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님 같은 선인장
나의 소유인 것 같으나 나의 소유가 아닌 물건들이 있다. 살아 있는 생물들 , 그중에서 다른 분에게 선물 받은 살아있는 생물은 소유는 나의 것으로 보이나, 사실 내 것이 아니다. 선인장 화분 한 개도 나에게는 그러하다. 오랜 원룸 생활을 마치고 10년 분양전환 임대 아파트에 입주하게 된 나에게 친구가 선인장 화분 하나를 선물하였다. 그건 아마도 늘 내가 이야기했던 '만약 나의 집이 생긴다면 말이야. 설혹 나의 집이 아니라 아파트에 살게 된다면 말이야'라는 이야기 중에 가장 대표적인 것이 화분을 키우고 싶어.라고 이야기했었기 때문에 선물 받게 되었다고 100% 확신한다. 애인이나 여자 친구의 관계는 아닌 평범한 남자 두 명의 우정이었지만 서로의 취향과 관심을 안다는 것은 언젠가 돌아오기 마련이다. 그렇게 선인장 하나를 갖게 되었다.
요즘 같이 이렇게 폭염이 지속되는 때에 사람도 탈수가 일어나고 열사병에 시달리는 데 식물들이야 오죽하랴. 하지만 조금은 방심했던 것이, 한 달에 한번 물을 줘도 된다는 점 그리고 아파트 거실 안에 자리하고 있어서 무심코 지나칠 수 있다는 것이다. 매달 하루 핸드폰으로 알람을 맞춰놓고 물을 주곤 하였는데 울산 부모님 댁에 다녀오면서 지나쳐 버린 그 알람. 지나치기보다는 체크하고 집에 가서 물을 줘야지 하고 그냥 지나친 것이다. 용인의 집에 돌아와서 샤워를 하고, 방치해 둔 설거지를 하고 심지어 빨래까지 다 개었는데 물 줄 생각을 못 하였다. 목이 타서 물을 마시려고 하는 중 다행히 생각을 하게 되었다. 선인장에 물을 줘야 한다는 걸. 부끄러운 기분이 들었다. 한 달에 한번 주는 그 시간을 놓치고 다른 급하지 않은 일들을 다 한 뒤에 생각이 났다는 것이다. 살아있는 생물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한 달에 한 번인 시간을 저 선인장은 얼마나 기다렸을까. 그래서 알람을 두 번 맞춰두었다. 조금은 더 챙길 수 있을 것 같다.
이미 이 선인장은 내가 챙겨야 하는 존재는 분명하다. 그리고 이 선인장은 절대 말라죽게 할 수가 없다. 그러면 그 친구에게 뭐라 말할 것인가. 한사코 사양하며 화분을 들이면 그 친구는 온전한 생을 보낼 수 없다고 만류하다가 결국 받은 것이 한 달에 한 번만 물을 주면 된다는 선인장인걸. 이 선인장을 보면 손님으로 점잖게 않아 있는 그 친구의 모습 같아서 간혹 얄밉기도 하다.
다음 달 그리고 그다음 달, 아마도 이 선인장은 계속 나와 같이 잘 지낼 것이다. 두 번의 알람만이 아닌 언젠가 화분갈이도 해 나가며 그렇게 나와 살아갈 것이다. 이 선인장에게는 아무런 의사를 물어보지도, 물어볼 수도 없다. 하지만 우리가 태어난 것이 우리의 뜻이 아니듯, 그저 묵묵히 살아갈 것이다. 이 선인장이나 나 자신이나, 그리고 이 선인장을 선물한 그 친구 모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