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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성환 Nov 02. 2019

음악을 고르는 건 힘들다

2018년 가을. CW에서 첫 방송을 시작한 <로즈웰, 뉴 멕시코 Roswell, New Mexico>에서 일할 때입니다. 프로듀서  컷의 첫날, 프로덕션 중의 하나인 앰블린 TV(Amblin TV)의 프로듀서들과 쇼러너이자 총괄 프로듀서인 카리나, 그리고 또 다른 총괄  프류듀서 중의 한 명인 줄리가 전 날 보낸 디렉터스 컷에 관한 노트를 보내왔습니다. 줄리는 공식적으로는 이 작품의 쇼러너가 아니지만 작품에 쇼러너에 못지않은  영향을 미칩니다. 카리나는 줄리가 쇼러너로 진행한 <오리지널스 The Originals>에서 작가 일을  했죠. 카리나와 줄리는 이번 <로즈웰>을 준비하며 함께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고, 줄리는 파일럿의 연출을 맡기도 했습니다.  카리나를 비롯한 일군의 작가 그룹에서 리더 격인 역할을 하고 있는 줄리이기에 그녀의 목소리는 이 작품에서 쇼러너인 카리나 못지않게 큰 비중을 차지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앰블린  TV의 전체적인 반응은 만족스럽다였습니다. 하지만, 줄리와 카리나는 음악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죠. 음악이 스토리에 다소 방해가  된다고 느끼는 듯했습니다. 첫 시즌엔 이러한 문제를 피하기 어렵습니다. 한두 시즌 정도를 거친  시리즈일 경우에는 그동안 전 에피소드에서 사용한 음악이 있습니다. 이 음악들은 이미 그 작품의 분위기와 톤에 맞게 작곡되고, 또  골라진 곡들이기 때문에 새 에피소드에 적용할 때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죠. 물론, 옛 에피소드에서 가져와서 새 에피소드에 적용한 곡들은, 최종적으로 작곡가에 의해서 다시 조금씩 변주가 되긴 합니다. 하지만, 어찌 되었든 일단 이 곡들은 작품의 톤을 해치지 않고  유지하는 곡들이므로 임시로 쓰는 데 크게 문제가 없는 것이죠. 


하지만,  첫 시즌이고, 거기에다가 아직까지 최종 믹싱이 이뤄진 에피소드조차도 없는 경우엔 기존의 다른 작품에 쓰인 스코어들을 빌려와 음악 작업을 해야 합니다. 각 작품은 그 작품마다의 색깔이 있고, 그 작품에 쓰인 음악들은 그것에 맞게 쓰인 곡들이므로 당연히 그 곡들이 다른 작품에 쓰였을 때 완전히 딱 맞는 옷을 입은 느낌을 갖기란 어려운 일입니다.  


음악이란 건 참 어려우면서도 중요하죠. 잘 쓰이면 이야기에 힘을 더욱 불어넣어줍니다. 하지만, 자칫 잘못하면 이야기를 오히려 해치게 되고, 결국 차라리 쓰지 않음만 못하게 됩니다. 그러한 이유로 음악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먼저 편집을 완성한 후에 음악을 입히는 것이 더 좋습니다. 음악을 너무 이른 단계에서 더하게 되면, 자칫 편집의 어색함을 인식하지 못하게 될 수 있는데, 이것은 결국 전체적으로 해가 됩니다.

Avid 프로젝트 창의 일부. 음악 작업을 위해 받은 여러 다른 작품의 사운드 트랙이 보인다. 이중에 우리 작품과 맞는 게 있을까?

당연히 작품마다 음악의 톤은 다릅니다. <더 볼드 타입 The Bold Type>은 뉴욕의 패션 매거진에서 일하는 세 젊은 여성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었습니다. 여기에서 쓰인 음악은 캐릭터들과 어울리는 주로 여성 보컬의 팝 음악이었죠. 제가 이 작품에서 일할 땐 우리나라 여성 그룹의 음악이 쓰인 적이 있습니다.


이 작품에서 함께 일했던 에디터인 콘라드는 나이에 비해(50대 중반) 젊은 음악에 대한 좋은 감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종종 이 사람이 이런 음악도 듣는단 말이야 하고 나를 놀라게 만들곤 했죠. 생각해보면, 그가 꼭 그런 곡들을 즐겨 듣는다라기 보다는, 음악을 평소 두루두루 들으며 그 폭을 넓힌다는 게 아닐까 합니다.


에디터가 음악을 전문적으로 하는 작곡가나 뮤직 슈퍼바이저들에 보다 음악을 잘 알긴 힘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음악에 대한 폭을 넓히는 일은 이 직업에서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중요한 일이라는 걸 콘라드는 느끼게 해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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