일을 맞추지 못하게 될거야. 어떤 일을 먼저 해야할지 결정해줘"


틀린 말이 어디 하나 없잔아요? 이게 어느 특정인의 반응이었을까요? 아닙니다. 열이면 열 다 이런 반응이었습니다. 특별한 경우, 즉 자신이 맡고 있는 업무의 루틴 속에 꼭 해야 할 일에 차질이 생긴 경우가 아니라면 야근을 좀처럼 하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추가적인 일이나 과업은 그들이 받아들일 수 없는 경우가 일반적이었던 것이죠. 특별히 승진에 야망이 큰 사람을 제외하고는 거의 다 이렇게 반응을 했던 것 같습니다. 결국 추가적인 긴급한 일들의 절반 이상은 기초데이타를 넘겨받아 제가 처리하는 일이 반복되었죠


그들과 대화를 나누어 보면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왜 당신들은 그렇게 긴급한 요청이 많지?"


"너무 자주 아침에 이야기 하면서 오늘 당장 해달라고 하잔아"


"각자 자기가 정해둔 우선순위가 있고 일정이 있는데 그걸 그렇게 흩어버리면 일하기가 너무 힘들어"


"제발 일주일 정도라도 먼저 알려줘서 시간을 두고 내가 일정을 조율할 수 있도록 해주면 좋겠어"


누군 그러고 싶어서 그러냐고??? 한국에서 자꾸 요청을 하니 나도 어쩔 수 없잔아~


이태리에 처음 온 때가 3월초였습니다. 코치넬레라는 기업에 투입이 됐는데 그때 조금 빨리 친해진 매니저들이 제게 사석에서 여름휴가는 어떻게 보낼거냐는 말을 하더군요. 여름휴가라면 7월 중순이후에 갈 것으로 생각했기에 3월에 여름휴가를 생각해 본 적이 한번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벌써 여름휴가 계획을 잡냐고 물으니 이상하다는듯 반응을 하더군요. 그해가 시작되기 전에 이미 여름휴가를 위한 모든 예약을 다 해두었다고 하더군요. 사실 그때 놀랐습니다. 그리고 그게 특정인의 성향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미리 정하고 예약을 해둔다는 사실이 좀 이질적으로 느껴지더군요. 특히나 유명한 관광지인 돌로미티의 코르티나 담페조 같은 마을은 그렇게 하지 않으면 숙소나 레스토랑을 찾기 어려울 정도라는 것은 나중에 알게 되었죠. 


비단 여름휴가 뿐이 아니었죠. 식당, 미용실, 갤러리, 등등 일찌감치 예약을 해야만 갈 수 있는 곳들이 제법 많았습니다. 물론 그다지 인기없는 곳들은 당일 예약도 가능했지만 인기있는 곳은 한달치가 다 차있는 경우가 흔합니다. 그만큼 이들의 예약문화는 이미 알려진 대로 철저합니다. 그렇기에 직원들과 식사를 한번 하고 싶어도 2주이상 기간을 두고 일정을 미리 안내하지 않으면 다 모이기 어렵죠. 


코치넬레가 탄생했고 지금도 본사가 위치한 파르마라는 도시는 100년전이나 200년전이나 지금의 도시지형과 크게 다르지 않았음을 고지도에서 확인이 가능합니다. 나폴레온의 두번째 부인이 한때 파르마 도시의 영주로 군림했었는데 그때 만들어진 도시의 지도가 지금의 모습을 대부분 그대로 담고 있음을 박물관에서 보면서 놀랐습니다.  우리의 인식속의 시간의 길이와 이들의 것과는 현저한 차이가 근본적으로 있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 차이는 현실 세계에서 다양하게 보여집니다. 직업을 바라보는 이들의 시각은 기본이 3대이지만, 우리는 매우 짧습니다. 상징적인 건축물을 하나 만들어도 600년을 바라보며 만듭니다. 밀라노 대성당(두오모)은 1386년에 착공되어 1965년에 완성이 됐으니 실제로 600년 가까이 소요된 걸작품이죠. 


짧게 끊어 보는 것에 익숙한 우리들과 시간의 길이를 길게 보며 살아왔기에 조급함이나 서두름이 뭔지 감각이 무뎌진 이태리인들의 차이. 그 차이가 작은 한 기업에서 만난 다른 문화배경을 소유한 사람 간에 그런 생각과 행동의 차이를 만든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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