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도 당연히 야근과 주말 근무합니다
우리나라에서 야근과 주말 출근은 아직까진 직종을 가리지 않고 일상적인 게 현실입니다. 저 역시 예고편 프로덕션에서 일할 땐 집에 들어가지 못하는 날이 허다했고, 아침 8시면 집을 나와 자정이 되어서야 들어가는 날이 보통인 하루하루였습니다. 게다가, 온통 어두컴컴한 편집실에서 일하다 보니 지금이 낮인지 밤인지, 밖이 맑은지 비가 오는지도 모른 채 일했습니다. 그렇게 시간 개념은 희미해지고, 몸은 왠지 더 피곤해졌죠. 외국에 나갔다 돌아와서 시차 적응 중인 듯한 기분이 24시간 내내 지속된다고 할 수 있을까요? 저녁을 먹기 위해서 모두가 배달 주문을 하거나 밖에 나가 먹을 때, “전 퇴근할게요"라고 하기 위해서는 돌아올 무언의 눈치를 견뎌낼 엄청난 용기가 필요했죠. 지금은 예전보다 좋아졌다는 말도 있지만, 대부분의 직장에서는 근로 시간이 길고, 야근은 당연시 여겨지고, 정시 퇴근이 눈치 보이는 일인 것은 크게 바뀌지 않은 것 같습니다.
미국은 다들 일찍 퇴근해서 가족과 여유로운 저녁 시간을 보내고,
주말이면 늘 놀러 다니지 않아?
흔히들 미국에서는 야근이 없고 정시 퇴근을 할 거라는 인식이 있습니다. 제 주위를 둘러봐도 일반적인 회사에 다니는 한국분들은 대부분이 9시 출근 5시 퇴근입니다. 저도 이런 분들 보면 부럽기 그지없습니다. 안타깝게도 제가 일하는 분야는 근로 시간이 다소 긴 쪽에 속합니다. 하루 10-12시간 근무가 기본이고, 스케줄이 바쁠 때와 같이 필요할 땐 주말 근무도 당연히 할 수 있습니다. 오늘만 해도 감독이 주말에 일할 수 있는지 문의를 해오네요. 일주일 내내 새벽 한 두시에 일이 끝나곤 하기도 했습니다.
그렇다면, 한국에서 일하던 저의 상황과 이곳에서 일하는 지금의 저의 상황은 무엇이 다를까요?
야근은 돈이다
“내가 지금 다른 에피소드 촬영 때문에 편집실에 갈 수가 없네. 주말에 일할 수 있을까?”
“응. 나야 괜찮지. 그런데, 제임스에게 물어봐야 해.”
제임스는 포스트 프로덕션을 책임지고 있는 프로듀서입니다. 왜 제가 그에게 확인을 받아야 한다고 했을까요?
이곳이 그나마 나은 것은 오버타임에 대한 수당을 눈치 보지 않고 정확히 챙겨 받을 수 있다는 점입니다. 뭐랄까. 야근을 하는 것은 당연히 싫고 힘들지만, 어쨌든 일한 시간에 대해 돈은 비교적 정확히 챙겨 받을 수 있으니 억울한 느낌이 덜 든다고 할 수 있으려나요? 이점 때문에서라도 야근을 종용하는 고용주가 일반적인 우리와는 다른 모습이 이곳에서 연출됩니다.
현재 저는 일주일 50시간 기준, 식사시간을 제외하고 하루 10시간 근무 기준으로 급여가 산정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하루 근무시간이 10시간이 넘어가게 되면 야근 수당을 받게 됩니다. 이때 우리나라에서의 경험과는 다른 일이 발생합니다.
야근을 하게 될 것 같으면 슈퍼바이저에게 미리 허락을 받아야 합니다. 보통 한 시간 정도 넘어가게 되는 경우엔 알려만 주는 통보 느낌이지만, 그 이상이 되면 슈퍼바이저의 허가가 필요합니다. 이게 다 돈이기 때문이죠. 시대와 장소를 막론하고 돈 주는 사람들은 돈을 최대한 아끼고 싶어 합니다. 따라서, 오버타임으로 인해 급여를 더 지급하게 되는 게 달가울 리 없죠. 결국, 일의 내용상 반드시 오늘 처리해야 할 일이 아니라고 판단되면 오버타임을 하지 말고, 다음 날 처리하라고 합니다. 위에서 감독과의 대화에서 제가 포스트 프로덕션 담당 프로듀서인 제임스에게 확인을 받아야 한다는 이유가 이것입니다. 그는 포스트 프로덕션 예산을 관리하기 때문에, 그가 허가하는 야근 혹은 주말 근무만이 가능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앞에서 말했듯이 정시 퇴근이 무척 눈치 보이는 일입니다. 매일 정시 퇴근을 하면 왠지 주위에서, 특히 상사가 그 직원은 일 안 한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을 자연스레 하게 되죠. 책상에 오래 앉아서 일을 하는 게 일을 잘하는 것이라는 인식이 아직은 많이 사라지지 않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야근을 한다고 하여 추가 근무 수당을 꼬박꼬박 정확히 챙겨서 받는 게 쉬운 일인 것도 아닙니다. 우리나라의 채용 공고를 보다 보면 심지어는 받는 게 당연한 야근 수당을 챙겨주는 것이 자랑인 것처럼 되어버린 느낌을 받을 때도 가끔 있어 무척 아쉽습니다.
급여 시스템
일의 분야마다 다르겠지만, 이곳에서 TV/영화의 스태프들은 급여를 주급으로 받는 게 일반적입니다. 매주 그 주에 일한 시간을 적은 타임카드를 제출하면 그것에 근거하여 급여가 지급되죠. 지급받는 방법은 수표로 받을 수도 있고, 은행계좌에 직접 입금이 되게 할 수도 있습니다. 대체로 목요일에 급여를 지급받기 때문에 매주 목요일이 가장 즐거운 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건 개인적인 의견이지만요.
급여를 제대로 받기 위한 첫걸음으로 중요한 것은 타임카드입니다. 이 타임카드가 제 일주일간의 급여를 결정하는 근거이기 때문에 작성을 정확히 해야 함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오버타임을 한 날이 없다면야 정해진 룰에 따라 작성한 계약서에 의거하여 일주일에 보장된 금액을 받으니 문제가 없지만, 오버타임을 한 날이 있다면 이를 정확히 기재해야 그만큼 돈을 더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Guaranteed Hours
Union show*의 경우엔 Guaranteed Hours라는 게 있습니다. 바로 위에서 언급한 ‘일주일에 보장된 금액'이 바로 이 Guaranteed hours에 따라 결정됩니다. 예를 들어, Guaranteed hours가 주당 50시간인 경우를 생각해보겠습니다. 이때 의미하는 것은 일주일 급여로 보장되는 기본 금액이 주 50시간 일한 것으로 계산한 금액이라는 의미입니다. 일주일 Guaranteed hours가 50시간인 경우, 이는 하루에 10시간 근무를 하는 것을 의미하죠. 그런데, 일하다 보면 일이 다 끝나서, 혹은 다른 여러 사정으로 어느 날은 좀 일찍 퇴근할 수도 있습니다. 이때, 실제 근무 시간이 50시간이 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일주일 급여는 50시간을 줍니다. 물론, 실제 근무 시간이 50시간이 넘을 땐 당연히 그만큼 더 주죠. 대단한 것 같지만 우리나라의 대부분 경우의 급여제인 연봉제를 생각하면 그런 것도 아닙니다. 연봉제인 경우 역시 예를 들어 며칠 조퇴했다고 하여 그만큼을 제하고 월급을 받는 건 아니니까요.
이곳에선 이 Guaranteed hours를 40시간으로까지 내리자는 의견이 있습니다. 하루 8시간 근무를 정상인 것으로 하여서 퇴근 후 개인 시간을 보장하자는 뜻에서 나온 주장입니다. 일에 파묻히지 않고, 개인 시간, 가족과의 시간을 보장하자는 취지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기본 보장되는 급여가 줄어들게 되기 때문에 반대 의견 역시 만만치 않습니다.
* Union show에 관한 자세한 얘기는 다음 이야기인 “프리랜서로서의 삶과 노동조합의 필요성”에서 좀 더 얘기해보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