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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성환 Jan 01. 2019

프리랜서로서의 삶과
노동조합의 필요성

이곳에서 처음 일을 시작할 때 흔히 겪었던 대화가 있습니다. 


“이번에 A 작품에서 사람 구한데. 내가 아는 사람이 있으니까 네 이력서 보내줄게.”

“아, 좋지. 이력서 최근 걸로 곧 보내줄게.”

“참, 그런데, Union엔 들어갔어? 이거 Union show거든.”

“어? 아, 아직.”


혹은, 이런 대화도 있었습니다.


“얼마 전에 일이 끝나서 요새 일을 찾고 있어. 혹시 듣는 게 있으면 좀 알려주면 좋겠네.”

“응. 물론이지. 그런데, 내가 듣는 건 거의 Union show인데, Union엔 들어갔어?”

“아직. 두어 달 정도 더 있어야 할 거 같아.”

“그래? 아쉽네. 네가 Union에 들기 전엔 내가 딱히 알려줄 수 있는 게 없을 거 같아.”


도대체 이 대화들에 등장하는 ‘Union’이란 뭘 말하는 걸까요?


Union show와 Non-union show

시청자 입장에서는 상관이 없지만, 작품에 참여하는 입장에서는 TV나 영화 작품을 구별하는 방법 중에 이것이 Union show이냐 Non-Union show이냐 하는 게 있습니다. Union show는 작품에 참여하는 모든 인력이 각각의 Union, 즉 각 해당 노동조합에 속한 사람들이고, 해당 노조와 프로듀서 조합 간의 합의서에 따라 모든 진행이 이루어지는 경우입니다.


다소 단순하게 일반화하자면, 우리가 흔히 말하는 미드, 그리고 파라마운트나 유니버설 같은 스튜디오가 제작하는 큰 규모의 영화는 Union show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Union show의 경우엔 개개인이 계약 시에 신경 쓸 부분이 조금 더 가볍습니다. 이미 정해져 있는 전체적인 규정에 따라 계약 내용이 진행되기 때문입니다. 내용을 들여다보면, 작품의 제작비 규모에 따라 모든 작품을 여러 카테고리(티어 Tier)로 나눠놓고, 각 카테고리 별로 각 포지션의 보수나 근로시간을 포함한 모든 규정이 정해져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영화 현장에서 많은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는 표준 근로계약서가 아마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때, 제작사 입장에서는 임금을 비롯한 모든 항목에서 지출이 커지고, 아울러 각종 제약도 따르기 마련입니다. 그런 이유에서인지 Non-union show는 제작비가 다소 작은 작품인 경우가 많습니다. 이 경우엔 아무래도 제작사의 재량껏 계약 내용을 조정할 수 있기 때문이겠죠. 물론, 제작비는 작지 않더라도 제작비를 아끼기 위해 일부러 Non-union show로 악용하여 진행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대표적인 경우가 각종 리얼리티 프로그램들입니다. 다행히 이러한 프로그램들도 조금씩 Union show로 바뀌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습니다.

편집자조합 홈페이지. Tier 별로 세분화된 계약서를 선택할 수 있는 메뉴가 보입니다


정직원이 아닌 프리랜서로 살기

편집만을 놓고 보자면, 우리나라와 이곳은 계약 방식이 다릅니다. 우리나라에는 개인 에디터가 차린 편집실이 존재합니다. 그리고 이 편집실에 월급을 받으며 일하는 직원들이 상주합니다. 즉, 편집실은 하나의 작은 개인 회사로 운영이 되고, 드라마와 영화의 제작사는 편집실과 작품 당 계약을 맺고 일을 합니다. 여느 다른 일반적인 회사와 다를 것이 없습니다.


그에 반해, 미국에서 영화나 TV 드라마 편집을 한다는 것은 프리랜서로서 산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들은 모두 프리랜서이고, 작품을 시작할 때마다 해당 제작사와 제작 기간 동안 계약을 맺고 일을 합니다. 그리고 작품이 끝나면 다음 작품을 찾아 떠나는 것이죠.


프리랜서로 일을 해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프리랜서로 일을 하면 스스로 챙겨야 할 일들이 무척 많아집니다. 경제적 압박, 그러니까 '일을 찾아야 한다'는 압박도 심하구요. 월급을 받으며 일할 때 막연히 상상하는 낭만과는 거리가 멀죠. 적어도 제게는 그랬고, 또 그렇습니다.

<볼드타입>이라는 작품에서 일할 당시의 편집실


편집자 조합

계약 시에 개인은 약자의 위치에 놓이는 경우가 많을 수 있습니다. 특히, 프리랜서의 경우엔 신경 쓸 일이 훨씬 많아집니다. 이때 강자의 횡포를 막고, 모든 근로자들이 최소한의 노동 조건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해주는 게 노동조합입니다. 이곳에서 TV나 영화에 일하는 스태프들에겐 모든 분야에 걸쳐 각각의 노동조합이 존재합니다. 에디터 등에게는 편집자 조합(Motion Picture Editors Guild)이 존재하여 일종의 안전망 같은 역할을 해주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겪은 두 가지 예를 소개해 보겠습니다.


조합에 가입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입니다. 어느 작은 규모의 영화 작품에 자리가 있다 하여 인터뷰를 하게 되었습니다. 에디터를 만나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던 중 가장 의아했던 것은 이 작품이 Tier 0이라는 말이었습니다. 당시 제가 알고 있던 가장 낮은 티어는 Tier 1이었는데, Tier 0이라고 하니 속으로 의심이 생겼더랍니다. 당연히 그쪽에서 제시한 급여도 턱없이 낮았고요.


의심을 가득 안고 돌아와 조합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자초지종을 설명했더니 작품 이름이 뭐냐고 묻더군요. 작품 이름을 말해주었고, 전화기 너머에서는 담당자가 약간의 시간이 흐른 후 답변을 주었습니다.


“맞아요. 이 작품 Tier 0이 맞아요.”

“Tier 0도 있나요?”

“네. 정말 규모가 작은 작품도 Union show에 포함시키고자 있는 거죠. 그렇게 하면 우리 조합원들이 급여는 비록 낮더라도 최소한 그 외 복지는 누릴 수 있으니까요.”


Tier 0이 있다는 게 썩 반갑진 않았지만, 어찌 되었든 이렇게 전화 한 통으로 의문점은 말끔히 씻길 수 있었더랍니다.


두 번째 예는 이렇습니다. Tier 1에 속하는 작은 영화에 일할 때였습니다. 원래 이 영화에서 일하던 친구가 결혼으로 인해서 갑자기 떠나게 되면서 제가 그 자리를 물려받게 되었더랍니다. 그런데, 이 친구가 떠나면서 이런 얘기를 하더군요.


“얘네들 급여를 한참 동안 미루고 안주는 경우가 좀 있어. 조심해야 할 거야.”


아니나 다를까. 처음엔 제 때에 들어오던 급여가 어느 정도 지나서는 자꾸 늦어지기 시작했습니다. 한동안 참다가 결국엔 조합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조합에서는 프로덕션에 연락을 취하여 이를 당장 시정할 것을 요구했고, 저는 그 후 급여를 제대로 받을 수 있게 되었죠. 그리고, 작품이 끝나고 얼마 후에 조합으로부터 전화를 한 통 받았습니다.


“이 작품에 일했었죠? 밀린 급여 없이 모두 받았나요?”

“네. 그런데 왜 그러시죠?”

“이쪽에서 이제 작품이 다 끝났으니 Deposit을 돌려달라는데, 모든 스태프들에게 급여 지급이 끝난 게 아니면 저흰 돌려줄 수가 없거든요.”


지금도 이 부분에 대한 룰을 정확히 모르지만, 아마도 Union show의 경우엔 프로덕션에서 조합 쪽에 일정 금액의 돈을 보험금처럼 넣어두어야 하고, 조합은 조합원들이 모두 급여를 받고 일을 마친 후에야 비로소 그 보험금을 돌려주는 모양입니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저는 몇몇 자리에서 우리나라에도 편집자 조합이 있으면 좋겠다는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과연 우리나라에서 편집자 조합이 얼마나 실용성이 있고 적합한 방법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우리나라와 미국의 계약 형태가 다르고, 전체 제작 시스템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해 더 깊은 고찰을 하기엔 제가 현재 우리나라의 현실에 대해서 피부로 알고 있는 부분이 적습니다. 하지만, 현재 우리나라의 TV와 영화 스태프들의 현실이 쉽지 않은 것만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저만 해도 이와 관련하여 작년에만 우리나라의 신문 두어 곳과 인터뷰를 한 적이 있으니까요.


아무리 좋은 작품이라도 그 작품에서 일을 하는 사람들이 행복하고 즐겁게 일할 수 없다면 그 작품은 가치가 없습니다. 실제 일을 하는 스태프들이 즐겁게 일을 하는 게 가능하게 할 수 있는 실질적인 방안이 많이 나올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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