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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성환 Jan 29. 2019

미드에서 처음 '에디터'로
이름을 올리다

촬영 방식과 그에 따른 에디터 배분

TV 촬영 스케줄은 두 가지 형태로 나뉠 수 있습니다. 한 번에 한 에피소드만 촬영 하는 방식과 한 번에 두 에피소드를 함께 촬영하는 방식입니다. 이중 후자를 크로스보딩(Crossboarding) 혹은 블록 촬영(Block shoot)이라고 저희는 부릅니다. 이렇게 촬영된 작품을 에디터가 배분받는 방식에 따라 세 가지 정도로 크게 구분할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한 작품에 에디터가 세 명인 경우가 많으니 이를 기준으로 얘기하겠습니다.


예 1:

촬영 - 한 번에 한 에피소드 

편집 - 1화는 A 에디터, 2화는 B 에디터, 3화는 C 에디터, 그리고 4화는 다시 A, 5화는 B.... 이런 식으로 순환하는 경우입니다

예 2:

촬영 - 블록 촬영. 1화/2화 함께, 3화/4화 함께, 5화/6화 함께... 이런 식으로 촬영

편집 - 1화 A에디터, 2화 B 에디터, 3화 C 에디터, 그리고 4화는 다시 A... 즉, 위의 1번 방식과 동일하게 하는 방식입니다.

예 3:

촬영 - 예 2와 동일한 방식

편집 - 1/2화는 A 에디터, 3/4화 B 에디터, 5/6화 C 에디터, 7/8화 A 에디터... 이런 식으로 함께 촬영되는 두 에피소드를 한 명의 동일한 에디터가 맡아서 편집하는 방식입니다


예 1
예 2
예 3


이 중 어떤 방식이 더 낫다고 말하긴 힘들 것 같습니다. 각 방식마다 나름의 장단점이 있고, 그 방식을 택하는 이유가 있을 테니까요. 중요한 건, 각각의 작품에 가장 잘 맞는 방식을 찾고, 또 그렇게 선택된 방법을 잘 운용하는 것입니다.


TV에서 에디터가 되는 길

TV는 영화보다는 에디터가 되기까지 시간이 덜 걸리는 편입니다. 물론, 양쪽 모두 어시스턴트 에디터를 짧게 하거나, 혹은 아예 거치지 않고 에디터가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영화는 에디터가 되기 위해 어시스턴트로 일해야 하는 기간이 다소 긴 편입니다.


TV 드라마에서 에디터가 되는 길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모든 일이 다 그렇듯 말이죠. 어시스턴트 경험 없이 바로 에디터가 될 수도 있고, 아주 오랫동안 어시스턴트 에디터로 일을 하다 마침내 에디터가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리얼리티 쇼에서 오랫동안 에디터로 일을 하다 드라마의 에디터가 될 수도, 다시 어시스턴트가 되어서 일을 하다 에디터가 될 수도 있습니다.


CBS의 어떤 작품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리얼리티 쇼 외에는 이전까지 아무런 드라마 작품 경험이 없던 한 어시스턴트 에디터가 있었습니다. 그는 이 작품의 파일럿에서 어시스턴트로 일하게 되었고, 작품은 시리즈 오더를 받아 제작에 들어갔습니다. 두 번째 에피소드를 끝낼 무렵, 쇼러너 에디터 한 명을 해고하는 일이 생겼습니다. 급한 스케줄 탓에 일단 이 어시스턴트 에디터가 그 에피소드를 마무리하기 위해 투입됩니다. 아마 기본적인 능력은 있었던 듯합니다. 쇼러너는 그의 편집을 좋아했고, 바로 정식 에디터로 채용을 했죠. 드라마 경험이라고는 두 에피소드 밖에 없는 사람이 에디터가 된 특수한 경우이긴 하지만, 이런 일이 또 얼마든지 생길 수도 있는 게 현실입니다.


이렇듯 여러 가지 경우가 있지만, TV에서 에디터가 되는 가장 일반적인 길은 어시스턴트 에디터로서 한 작품에 여러 시즌을 일하며 에디터와 프로듀서에게 인정을 받은 후, 자리가 빌 때 그들의 추천으로 에디터로 올라가는 방식입니다. 그런데, 만일 작품이 한 두 시즌 만에 끝난다면?  한 작품에서 여러 시즌을 하진 않더라도, 한 쇼러너가 여러 작품을 연이어할 때 자신의 에디터가 그 쇼러너와 함께 일한다면, 자신 역시 계속 함께 하는 것도 방법입니다. 즉, 요점은 쇼러너/프로듀서/에디터의 믿음을 얻어야 한다입니다. 위에서 든 예에서도 만일 그가 쇼러너의 믿음을 얻지 못했다면 에디터가 되는 일이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제가 가는 길이 맞을지, 다른 길을 택해야 하는 건 아닌지 늘 고민하는 건 어쩔 수 없나 봅니다. (사진 출처: Unsplash)


바쁜 스케줄은 기회

쇼러너와 프로듀서, 그리고 나와 함께 일하는 에디터가 내가 에디터가 될 수 있는 준비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하더라도, 더 이상 에디터가 필요한 일이 생기지 않으면 어쩔 수 없습니다. 이런 점에서, 스케줄이 바빠지는 건 어시스턴트에게 힘들지만, 또한 기회가 될 수도 있습니다. 위에서 예를 든 CBS 작품에서 보듯이, 처음 그 어시스턴트 에디터가 기회를 얻게 된 것 역시 에디터를 새로 구해야 했지만 바쁜 스케줄 탓에 다른 곳에서 에디터를 빨리 구하기 힘들었기 때문입니다. 위기는 곧 기회입니다.


저 역시 이 바쁜 스케줄의 덕을 본 경우입니다. <볼드 타입>의 두 번째 시즌이었는데, 촬영 방식과 에디터 배분 방식의 복합적 요인에 의해서 에디터가 한 명 더 필요한 상황이었습니다.

<볼드 타입> 시즌 2 에피소드 5의 한 장면


<볼드 타입>, 두 번째 시즌

2017년 <볼드 타입>이 첫 시즌을 시작하면서부터 저는 이 팀에 합류하였고, 콘라드 스마트라는 에디터와 함께 일을 하게 되었었습니다. <볼드 타입>의 첫 시즌은 시청률에서는 그리 좋은 성과는 거두지 못했지만, 평단으로부터 제법 괜찮은 반응을 얻어냈습니다. 그 덕분인지는 모르겠으나, 첫 번째 시즌이 끝날 무렵 방송사인 Freeform은 <볼드 타입>을 시즌 3까지 두 시즌 더 제작하겠다고 발표를 했습니다. 그렇게, 다음 해 두 번째 시즌에서도 콘라드와 저는 한 팀으로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두 번째 시즌이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어느 날이었습니다. 콘라드의 방에서 편집에 관한 이야기를 하던 중 그가 이런 얘기를 꺼냈습니다.


“우리가 이번에 에피소드를 네 개 하잖아. 이 중에 최소한 하나 정도는 너도 에디터에 함께 이름을 올릴 수 있으면 좋겠다.”

“정말? 그렇게 될 수 있다면 나야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거다.”

“그래. 적당한 때를 봐서 프로듀서들에게 제안을 해보자. 우리가 원하더라도 결정하는 건 그들이니까.”

“물론이지. 혹시 안되더라도 이렇게 나를 도와주겠다고 하니 정말 고맙다.”


두 번째 시즌이 시작하면서 <볼드 타입>에 아주 큰 변화가 있었습니다. 작품을 이끄는 수장인 쇼러너가 바뀐 것이죠. 한 시즌을 거치면서 어느 정도의 신뢰가 쌓인 쇼러너가 없어졌으니, 콘라드가 저를 추천한다고 할지라도 그게 받아들여질지는 확신할 수 없었습니다. 게다가, 이렇게 한 명을 더 편집에 올리는 것은 제작비와 관련되기 때문에 <볼드 타입>과 같이 제작비가 그리 넉넉한 편이 아닌 작품에서는 단순한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두 번째 에피소드를 편집할 무렵 콘라드는 프로듀서인 제임스에게 저를 자신과 함께 편집에 이름을 올려 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제임스는 그에 찬성을 하고, 이를 총괄 프로듀서들에게 알렸습니다. 제임스는 프로듀서 중에서도 편집을 비롯한 후반 작업의 비용을 관리하고 있기 때문에 그가 이 아이디어를 오케이 했다는 것은 일단 돈과 관련된 산은 하나 넘었다는 뜻이었죠. 며칠 후 제임스가 제 방으로 찾아와 타임카드를 건넸습니다.


“이번 주 타임카드 여기에 다시 써주겠어? 에디터로.”

“다른 프로듀서들이 오케이 한 거야?”

“응. 이번 에피소드는 콘라드와 공동 편집으로 일하는 걸로 했어.”


한 걸음 앞으로 내딛다

이 모든 일의 추진이 가능했던 계기는 앞에서 얘기한 바와 마찬가지로 갑자기 바빠진 스케줄이었습니다. 이 당시 콘라드와 저의 담당 에피소드는 1, 5, 6, 10회였습니다. 크로스보딩으로 촬영이 진행되었고, 위에서 말씀드린 예 중 3번에 해당하는 방식으로 편집 배분이 이루어진 상황이었죠.


그런데, 담당이었던 1회의 초반부를 완전히 다시 시나리오를 고쳐서 재촬영하는 게 결정되면서 1회의 편집 일정과 5/6회 편집 일정이 그만 겹쳐버리고 말았습니다. 콘라드 혼자서 모두 처리하기엔 데드라인을 맞추기 어렵다는 의견이었고, 그래서 콘라드가 저를 에디터로 올릴 것을 추천했던 것입니다.


물론, 이전에도 제 이름을 편집에 올린 적이 없던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볼드 타입>의 경우는 그 전의 작품들보다는 더 메이저 방송국의 제대로 된 작품에 이름을 올린 것이기에 그 의미가 남다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게 작지만 한 걸음 앞으로 내딛을 수 있는 소중한 기회였습니다.


<볼드 타입> 시즌 2 에피소드 5 Sneak Peak
<볼드 타입> 시즌 2 에피소드 5 Sneak Pe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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