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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성환 Feb 12. 2019

2018년, 스튜디오와 스태프의
단체 협약을 바라보며

10년 전, 미국 작가협회 파업

10년 전인 2007년 11월부터 이듬해인 2008년 2월까지 약 3개월 간 TV와 영화 등에서 일하는 작가들의 파업이 있었습니다. 작가 조합(WGA: Writers Guild of America)과 파라마운트나 유니버설과 같은 미국 스튜디오들의 연합체라 할 수 있는 AMPTP(Alliance of Motion Picture and Television Producers) 간의 계약 협상에서 작가들이 자신들의 요구 조건을 관철시키기 위해 파업을 선택했었던 것이죠. 작가들이 일을 하지 않고 길거리로 나서자, 영화는 물론이고 scripted show, 즉 ‘미드'라고 불리는 작품들의 제작에 큰 차질이 생겼습니다. 대본이 없으니 촬영이 불가능했던 것입니다. 이 반사작용으로 바로 이때 엄청난 리얼리티 쇼의 부흥이 일었습니다.


TV는 작가의 매체라고 불립니다. 그만큼 작가의 영향력이 강하죠. 작품 전체를 이끌어가는 쇼러너 역시 작가입니다. 그러한 작가들이 펜을 놓았으니 스튜디오로서는 어찌할 도리가 없었습니다. 결국, 작가조합은 그들의 요구를 관철시키죠.


그로부터 10년 후, 작년에 있었던 작가조합과 AMPTP 간의 계약 협상에서도 작가들은 다시 한번 파업의 코 앞까지 가는 모습을 불사했습니다. 이미 한 번 크게 당했던 스튜디오로서는 협상 테이블에서 좀 난감해했겠죠? 아무튼, 작가들은 이를 통해 그동안 변화한 산업의 현주소에 맞다고 생각하는 그들의 요구 조건을 끝내 관철시키고 말았습니다. 

10년 전 작가협회의 파업 모습


IATSE, 거대 강자에 대항하기

이전 글에서도 조금 다루긴 했는데, 미국에서 TV와 영화에 일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분야에 따라 해당 노동조합에 속합니다. 예를 들어, 에디터는 Motion Picture Editors Guild(Local 700)에 속하고, 촬영 감독은 International Cinematographers Guild(Local 600)에 속하는 모습이죠. 저 역시 바로 이 MPEG에 속해 있습니다.


그리고 이 각 조합들은 IATSE(International Alliance of Theatrical Stage Employees)라는 하나의 큰 우산 아래에 모입니다. IATSE는 흔히 말하는 Below-the-line에 속한 사람들의 집단이라 할 수 있습니다. TV/영화에 종사하는 사람들 중 감독, 프로듀서, 작가, 배우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여기에 속한다고 보면 거의 틀림없습니다. Above-the-line에 속하는 작가와 감독은 각자 그들만의 조합(WGA, DGA)을 형성하여 스튜디오/네트워크와 동등한 입장에서 파워 게임을 벌이지만, Below-the-line에 속하는 사람들은 개별적으로는 약자이기에 강자인 스튜디오/네트워크에 맞서기 위해서 IATSE라는 우산 아래에 모여서 힘을 합치는 것입니다. 


2018년, IATSE와 AMPTP 협상

작년 IATSE와 AMPTP 간의 단체 협상이 있었습니다. 여기에서 새로 정해질 내용들에 따라 향후 수년간의 제 고용 조건이 결정되기 때문에 관심을 가지고 어떻게 진행되는지 지켜보았습니다. 조합원들 간에 가장 많이 언급되었던 내용 중엔 연금 문제, 오늘 일이 끝나고 다음 날 일을 시작할 때까지의 휴식시간인 턴어라운드(Turnaround) 등이 있었습니다. 연금은 현재 보유액이 점점 줄어들고 있어서 후에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리고 턴어라운드는 건강과 안전이라는 점에서 많이 거론되었죠.


IATSE 내부적으로 우리가 어떤 부분에서 어떤 내용의 합의를 이끌어내야 할지 토론 과정에서 가장 목소리를 높이는 조합은 제가 속한 MPEG였습니다. 이게 독이었을까요?

IATSE와 AMPTP의 합의안에 반대를 결의하는 MPEG


진정한 연대는 힘들까?

sol·i·dar·i·ty

    단결, 결속; 연대 의식, (이해, 목적 등의) 일치.  


Solidarity. 단결. 연대. 나의 동료와 함께하며 그를 지지하겠다는 의미입니다.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가진 사람들이 함께 모여있는 곳에서는 이것이 큰 문제가 되죠. IATSE가 바로 그런 단체입니다. IATSE에 속한 개별 조합들은 조금씩 그 이해관계가 다를 수 있습니다. 모두 자신의 위치에 따라 일하는 조건이 다르고, 이해관계가 다릅니다. 이렇듯, 본래 각자의 이해관계가 다른 사람들이 모였다는 특성상 언제나 분열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IATSE와 AMPTP가 두 번째 협상까지도 합의에 도달하지 못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조합원들 사이에서는 더 이상 스튜디오들에 의해서 불공정하게 대우받는 일을 참을 수 없다. 파업을 불사하고서라도 마지막 협상 테이블에서는 우리가 요구하는 바를 이뤄내야 한다고 주장이 들끓기 시작했습니다. 그 와중에 가장 많이 언급되고, 해시태그와 로고로까지도 만들어진 게 바로 이 solidarity라는 단어입니다. 개별 조합을 넘어 IATSE에 속한 13개의 모든 조합원들이 함께 힘을 합쳐야 한다는 의미였죠.


마지막 협상 테이블. IATSE와 AMPTP 간에 합의안이 나왔습니다. IATSE의 지도부는 성공적인 내용이라며 13개 조합 모든 조합원들이 이 합의안에 찬성해주어 공식적으로 만들어주길 원한다고 했죠. 하지만, MPEG의 지도부는 물론, 조합원들은 이에 반대했습니다. 


세부사항을 들여다보았을 때 결코 만족할 만한 수준이 아님은 물론이고, 이미 DGA와 WGA가 AMPTP와 합의한 내용에 비해 훨씬 미치지 못하는 내용이었습니다. 게다가, MPEG만을 제외한 다른 모든 조합들은 더 늘어난 턴어라운드를 보장받는 내용이었으니, MPEG로서는 그간 IATSE의 지도부에게 좀 더 적극적이 될 것을 요구했던 것에 대한 보복이 아니냐는 불만까지 생겼습니다.


결국 IATSE 소속 13개 조합원들의 투표 결과 이 합의안은 통과되었습니다. 그리고, IATSE 지도부는 MPEG의 협상 책임자를 자리에서 물러나게 만들었습니다. “Solidarity”라는 말은 결국 공허한 외침이었을까요? ‘자기’의 이익을 얻어내기 위해서 외치던 구호이지, ‘모두'의 이익을 위함은 아니었던 게 아니었는지 걱정이 듭니다.

그저 말뿐이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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